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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 파이팅!


아시안 게임이 몇 칠 후 열리지만 축구예선은 이미 시작됐다. 인천시민은 한 경기 이상 관람하자는 현수막을 보고 인천시민인 나는 경기일정을 찾아보았다.


여자축구 북한과 베트남의 경기가 열린다. 딸과 같이 가기로 하였다. 열심히 주먹밥과 간식을 만들어 차를 타고 경기장으로 간다. “통일이 언제 되면 좋겠니?” “우리나라가 아직 북한을 받아들일 만큼 여력이 없다고 보이기에 천천히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산가족이 되어 북쪽에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보거라” “우리는 이산가족이 없잖아요” “몇 단계 거치면 다 친척이고 가족이기에 한 민족이란다. 만약 우리가 북한에서 고통 받고 있고 충분히 남한 사람이 잘 살고 있기에 도움을 바랄 때 남쪽에서 자신들의 불편으로 통일이 늦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한다면 그 심정이 어떻겠니?” “……


드디어 경기장에 도착했다. 스탠드 한 쪽에는 빨간색을 입은 북한응원단과 반대편에는 흰색을 입은 베트남응원단이 있었다.


조직위원에서 조직한 응원단들이었기에 응원에 열의가 없었다. 그래도 한민족이기에 북한 응원단이 간간히 목소리를 높이며 응원을 했고 공단에서 일하는 사람들로 생각되는 100명 정도의 베트남사람들이 시종일관 큰소리로 베트남을 응원하고 있었다.


한쪽에는 10명 정도 붉은 옷을 입은 응원단이 있었는데 아마 자발적으로 구성 된 응원단인 것 같다. “우리는 하나다” “북한 파이팅!” 북한 팀은 자신들을 조선 사람이라고 하고 북조선 남조선으로 부르지 않는가? 그렇다면 북조선 또는 조선 파이팅! 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북쪽도 남쪽도 같이 하나라고 이야기하고 통일을 이야기 하지만 각자가 생각하는 통일의 의미는 많이 다른 것 같다. 소통을 하려면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며 일치를 보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하나다란 말은 서로에게 필요한 말이고 소통을 위한 말이기도 하지만 속 깊이 들어가면 만날 수 없는 강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8강전에서 중국에 승리한 북한감독이 말한다. “선수들에게는 언제나 경기장에 나가기 전 경애하는 원수님과 우리의 승리를 기대하는 조국의 인민들을 강조한다. 그 덕분에 선수들은 승리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달릴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남측의 응원으로 우리는 하나라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남측응원단의 우리는 하나다라는 응원은 절대적인 북한 수령의 권력하에 종속 된 사람들로서의 하나를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선수들의 등번호에 적힌 이름을 외쳤다. 북측 남측이 이야기하는 이념도 아니고 그냥 선수 자신의 이름이다. 아름답고 예쁜 이름, 그리고 녹색 그라운드를 질주하며 쏟아내는 그들의 땀과 거친 호흡을 느끼며 다른 것이 아닌 사랑하는 내 동포, 내 친척, 내 가족, 내 동생, 내 딸, 아니 나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송미 잘 한다” “송미 화이팅!” 그들 꽃다운 나이 17정심이와 맏언니 26은심이모두 화이팅!”


축구장을 처음 찾은 딸에게 경기규칙을 설명해 주며 관람을 했다. 40으로 전반전은 북한이 리드했다. 지고는 있지만 최선을 다하는 베트남 선수들과 베트남응원단의 모습에 관중들도 함께 응원을 했다. 결국 50으로 북한의 승리다.


경기가 끝난 후 스탠드 앞까지 달려와 인사하는 선수들과 함께 뭉클한 감정을 함께 나눴다. 처음에 아빠의 응원소리에 부끄러워하던 딸이 나와 함께 일어나 머리위로 손을 들어 박수를 친다. “아빠와 처음 경기장에 와서 재미있었고 감동도 있었고 통일이 빨리 되었으면 좋겠어요딸의 관전평이 나를 더욱 기쁘게 한다.


대부분의 나라 선수들이 게임이 없는 날에 자유롭게 다니지만 북한 선수들은 외부인과의 접촉을 하지 않는다. 메달을 딴 선수들은 그 모든 공을 최고 지도자에게 돌린다. 이는 마치 역기능의 가족체계와도 같다. 자녀들의 건강한 자아상을 형성 할 수 없도록 부모는 서로 갈등을 하다거나 알코올이나 폭력 등의 부정적인 중독을 통해 자녀들을 통제하게 된다.


어느 경우에는 극히 도덕적이거나 윤리적, 또는 종교적이 될 수도 있는데 이것이 역기능인 이유는 자녀의 부모가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갈등을 하고 있으며 자녀도 부모처럼 자신과 상대방이 모두 중요하다는 인격적인 교류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역기능적인 통제는 외부에 잘 나타나지 않는다. 자유가 아닌 통제를 통해 별 문제없는 가정으로 위장됐다. 자녀들은 그러한 위장을 인식하지 못한 채 상처 입은 역기능의 부모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는다. 이것이 부모이상화다. 역기능의 부모를 완전하다고 인식하므로 부모의 상처와 수치심을 자녀들이 끌어안게 된다. 부모와 마찬가지로 자녀들의 감정은 오염된다.


나는 북한 선수들이 이념과 역기능적인 그들의 관계가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 느껴지는 감정을 만나고 함께 공유하기를 바란다. 북한 선수들이 그 무엇이 아닌 내 자신을 느끼고 내 자신을 위해 운동을 하는 것이 자랑스럽다는 것을 느끼기를 바란다.


오늘 승리한 정심이’, ‘송미’, ‘은심이’, ‘예경이행복하기를 바래.

내 주머니엔 통제 속에 있는 그들에게 전하고픈 초코파이 몇 개가 있었다.


박종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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