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인 1945년 6월 런던 광장에서 육군 중령 브라운은 시계탑을 보며 초조하게 누군가를 기다렸습니다. 브라운은 우연한 기회에 젊은 여성작가 주디스의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전쟁 중에 그녀의 글은 한 줄기 빛처럼 희망과 용기를 줬습니다.
그는 용기를 내어 작가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답장이 2주 후에 왔고, 두 사람은 수많은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사랑의 감정이 싹튼 브라운은 주디스에게 사진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사진 대신 질책의 편지를 받게 됐습니다.
“그토록 제 얼굴이 보고 싶으신가요? 당신이 말해왔듯이 당신이 정말로 저를 사랑한다면 제 얼굴이 아름답던 그렇지 못하던 그게 무슨 상관이 있나요?” 자신의 요청에 이런 반응을 보인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더 이상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전쟁이 끝나서 귀국하는 브라운은 주디스와 만날 약속을 했습니다.
“런던 전철역 1번 출구에서 제 책을 들고 서 계세요. 저는 가슴에 빨간 장미꽃을 꽂고 나갈 거예요. 하지만 제가 먼저 당신을 아는 척 하지는 않을 거예요. 당신이 먼저 저를 알아보고 만약 제가 당신의 연인으로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되면 모른 척하셔도 됩니다.”
브라운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주디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금발의 미인(美人)이 나타났습니다. 브라운은 녹색 옷을 입은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에 넋을 잃고, 그녀를 향해 다가갔으나 그녀는 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지나갔습니다. 순간 브라운은 그녀의 가슴에 장미꽃이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정각 6시. 멀리서 가슴에 장미꽃을 단 여인이 아주 천천히 그를 향해 다가왔습니다. 그 순간 브라운의 머리 속은 백지장처럼 하얘졌습니다. 다가오는 여인은 못생기다 못해 흉측했습니다. 한쪽 다리를 잃은 그녀는 한쪽 팔만으로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얼굴 반쪽은 심한 화상으로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짧은 순간 브라운은 심한 갈등을 느꼈습니다. ‘그녀가 자신을 모른 척 해도 된다고 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군. 정말 그녀를 모른 척 해야 하나? 아니야. 원망해야 할 상대는 독일군이야. 이 여인 역시 전쟁의 피해자일 뿐이고… 3년 동안 난 그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녀를 사랑했어. 이건 변할 수 없어. 이제 와서 그녀를 모른 척 하는 것은 비겁하고 함께 했던 시간을 배신하는 거야.’
브라운은 그녀에게 다가갔습니다. “잠깐만요!” 그녀가 돌아보자 브라운은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그녀의 책을 들어 올렸습니다. “제가 브라운입니다. 당신이 주디스지요? 이렇게 만나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브라운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니에요… 전 주디스가 아니고 페니예요… 저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조금 전에 녹색 옷을 입은 여자 분에게 부탁을 받았어요. 장미꽃을 달고 이 앞을 지나가 달라는… 그리고 저에게 말을 거는 분을 식당으로 모셔오라고 하더군요.”
식당에 들어서자 녹색 옷을 입었던 주디스가 환한 웃음으로 브라운을 반겨주었습니다. 브라운과 주디스의 가교 역활을 하였던 페니가 “감동적인 사랑의 실화”라는 제목으로 영국 ‘TIME’지에 게재해 영국 전역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때로 주님은 이렇게 우리 앞에 나타나십니다. 우리의 중심을 보시려고….
김용혁 목사 / 대전노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