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이 지나고 크리스마스 계절이 다가온다. 과거에는 성탄절이 가까워오면 교회와 거리와 상가에는 성탄을 알리는 트리와 네온사인이 불야성을 이루었고 신자이건 불신자이건 선물과 축하를 주고받으며 잔치 분위기를 이루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성탄절이 가까이와도 거리에 트리가 보이지 않고 교회에도 사람의 그림자가 없고 불빛마저 보이지 않는 곳이 많아졌다. 어린이와 학생들을 위한 성탄 전야 행사를 중단하는 교회가 많아지고 신자들도 성탄절을 잊은 것처럼 보인다. 한국보다 교세가 약한 나라들과 때로는 공산주의 국가에서조차 추수감사절이 지나면 바로 크리스마스트리와 장식을 내다 걸며 법석을 떠는데 기독교 선진국인 한국 교회가 잠잠한 것은 이상한 일이다.
성탄절이 이렇게 잠잠해 진 데는 여러 가지 구실(口實)이 있겠지만 그 중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것 몇 가지가 있으니: 어떤 교파는 성탄절 뿐 아니라 교회의 모든 기념일을 인본주의의 산물이라면서 거부하고, 목회자들 가운데도 예수의 탄생 일시가 불확실한데 이교의 축제일인 12월 25일을 성탄일로 지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하면서 반대하는 이들이 있다. 기념일의 사전적인 의미는 일어났던 일(사건) 자체를 기념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자는 것이지 일시를 따져서 지키자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누구라서 크리스마스 자체를 거부하랴. 다만 축하 방식에 대한 견해가 다를 뿐일 것이다. 목회자는, 교회가 다소 소란하더라도 아이들은 아이들의 말과 몸짓으로, 어른은 감사와 기쁨의 찬송으로, 어린이로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표현방식으로 축하하도록 행사를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알다시피, 성탄절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구세주로 세상에 오신 것을 기념하며, 부활절은 예수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을 세계만방에 선포하고 축하하는 절기이다. ‘크리스마스’의 유래는 Christ(그리스도)와 mass(공중예배)를 합한 라틴어로서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예배”라고 해석해서 잘못됨이 없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닌 60대 이상의 노년층은 어린 날의 성탄 전야 공연과 새벽 찬양에 대한 향수와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무릇 교회가 주관한 행사는 참여하는 신자들에게 교제와 봉사의 기회를 제공하고 관심을 교회에 모으는 데도 의미가 크다 하겠다.
크리스마스와 부활절 외에 추수감사절도 이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농사짓는 신자가 없는 도시 교회 목회자와 제직들 중에 추수감사절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지 않나 염려된다. 도시교회일수록 오곡백과(五穀百果)를 교회에 진열하고 신자들이 잘 모르는 농산물을 소개하면서 햇빛과 단비를 내리시고 결실기와 추수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행사로 지킨다면 농촌교회보다 의미가 더욱 클 것이다. 농경시대에는 농산물로 감사했다면 우리 시대에는 무엇으로 감사할까.
어떤 이유이건 금년에는 불 꺼진 성탄절을 지내지 않도록 온 교회가 분발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