일찍이 중국 송나라 시인 양만리(楊萬里)는 야생장미 ‘월계’(月桂)에 대하여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읊었다. “제 아무리 화려한 꽃이어도 열흘 붉은 꽃은 없다”는 말인데, 지금도 자주 권력의 무상함을 말할 때 쓰인다.
1661년 8월, 프랑스에선 이런 일이 있었다. 루이 14세가 다스리던 시절, 재무장관이었던 니콜라 푸케(Nicolas Fouquet)가 자기 살려고 ‘보르비콩트’(Chateau de Vaux-le-Vicomte)라는 어마어마한 대저택을 지었는데, 그는 그 집 하나를 지으려고 마을을 세 개나 사들였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워낙 많아 자랑하고파서였단다. 그렇게 해서 그는 4년간이나 집을 지었는데 동원된 인원만도 18,000명이란다. 정원의 넓이만 해도 무려 10만평이란다.
이번에 내가 가보고 정말 놀라 자빠질 뻔했던 건 마굿간이다. 웬만한 우리나라 박물관보다도 더 컸다. 정말 최고급의 마차와 말들까지도 다 구비해놓았다. 놀라움은 집 크기만이 아니다. 당대 최고의 설계사, 당대 최고의 조경예술가, 당대 최고의 실내 장식가를 동원하여 꾸민 그 화려함의 극치는 혀를 내두른다. 그렇다면 정말 이 사람은 물려받은 유산으로만 그렇게 한 걸까? 아니다. 공금횡령, 부정축재가 있었다. 재무장관으로서 나랏돈 주무르며 왕실의 재산을 빼돌리는 겁 없는 짓을 감행했다. 그 소문은 이미 왕실에 파다했다. 하지만 루이 14세는 ‘설마’했다. 그러다 그의 화려한 집들이에 초대받아 눈으로 확인해보고선 소문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확신한다. 그 크기와 화려함이 자신이 사는 퐁텐블로 왕궁마저 초라하게 만들 정도였음에 루이 14세의 자존심도 몹시 상한다.
결국 루이 14세는 하룻밤 묵기로 한 약속마저 취소한 채 궁으로 돌아와 바로 푸케의 뒷조사를 시킨다. 그렇게 그의 비리를 낱낱이 파헤친 뒤, 푸케는 종신형에 처하고, 그 집은 국고로 귀속시킨다. 이는 푸케가 그 화려한 집들이를 치른 지 불과 3주 만의 일이다. 그렇게 그는 집도 뺏기고 자신도 옥에 갇혀 철가면까지 두른 채 18년을 복역하다 옥에서 죽는다. 하지만 루이 14세는 그러고도 분이 안 풀렸나보다. 그 후 그는 보르비콩트 성을 설계한 세 사람을 불러다 그 설계도 그대로, 더 크고 더 화려한 성 하나를 파리 근처에 더 짓게 한다. 그게 바로 ‘베르사이유 궁전’이다. 그 후 궁전도 퐁텐블로에서 베르사이유로 옮겨버린다. 그러니 이 일은 루이 14세에게도 어지간히 충격이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니콜라 푸케는 참 어리석었다. 아무리 돈이 많은들 어찌 신하 주제에 왕궁보다 더 크고 화려한 집을 지을 생각을 했을까? 그것도 왕궁 가까이에. 게다가 어떻게 왕실 재산까지도 맘대로 손댄 걸까? 그렇게 왕의 심기를 신하가 건드려 뭐가 좋다고?
아니나 다를까 그 푸케 집안의 문장(紋章)은 ‘다람쥐’였단다. 그 문장엔 이런 글도 적혀 있다. “다람쥐가 못 올라갈 나무가 어디 있으랴”. 결국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그의 오만함이 그 화를 부른 것이다.
사람이 아무리 수학을 못해도 자기 ‘분수’는 알아야 한다. 아무리 국어를 못해도 ‘주제파악’은 하고 살아야 한다 했다. 자기 자리를 지키지 못함은 인간의 가장 큰 교만과 무지다.
그런 점에서 목회자도 주의해야 한다. 내 목회의 절대주권은 하나님께만 있지, 목회자가 교회의 주인이 아니다. 교회돈도 하나님 돈이다. 어떤 경우에도 그 돈을 탐내선 안된다. 목회자가 하나님 자리를 넘봐서도 안된다. 목회자의 자리는 종의 자리다.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러운 선악과도 멀리해야 한다. 십자가외에 그 무엇도 자랑해서도 안된다. 태도의 오만함이 선포하는 진리를 가려서도 안된다. 끝까지 겸손히 주와 성도를 섬기는 게 목회자의 본분이다.
‘네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 2500년이나 된 그 해묵은 말이 지금도 명언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우리 목회자는 알아야 한다. 우리 목회자가 너무 자신을 모른다.
김종훈 목사 / 오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