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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에서 부활현현의 체험과 부활신학(4)


사복음서들에서 공통적으로 빈무덤 이야기는 부활현현 이야기로 이어진다.

빈무덤 이야기가 예수의 부활에 관한 간접적인 증거인 반면, 부활현현 이야기는 직접적인 증거의 성격을 갖는다. 신약성서 어디서도 예수의 부활 자체에 관한 어떤 묘사나 언급이 제시되지 않았으며 오직 부활의 결과인 부활현현 사건으로 제시된다. 예수의 제자들이 부활의 주님을 본 것은 외인들(비신자들)이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부활현현의 체험은 이미 예수를 믿은 사람들의 신앙을 확증하고 새롭게 하며 온전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도마 사건은 부활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의심하는 제자들을 주님 자신이 도와준 사건이다. 예수의 부활은 그의 삶과 사역에 대한 하나님의 인정을 나타낸다. 그것은 또 예수의 공생애 동안에 그에 대하여 가졌던 제자들의 신뢰에 대한 하나님의 인정이기도 하다.


부활현현 이야기에 있어서도 각 복음서 저자는 자신의 방식을 따라 고유한 내용을 다룬다. 마태는 부활의 예수께서 그 무덤을 방문했던 여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을 보고한다(28:9~10). 요한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무덤을 최초로 방문했던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였으며 부활현현을 최초로 경험한 사람도 그녀라고 전한다.


예수의 부활현현 사건의 전달에 있어서 요한은 예수의 모친이나 그 사랑 받은 제자보다 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를 먼저 전달한다. 이것은 그녀가 부활의 주님을 보고 전파한 첫 번째의 사람이었다는 전승이 형성된 것을 가리킨다. 이 이야기는 부활의 주님에 대한 온전한 신앙에 이르는 과정을 극적으로 묘사한다.


공관복음서 전승들에는 여인들이 무덤을 방문했을 때 천사들의 나타남과 부활의 사실을 제자들에게 전하라는 명령이 포함된다. 요한복음서에서 부활의 예수가 마리아에게 나를 만지지 말라고 말한 것을 보면, 그녀가 마태복음에 묘사된 여자들의 행동(28:9)과 유사한 행동을 했을 것을 암시한다. 요한은 이러한 전승들을 토대로 부활의 주님이 막달라 마리아에게 현현한 사건을 먼저 전달한다.


이야기는 두 제자가 빈 무덤을 확인하고 떠난 후에 막달라 마리아가 그곳에 그대로 남아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푸려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20:11). 앞 단락인 빈 무덤 이야기와 연결시켜 생각하면, 그녀는 두 제자와 함께 그 무덤에 다시 온 것이 된다. 그 제자들이 떠나고 그녀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그녀가 두 제자와 함께 무덤 안으로 들어가 그곳을 보았다고 언급되지는 않았다.


아마 두 제자가 무덤 안으로 들어간 동안에 그녀는 무덤 밖에 있었는데, 그 후에 두 제자가 그녀에게 그 무덤 안의 상황에 관하여 말해주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녀는 그 무덤이 예수의 몸을 두었던 무덤이라는 것을 확신했으며 사람들이 예수의 시신을 가져다가 다른 곳에 둔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울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사람들의 울고 있었던 것과 그것에 대하여 통분히 여기고 민망히 여겼던 예수의 모습을 상기시킨다(11:33). 그녀의 눈물은 죽은 자를 위한 애통이며 예수의 시신을 발견하지 못하는 그녀의 개인적 고통과 슬픔을 나타낸다. 한참을 울다가 그녀는 몸을 굽혀 무덤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행동에 관한 묘사는 그 사랑 받은 제자(몸을 굽혔다, v.5)와 베드로의 행동(자세히 보았다, v.6)을 결합시킨 형태로 제시된다. 무덤 속을 들여다보면서 그녀는 앞의 두 제자들과는 다른 그녀 자신의 체험을 하게 된다.


그녀의 체험은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의 그것과 다른 인격적 체험이었다: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편에 앉았더라”(20:12). 세마포와 수건에 관한 것은 그녀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그녀는 흰 옷을 입은 두 천사를 보았다. 두 천사에 관한 요한의 묘사는 공관복음서 전승들을 기초했다.


흰 옷을 입은 두 천사는 누가 전승에 기초했으며(24:4), 또 두 천사가 특정 지점에 앉아 있었다는 것은 마가 전승에 기초했다(오른 편, 16:5). 요한복음에서 두 천사가 앉아 있던 지점은 예수의 몸이 놓여있던 두 지점 곧 머리와 발쪽이었다. 두 지점 모두 예수의 죽음과 관계된다.


예수의 머리 쪽은 그의 얼굴을 쌌던 수건이 있던 지점이며 예수의 발은 마르다의 여동생 마리아가 예수의 죽음을 예비하기 위하여 기름을 부은 대상이다. 예수의 죽음을 암시하는 대상들이 놓여 있던 지점들에 부활의 전달자이며 영생의 암시자들인 천사들이 앉아 있었다.


예수의 시신이 놓여 있던 곳에 두 천사의 임재는 새 생명의 시대가 도래한 것을 가리킨다. 요한복음서에서 천사에 관한 언급은 예수의 공생애의 시작 부분과 마지막 부분에 비유적으로 사용되었다.


첫 번째 언급은 나다나엘이 예수의 존재의 더 깊은 것을 알게 될 것에 관한 언급에서 제시된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1:51). 마지막 언급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예수의 결과적인 영광을 확증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들이 그것을 천사의 음성으로 이해한다: “또 어떤 이들은 천사가 저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12:29).


이와 같이 천사에 관한 언급은 예수의 신적 존재성과 그의 사역의 본질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여기서도 천사들의 위치에 관한 언급은 예수의 영광스러운 부활을 암시한다. 그래서 이 복음서에서는 천사들의 등장과 관계된 두려움의 소재(모티프)가 생략되었다. 천사의 출현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기쁨과 희망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 천사들과 마리아의 대화를 전달한다: “천사들이 가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가로되 사람이 내 주를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20:13). 그 천사들은 공관복음서들과는 다르게, 예수의 부활에 관한 소식을 전한 것이 아니라 그녀가 울고 있는 이유를 묻는다.


그들이 마리아를 부른 칭호(여자여)는 공생애의 예수가 자기 자신의 모친을 향하여 사용한 것과 동일하다(2:4; 19:26). 천사들의 질문의 형태는 누가 전승을 따른다: “너희가 어찌하여 찾느냐”(24:5). 마리아의 대답에서 예수를 두었던 곳에 관한 언급은 마가 전승을 따른다: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16:5). 천사들의 질문은 예수의 죽음에 관한 마리아의 오해와 무지 곧 그의 죽음이 그의 존재의 마지막이며 그의 시신이 없어진 것은 사람들이 그것을 가져갔기 때문이라는 견해를 도전한다.


그녀의 대답은, 하나의 중요한 차이를 제외하고, 그녀가 제자들에게 말했던 것과 거의 동일하다. 그녀는 계속해서 사람들이 예수의 시신을 가져간 것이 문제라고 인식하지만, 그러나 더 이상 집합적 언어가 아니라 개인적 언어로 말한다: ‘주님내 주님으로 또 우리가 알지 못한다는 말이 내가 알지 못한다로 대체되었다. 이것은 그녀가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따라 막연하게 생각하던 것을 이제는 개인적으로 좀 더 심각하게 생각하게 된 것을 나타낸다.


천사들의 질문은 그녀로 하여금 그녀가 지금까지 알아온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함으로써 그녀의 오해과 무지를 치유하는 노력의 시작이었다. 그녀의 의식의 지평은 아직 과거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가 그녀의 의식의 시야를 빈 무덤에서 돌이켰을 때 그녀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게 된다.


천사들의 질문에 대답한 후에 마리아는 부활의 예수와 대면한다: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의 서신 것을 보나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더라”(20:14). 이 장면은 부활의 예수를 처음으로 대면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다룬다. 수건의 발견과 함께 천사들의 등장 그리고 마침내 예수 자신이 나타난다.


마치 어두운 화면에서 희미하던 영상이 점차로 뚜렷하게 제시되는 것과 같이, 부활의 사실이 점차로 뚜렷하게 나타난다. 마리아의 오해와 무지를 교정하려는 천사들의 시도는 계속되지 않았다. 그녀는 천사들과의 대화를 중단하고 갑자기 뒤로 돌이켰다.” 이것은 단순히 몸을 돌이켰다는 신체적 행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요한복음서에서 뒤로 돌이켰다는 묘사는 돌이키는 일상적 행동을 통하여 요한의 독특한 거절의 의미를 전달한다(6:66; 18:6). 그녀가 뒤로 돌이켰다는 말은 그녀가 무덤 안을 본 것과 천사들과의 대화에도 불구하고 그녀 자신의 부정적인 견해로 돌아간 심리 상태를 표현한다. 예수의 죽음에 관한 그녀의 부정적인 견해는 부활하신 예수와의 대화에서도 표현된다(20:15).


그런 부정적인 심리 상태로 돌아갔기 때문에, 그녀는 예수가 서신 것을 보았지만 그 분이 예수인 줄을 알지 못했다.” 이것은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그들과 동행하시는 예수를 보면서도 그들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한상태와 흡사하다(24:16). 다른 제자들이 예수의 부활에 관한 성경을 알지 못했던 것과 같이, 그녀는 부활하신 주님의 임재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김광수 교수

침신대 신학과(신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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