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남댁”이라 부르는 여승은 절간에 드나드는 길에 우리 집에 자주 오셔서 염불도 하고 식사대접을 받으셨다. 여승은 어머니에게 자식들이 잘 되어야 하고 특히 큰 아들이 잘 되어야 집안이 잘 풀린다고 하면서, 큰 아들을 보니 북두칠성 정기를 타고 났으니 절간에 있는 ‘칠성단’에 팔아야 한다고 꼬셨다.
귀가 솔깃해진 어머니는 국민학생인 나를 꼬셔 주사골 봉래폭포 위에 있는 석굴 절간으로 데리고 가면서 목욕을 세 번이나 하고 쌀 한 말을 머리에 이고 올라가서 여승이 시키는 대로 큰 부처, 작은 부처, 보살 부처상 앞과 칠성단에 각각 7번씩 모두 28번 절을 했더니 절간에 내 이름이 그날부터 오르고 나는 소위 “불자”가 되었다. 1948년 이후부터 나는 어머니를 따라 절간을 오르락 내리락 했었다.
그런데 유교신봉자인 부친이 사귀 들려 고치려고 불공, 무당굿, 병원, 신침, 부적 등 온갖 일을 다 했으나 효험이 없던 차 저동침례교회에 나가서 낫자 온 가족이 교인이 되었고, 양남댁의 며느리 정수희 자매도 그 즈음 사귀병에 걸렸는데 불공은 말할 것도 없이 드렸고, 한의사 덕산 어른에게 귀신 떼는 신침도 효험 없고 아버지처럼 온갖 수단을 다했으나 낫지 않았다.
양남댁 여승의 불공으로는 안되자 “내 힘으로나 내게 붙은 신령님의 힘으로도 안된다. 예수가 고친다. 교회에 나가야 낫는다. 가정도 예수가 책임진다!” 해서 저동침례교회에 나와 예수 믿고 자칭 고모 죽은 두목 귀신놈과 잡귀들이 모두 나갔고 후에 훌륭한 집사가 되었다.
박준호와 박순남 자녀도 교회에 나와 잘 믿고 직분을 따라 지금까지 잘 충성하고 있다. 결국 죽기전에 양남댁 여승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소천되셨다. 나를 불자 만든 양남댁 여승의 구원은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약2:19)는 말씀과 주님의 구속의 은혜였다고 믿는다.
마늘 하나 꼭지
소련의 대문호 도스토에프스키 (Dostoyevsky)의 죄와 벌(1866)과 까라마죠프 형제(1880), 두 작품은 유명하다. 그의 단편(Conte)으로 기억되는 “마늘 한 꼭지”를 소개코져 한다. 유명한 구두쇠가 있었다. 어떤 구걸인이 와도 결코 아무 것도 주는 일이 없다.
언제나 거지는 빈손으로 깡통을 두드리며 돌아갔다. 그런데 하루는 고집 센 거지가 찾아와서 구걸하는데 그는 “주지 않으면 돌아가 본 일이 없고 빈손으로 돌아가 본 적이 없다”하면서 마당 한복판에 주저앉았다. 달래보기도 하고 위협도 하고 설득도 했지만 돌아가지 않아 그냥 내버려 두었더니 저녁까지 웅크리고 앉아 쳐다보고 있어서 꼴 보기 싫은 주인은 헛간에서 마늘 한 꼭지를 찾아내어 그에게 던져 주었더니 거지는 일어나 갔다.
세월이 흘러 구두쇠는 죽었고 천사 앞에 끌려갔는데 “천당 가려면 무슨 공로나 선행이 있어야하는데 기억나는 것이 없느냐?”고 물었다. 곰곰이 생각한 구두쇠는 생각하더니 마늘 한 꼭지를 거지에게 준 일이 있다고 하자 천사는 안에 들어가서 그 마늘 한 꼭지를 찾아 나왔다.
그 마늘 한 꼭지를 천당 가는 황금 줄에 묶고는 마늘 꼭지가 빠지지 않도록 마늘을 부여잡고 놓치지 않으면 천당 가도록 해줄테니 결코 눈을 떠서는 안 된다고 일러주었다. 그네 타듯이 마늘 꼭지를 붙잡고 황금줄을 따라 올라가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눈을 떠보니 옛날에 마늘 한 꼭지를 받아간 거지도 황금줄을 잡고 앞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꼴 보기 싫게 히죽거리며 웃는 것이 아닌가!
구두쇠는 정말 꼴 보기 싫어서 가까이 올 때 발을 들어 그만 못된 거지를 차버리고 말았다. 구두쇠가 잡은 마늘 꼭지가 빠지면서 구두쇠는 천길 만길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38하)
이젠 죽었구나!
유치원 화재 수습을 위해 미국 침례교단 내 20여개의 병원 중에 오클라호마 놀만(Norman) 병원에 근무하는 가장 유명한 화상치료 전문 의사 스튜워드(Steward)박사를 만나러 갔으나 아프리카 선교 진료 차 떠나고 없었다.
다른 병원을 알아보려고 달라스행 서북항공(NW) 비행기를 탔는데 20여명이 두 줄로 창가에 앉았다. ‘윙윙’도는 프로펠라 소형 비행기를 처음 탔는데 어쩌다 맨 앞 조종사 옆자리에 앉았다. 비행기가 검은 구름 속으로 들어가는데 진눈깨비가 내리더니 조금 더 오르니 ‘거짓말’ 조금 보태어 애기 주먹만 한 눈이 앞 옆 유리창을 내리쳤다.
작은 비행기가 상하좌우로 걷잡을 수 없이 마구 흔들렸다. 어릴 때 울릉도에 살면서 눈이 2m씩 내려 두문불출한 겨울눈도 아무리 커봤자 산딸기 크기 정도였는데 내 평생 처음으로 미국 록키 산맥의 그렇게 큰 눈송이에 놀랐고 놀랐다. 그런데 바로 그 때 내 앞의 프로펠라가 속도를 늦추더니 그만 딱 서고 말았다. 다행이 조종사 앞의 것은 돌고 있었다.
나는 문득 ‘이젠 죽었구나! 프로펠러 하나로 달라스까지 록키 산악을 넘어 어떻게 가나? 이 험악한 날씨에...’ 악천후 속에 작은 비행기는 상하좌우로 마구 흔들렸다. 목회의 현장 뿐 아니라 나의 잘못 살아온 것들이 잠시 동안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데 “주여, 용서해주소서...”
잠깐 내가 감았던 눈을 떠 보니 먹구름을 헤치고 30도 각도 쯤 위로 솟아오르던 비행기가 갑자기 또 오른쪽으로 곤두박질하는데 나는 아래로 떨어져 쳐 박혀 죽는 줄로 알았다. “주여, 화상아이들 살리려다 이렇게 죽어서야!” 왼쪽으로 머리를 돌려 조종사를 힐끗 보니 관제탑과 연락하면서 힘들게 조종하더니 드디어 먹구름을 벗어나 하강하여 비상착륙을 잘 해냈다.
콩알 만해진 간담을 쓰다듬으면서 우리 20여명 승객들은 환호와 박수로 조종사를 격려하였고 서로 생존과 감격의 악수를 나누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프로펠러 하나로도 조종할 수 있다고 했다. 뒤돌아보면 신생호라는 작은 상선을 타고 동해 바다 위의 휴전선을 넘나들며 28시간 배 멀미를 하며 “하나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했을 때, 난파선이 된다 해도 나는 수영을 잘 하니까 파선조각을 타고 버티면 살 희망은 조금이라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일본 도꼬와다이교회 도가미 목사의 초청으로 말씀을 증거하러 동경에 들러 김동원 선교사를 만나 담소를 나누며 침대에 잠이 들었는데, 밤중쯤 되어 몸이 흔들 흔들거려 나는 ‘그네 타는 재미가 제법 괜찮다’는 생각이 잠속에 들었다. 조금 있더니 세차게 사정없이 마구 흔들렸었다.
“주여!” 하는 김동원 선교사의 큰 목소리에 눈을 떠보니 책장에서 책이 떨어지고 벽시계도 흔들리는데 지진이었다. 와중에 안방에 자고 있던 처와 딸을 살피러 갔더니 둘은 껴안고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땅이 흔들리더니 어쩔 수가 없었다. 두 차례의 5.8도 지진의 맛을 정말 혼나게 느꼈다. 바다 위나 땅 위는 살아날 곳이 있었으나 공중에서 비행기가 마구 흔들려 곤두박질 할 때는 기댈 곳이 없어 공중에서 정말 죽는다는 생각에 순식간에 회개가 저절로 나왔다. 그 후론 잠들기 전에 하루의 삶을 회개하며 살아왔다.
한명국 목사
BWA전 부총재
예사랑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