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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테라피-18

싸움의 기술: “I ? message”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연합(2:24)’의 과정에서 우리는 수도 없이 시행착오를 거친다.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서 친해지고 서로 알아가고 사랑하게 되며 함께 평생을 살아가기로 맹세하기까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다. 친구를 만나고 친해지고 서로 익숙해지며 오랜 시간 마음을 나누는 우정의 기반이 다져지기까지도 꼭 지나가야 하는 관문이 있다. 바로 서로를 향한 부정적인 감정이다.


인간관계에서는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는 단계를 지나서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단계가 반드시 온다.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 왠지 서로 맞지 않고 불편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어떤 관계는 함께 어울리는 것이 신이 나고 재미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불편한 일이 생기기도 하고 싫은 감정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가 자주 간과하는 것은, 어느 관계에서나 부정적인 감정을 거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사랑해서 결혼했고 지금도 그 사랑에는 변함이 없는데도, 배우자가 정말 보기 싫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온 친구에게도 진짜 짜증이 날 때가 있다는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느껴지는 것은 그 관계가 어긋나고 문제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보다는, 관계의 당연하고 필수적인 한 과정을 지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어릴 때부터 사귀었던 친구는 어른이 되어서 만난 사람들보다 편하고 오래간다. 어릴 때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빠르고 자연스럽다. 친구들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처음 느끼는 시간도 짧고 다시 화해하는 시간도 짧다. 아이들이 서로 관찰하면서 같이 놀기로 작정을 하면 빠른 시간 내에 삐치고 싸운다. 자기 생각과 감정, 원하는 것을 드러내면서 친구와 바로 부딪치는 것이다.


내가 놀고 싶은 장난감을 친구에게서 빼앗고 싸우기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게임과 친구가 하자는 놀이가 달라서 또 화낸다. 서로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싸우고 씩씩거리다 울면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 다음 날이면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 잊고 신나게 논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깊어진 우정은 작은 오해나 감정 때문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관계로 다져지기 마련이다.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어느새 우리의 솔직한 감정을 감추는데 달인이 된다. 친구가 안 놀아 준다고 울면 아버지께서 사내자식이 어디서 징징 대냐! 뚝 안 그쳐!” 하셨다. 그러다 보면 남자라서 슬픈 감정을 느낄 수 없다고 믿게 된다.


아파도 울면 안 된다는 것을 배운다. 내 물건에 손을 대는 동생이 미워서 한 대 때리고 소리를 지르다가 어머니께 혼이 나면, 화를 내면 안 된다고 믿게 된다. 화를 내거나 미워하는 감정은 부정적이므로 감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게 문제가 생긴다.


밤에 무서워 자꾸 울면 부모님께 혼이 난다. “뭐가 무서워! 아무것도 없는데너 바보야? 시끄럽게 하지 말고 어서 자라고 야단하셨다. ‘아프다, 화난다, 외롭다, 두렵다, 심심하다, 절망스럽다등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은 내가 약하고 못나서 느끼는 것이라고 깨닫게 된다. 서서히 그런 못난 감정들을 감추는 데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어른이 되면 이상하게도 친구를 사귀는데 더 시간이 걸리고 더 쉽게 관계가 끊어진다. 조금만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놀라서 뒤로 물러선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에게 말한다. “사람은 믿을 게 못돼너무나 가식적이야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별 것도 아닌감정들을 감춘다고 어디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꼭꼭 숨겨놓은 감정들은 나도 모르는 내 안의 어느 구석에 차곡차곡 쌓여가기 마련이다. 그러다가 포화상태가 되면 어느 순간에 터진다.


우연히 내 앞에 있던 그 누군가는 내가 댐의 물처럼 가두어 놓았다가 한꺼번에 터뜨려 쏟아지는 물줄기를 보고 기겁을 한다. 자신이 뭘 잘못 했는지도 모르고 상대가 터뜨린 분노에 휩쓸리게 되는 것이다. 흔히 이 홍수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내 배우자이거나 자녀들이다.


가정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어느 정도는 눈 앞의 실수나 잘못으로 기인한다. 그런데 싸움을 더욱 폭발적으로 만드는 요인들은 어쩌면 우리가 차곡차곡 쌓아둔 다른 감정 때문일 수도 있다. 서로 한번 짜증 내고 말 일이 때로는 집안의 물건들이 부서지고, 집을 뛰쳐나가고, 정신을 잃을 정도로의 과음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우리가 그때 그때 자신의 감정을 관찰하고 표현하고 대화로 풀지 못해 생긴 감정의 찌꺼기들이 어느 순간 다이너마이트처럼 터진 결과이다. 참 부끄럽지만, 필자에게도 예외는 아닌 이야기이다. 어느 날 5살짜리 딸이 필자에게 말했다. “엄마, 난 엄마가 언제 화를 낼지 잘 모르겠어. 갑자기 화를 내.” 어린 아이의 이 말은 어느새 내가 평소에 조용하다가 폭발적으로 터지는 우리 어머니 같은 모습으로 아이들을 대하고 있었음을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아이들이 말을 안듣는 다거나 계속 집안을 어지를 때 참다 참다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얼음처럼 굳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왜 갑자기 저러시지?’ 싶은 것이다. 엄마가 왜 화가 나는지는 이해하기보다는 엄마가 왜 저렇게 변덕스러운지가 원망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한두 번 말을 하거나 주의를 시키고,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알려준다. 엄마가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는 것을그래도 변화가 없으면 조금 더 강도있게 이야기한다. 엄마가 폭발하기 직전이라고. 나의 감정을 단계별로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은 안다. 엄마가 폭발하기 전에 움직이는 것이 신상에 좋다는 것을. 그리고 나 자신도 분노를 조절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나의 상태를 잘 관찰하고 건강한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은 바로 분노조절, anger management의 가장 기본적인 전략이다. 싸움을 할 때 우리가 가장 많이 쓰는 언어는 비난이다. 내가 화나거나 상처받았을 때 대부분은 당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라는 비난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상대를 비난하면 그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받아들이고 고치는 것이 아니라 변명을 하거나 너 때문이라고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그래서 상대를 비난하면 그 비난은 또 다른 싸움으로 번진다. 그래서 흔히 부부들이나 아이들은 싸움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이혼까지 이른 경우에 많은 부부가 말한다. 싸움의 원인보다는 이혼과 싸움의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상처를 받았다고. 잘 싸우는 기술은 바로 ‘I-message’, 가 아닌 라는 주체를 중심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네가 게으르니까 집안이 이 모양이잖아!” 가 아니라 내가 집에 오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가 훨씬 효과적이다. ‘You-message’는 비난으로 시작한다.


당신, 운전을 그따위로 해!” 라고 하면 대부분의 남편은 차를 세우고 소리를 지른다. “그렇게 잘났으면 네가 해!” 라는 반응을 보인다. “자기야, (I-message) 무서워. 좀 천천히 가지?” 라고 하면 남편은 좀 짜증은 날지라도 속도는 줄인다. 무섭다고 말하는 아내는 자신을 무시하는 아내보다 말을 들어주기가 수월하다. “공부 좀 해! 넌 뭐가 되려고 그 모양이냐!” 보다는 아빠가 걱정된다. 너 나중에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는데.”라고 해야 아이들은 공부하고 싶어진다.


왜 맨날 늦게 들어와? 아이들하고 나한테 관심이나 있어?”는 비난으로 들려서 남편을 무능한 가장처럼 만들고 남편을 가정에서 더 멀어지게 한다. “내가 외롭고 지치네. 당신이 집에 더 많이 있으면 힘이 될텐데..”는 내 감정을 중심으로 솔직하게 표현하는 방법이다. 이런 표현이 남편의 발걸음을 집으로 향하게 한다.


감정의 언어는 대부분의 한국 가정에서 익숙하게 사용하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야단에 익숙하고 비난에 능하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드러내면 내 감정에 책임을 질필요가 없어진다. 다 그 사람의 책임이니까. 나 자신의 솔직한 감정은 창피하고 약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우리의 가장 약한 모습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인다. 마치 예수님께서 세상을 한방에 정복하실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있으셨음에도 무력한 듯 보이는 십자가의 희생을 선택하셨던 것과 비슷한 원리이다. 벌거벗겨져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자신을 다 주시고 죽음까지 감내하셨던 그 사랑이 우리 모두를 살리는 엄청난 힘이 되었던 것이다.


솔직한 나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내 감정에 책임을 지는 용기, 상대를 탓하기 전에 나 자신을 살피는 인내,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드러내는 모습이 바탕이 되어야 가능하다. 부정적인 감정은 잘못 표현되면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기기도 하고, 지혜롭게 표현되면 서로를 이해하고 더 깊게 사랑하게 되는 매개체가 되어 줄 수도 있다. 그래서 싸움에도 기술이 있어야 한다. 승리가 아닌 이해를 위한 기술이다. 공격이 아니라 갑옷을 벗어서 이기는 기술이다.


심연희 사모

RTP 지구촌교회

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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