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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는다는 것(上)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향해 마음을 열고 그들의 말을 들어줄 줄 안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인데 우리는 자주 그 반대의 모습으로 살아갈 때가 많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관용을 베푸셨고 또한 우리에게 그렇게 살도록 가르치셨다. 그러나 오늘을 사는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고 있을까? 생각하기조차 부끄러운 일들이 매일매일 우리 주변에서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다.


은혜를 받았다고 특별한 체험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 가운데 관용의 미덕에 무지한 자들이 부지기수로 많다. 그리고 그 원인은 인내의 부족이다. 근본적인 치유가 요구되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인내심을 키워야 관용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영향력이 크고 존경을 받던 위대한 지도자들이 지녔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마음이 온유했다는 것이다. 부드러운 마음, 따뜻한 마음,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사람들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말로만 예수 운운할 것이 아니라 이런 마음을 보여야만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전하는 복음을 신뢰하게 될 것이다. 요즘처럼 각박한 때일수록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하다.


가족 간에도 대화가 단절되고 가까운 친구 사이에도 벽이 생기며, 불신 풍조가 날로 깊어가더라도 그리스도인들은 신학적 입장이나 전통적 교리를 따지는 일에 매달리지 말고 온유함을 보여야 하겠다. 모세의 위대한 지도력은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온유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부드러운 마음과 함께 갖춰야 할 요소가 겸손이다. 마음을 높이고 교만하게 행동하면 그는 닫힌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


자기를 낮추고 마음을 다스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더러는 겸손을 비굴함과 혼돈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 둘은 전혀 똑같지 않다. 겸손이란 가장 고상한 인격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타주의적 태도이고, 봉사하는 마음의 표현이다. 남을 높여주고 타인에게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은 수준 높은 도덕이다.


나와 네가 이러한 덕목을 생활에 나타내도록 힘써야 한다. 쓸모없는 논쟁은 아무에게도 유익을 주지 못한다. 고급 승용차나 권위를 상징하는 어떤 표식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눌린 자들을 자유케하는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인격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대개 남들에 대해서는 엄격하면서도 자신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관대함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태도임을 잘 알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가 되도록 해야 올바르게 사는 것이다. 사람들은 용서라는 말을 자주 들으며 또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관대히 대해주기를 기대하면서도 타인의 잘못에 대해서는 전혀 그렇지가 못하다는 것이다. 크게 잘못된 노릇이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나의 엄청난 잘못을 용서하셨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이 은혜의 보답하는 길은 우리도 남의 허물을 용서해 주는 것이다. 따지지 말고 용서하는 자라야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것이라 할 것이다. ‘마음에 불을 품고서는 평정의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자기 마음을 잘 다스리는 자라도 불을 끄기 전에는 마찬가지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요가라든가 참선, 단전 호흡 등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노력들을 하고 있지만 남을 미워하면 그 어떤 노력도 효과가 없다. 미움은 불과도 같다. 그 정도가 강하면 불꽃 역시 강해서 마음을 태워 버린다. 평정을 태우고 건강하게 만드는 요소들을 몽땅 태우므로 신경질적이 되며 몸도 병들게 되는 것이다.


용서하는 마음이 그래서 필요하다.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이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인생의 실패와 불행을 원치 않는다면 이 정도의 투자는 쉽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증오는 불행의 뿌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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