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자연경관이 뛰어난 나라 스위스가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까지 된 데에는 꼭 알아둬야 할 슬픈 역사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로맨틱한 호반의 도시 루체른의 작은 언덕 바위산에 새겨진 “빈사(瀕死)의 사자상(獅子像)”에 얽힌 스토리다.
말 그대로 이는 “용맹한 사자가 처절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조각한 것인데, 1792년 8월 프랑스의 루이16세 왕가를 지키기 위해 무려 786명의 스위스 용병들이 장렬하게 전사했음을 기린 것이다. 듣기만 해도 감동인 이 스토리를 직접 가서 본 감동은 정말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등에 창이 깊이 꽂힌 상황에도 그 프랑스왕가의 문장을 끝까지 붙들고 있는 모습은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사실 당시의 프랑스왕 루이16세는 시민혁명으로 몰락할 왕가였다. 실제로 대세도 이미 기울었다. 그래서 왕궁을 지키던 근위병들조차 다 도망가 버렸다. 그래서 그는 모든 걸 체념하고 스위스 용병들에게도 “이만 철수하라” 명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끝까지 그 궁을 지킨 것이다.
왜 그랬을까? 자기 나라 왕도 아닌 남의 나라 왕인데, 옳은 왕도 아닌데, 그저 돈 받고 적당히 자리만 지켜주면 되는 용병이었을 뿐인데, 왜 그들은 끝까지 그 아까운 목숨도 내놓으며 자리를 떠나지 못했을까? 그 명확한 이유는 당시 거기서 전사한 한 병사의 품에서 발견된 유서의 내용에서 드러난다. “만일 우리마저 살겠다고 이들과의 약속도 저버린 채 도망간다면, 이후 우리 후손들은 더 이상 용병으로는 어느 나라에서도 일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목숨이 아깝다고 도망친 용병을 어느 나라가 쓰겠느냐? 이대로 죽는 게 후세들 길을 여는 것”이라는 것이다. 듣고 보니 그 이유가 더 가슴 뭉클했다. 그렇다면 왜 당시 스위스는 그런 나라여야만 했을까? 그 아까운 젊은이들을 왜 남의 나라 용병으로 수출해야만 했을까? 이유는 이렇다. 아시는 바와 같이 스위스는 국토의 75%가 아무 경작도 할 수 없는 높은 산들이다.
그래서 먹고 살게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하여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한 게 용병(傭兵)수출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스위스 용병들은 전 세계로 수출되어 그 돈으로 부모 형제도 살리고 나라 경제도 살렸다. 그렇게 돈이 되자 그들은 그 용병의 자리를 사수하여 자식 대(代)에까지 물려주고자 때로는 목숨도 내놓으며 신의를 쌓으려 했던 것이다.
결국 자기보다 나라를 더 생각하고, 자식을 더 생각하는 마음으로 선택한 자원하는 희생이었던 셈. 그 정신이 오늘의 스위스를 작지만 강한 나라로 만들어낸 동력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도 그에 못지않은 역사가 있다. 너무나 먹을 게 없어 외화 좀 벌어오라고 우리 정부는 독일엔 광부와 간호사를, 월남엔 파병을, 중동국가엔 건설인력들을 보냈다. 그 돈으로 우리나라도 다시 일어섰다. 따라서 우리 역시 그 땀을 잊어선 안된다. 물론 한국전쟁의 위기 속에서 목숨 걸고 싸워준 우리 선배용사들의 피는 더 말할 것 없다.
이렇게 다음 세대는 이전세대의 땀과 눈물과 피를 먹고 산다. 우리 자식들 역시 그러하다. 마땅히 부모라면 그 자리를 피하려 해서도 안된다. 기꺼이 즐겁게 감당해야 한다. 그것이 부모 된 자의 운명이요 사명이다. 다음세대를 위한 기성세대의 몫이다.
이번에도 교단총회는 우리 후배들이 공부하는 학교에서 열렸다. 나 또한 교단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이번 총회만은 이 ‘빈사의 사자상’ 같기를 기도했다. 교단 선배들의 피흘린 발자취가 지금 우리의 영광이 되었다면, 우리 또한 다음 세대의 영광을 위해 그 자취를 태도에서든, 정책에서든, 선거에서든 남기길 간절히 원했다. 우리 선배들의 모습을 보고, 우리 후배들의 미래를 꿈꾸길 원했다.
하지만 역시 이번에도 아쉽다. 우리는 언제 나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개인보다 교단을 위해, 지금보다 다음세대를 위해 ‘빈사의 사자’가 될 수 있을까?
김종훈 목사 / 오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