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부자(富者)가 여행 중에 어떤 수행자(修行者)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집안에는 헌 옷가지와 밥을 지을 부엌 도구 몇 가지와 그릇 몇 개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집안을 둘러본 부자가 딱하다는 듯이 수행자에게 말했다.
“집안에 살림도구가 아무 것도 없군요. 불편해서 어떻게…?”
부자의 말을 들은 수행자가 대답했다.
“나는 여행 중이니까요.”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누구나 꼭 필요한 것만을 챙겨 간다. 수행자는 인생이란 존재를 나그네에 비교해서 사람은 누구나 여행자라는 의미로 말한 것인데 부자가 그 의미를 알아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 인간은 세상이라는 여객선에 표를 끊어 승선한 승객이다. 언제인가는 주어진 여행을 마치고 하선할 것이며, 그 때는 예언의 말씀대로 영혼은 그 떠나온 곳으로, 육체는 ‘흙의 먼지’로 돌아갈 것이다.
십여 년 쯤 전에 어떤 일로 남미 몇 나라를 단체여행한 일이 있었다. 일행 중에는 수집에 열정을 가진 이들이 있어서 그들의 편의를 보아주다가 버스를 놓치기도 하고 여러 시간동안 공항 세관에 볼모로 잡힌 일도 있었다. 취미 생활은 보람된 것이지만 모으기는 젊을 때 시작해서 중년에는 모은 것을 유용하게 사용하고 노년에는 취미든 무엇이든 그것을 내려놓고 가볍게 다닐 일이 아니던가. 그들 중 한 사람이 귀국한 지 얼마 안 되어 세상을 떠난 것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하겠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한 곳에 오래 머물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끊임없이 여행길에 불러내셨다.
하나님은 갈대아 우르에서 살던 아브라함에게는 여행의 목적지도 말씀 하지 않으시고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명하셨다. 알다시피, 이스라엘 백성은 그로부터 수천 년 동안 남으로는 시내반도와 고센까지 북으로는 수리아와 바사 땅을 헤매고 다녔고, 유다 전쟁 이후 2천여 년 동안은 민족 전체가 국외자요 나그네요 인질이요 포로가 되어 온 세계를 떠돌며 디아스포라를 겪었다.
예수께서도 나사렛 집을 떠나 쉼 없이 가나안 땅 이곳저곳을 다니셨고, 예루살렘을 벗어나지 못하는 제자들을 제쳐두고 사울을 불러 이방의 사도를 삼으시고 그로 하여금 알려진 세계를 세 바퀴 반이나 돌게 하셨고 믿는 자들에게는 땅 끝까지 가라는 대 분부를 내리셨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무거운 짐을 꾸리고 한 곳에 머물며 안이하게 사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재물과 지위와 명성은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하는 자에게 허락하시는 여행길의 선물이거니와 욕심이 과하면 인생여정이 피로해진다. 더욱이, 목사는 부자가 아니라 수행자이며 수집가가 아니라 자선가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