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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에서 부활현현의 체험과 부활신학(7)


막달라 마리아의 경험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부활하신 예수를 대면하는 경험 곧 부활현현의 경험은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의 존재를 근본적으로 다시 보게 하고 또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부활현현의 경험은 그들의 신앙과 사상을 완전히 바꾸어놓을 정도로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복음서 기자들은 각각 자신의 입장에서 부활현현 사건들을 제시한다. 요한은 이것의 중요성을 더 크게 인식하고 제자들의 이 경험을 세 번에 걸친 사건으로 전달한다. 마리아의 경험이 개인적 사건인 반면, 제자들은 그들이 함께 모여 있는 가운데서 공동체적으로 부활현현을 경험한다.


예수의 첫 번째 부활현현에 관한 요한의 보고는 제자들이 함께 모여 있는 자리에서 일어난 것으로 제시된다. 요한은 먼저 제자들이 부활현현을 경험하던 때와 장소를 설명한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20:19).


이 날은 예수의 부활의 빛이 죄와 죽음의 어두움을 물리치기 시작한 그 날이라는 종말론적 함축을 갖는다. “안식 후 첫 날이라는 어구도 부활 사건의 새로움을 강조한다. 안식 후 첫 날의 저녁 때에 관한 언급은 누가의 보고를 따른다(24:1, 13, 29). 안식 후 첫 날의 이른 아침과 저녁 때는 유대계 기독교인들이 예배를 위하여 모이는 관례적인 시각이었다. 왜냐하면 그 날은 안식일이 끝나고 일상생활을 시작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고 있었다.” 그 시점에서 제자들은 아마 두 제자(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로부터 빈무덤의 상황에 관하여 보고를 받았을 것이며 막달라 마리아로부터 부활의 소식도 들었을 것이다. 그 사랑 받은 제자의 믿음과 막달라 마리아가 전한 부활의 소식은 제자들의 믿음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그들은 두려움 속에서 잠근 문 뒤에 숨어 있었다. 그들은 문이 되신 예수를 신뢰하지 못하고 그들의 마음의 문들을 잠그고 두려움 속에서 떨고 있었다. 이것은 그들이 아직도 부활의 예수를 향하여 그들의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어둠 속에 머물러있는 마음 상태를 함축적으로 나타낸다.


제자들이 가졌던 유대인들에 대한 두려움은 날 때부터 소경 되었던 자의 부모와 신앙을 드러내지 못하는 제자들이 가졌던 출회에 대한 두려움과 같은 성격의 두려움이었다(9:22; 12:42). 유대교 당국자들에 대한 두려움은 요한공동체가 그들로부터 받은 박해의 두려움을 반영할 수 있다. 그들은 그들을 죽이고 파멸시키려고 달려드는 도적들로부터 숨어 있은 목자 없는 양들과 같았다(10:1~10).


그 사랑 받은 제자의 믿음도 막달라 마리아의 체험도 이 두려움을 극복하는데 역부족이었다. 저자는, 누가와는 다르게(24:11), 막달라 마리아가 전달한 부활 소식에 대한 제자들의 불신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두려움 속에서 숨어있는 모습은 그런 불신의 상태를 암시한다. 그래도 한 가지 긍정적인 것은 그들이 두려움 속에서도 함께 모여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침통하고 두려우며 암울한 상황에서 부활의 주님이 그들에게 오셔서 그들 가운데 서계셨다. 닫힌 문들은 부활의 주님이 그들에게 오시는데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저자는 예수의 나타남에 대한 어떤 초자연적 설명도 하지 않는다. 오직 저자는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 서계신 것을 강조한다. 문들이 닫혀있는 상황에서도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 오셨다는 것은 십자가 이전의 예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로 변형되신 것을 암시한다.


예수는 부활을 통하여 초월적 실재가 되셨기 때문에, 이제는 언제나 어디서나 그 분이 원하시면 자기 자신을 나타내실 수 있는 무소부재의 하나님의 존재로 변형되셨다. “그들 가운데 서계셨다는 것은 제자들에게 공생애의 예수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을 가리킨다. 부활의 예수는 초월적 실재이지만, 그는 공생애의 모습으로 자기 자신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신다.


이렇게 하신 목적은 비록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셨지만, 죽은 자 가운데 머물러 계시지 않고 부활하신 것을 확증해주기 위함이었다. 제자들은 공생애의 예수의 모습을 보고 듣는 체험을 통해 그 분의 부활을 믿고 확신하게 되었다.


부활의 예수께서 제자들을 위하여 행하신 첫 번째 활동은 그들에게 평화의 생명을 주시는 말씀이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부활하신 예수의 현현은 첫째로 청각으로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씀의 선언으로 표현되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전달한다. 하나님이 부활의 예수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의 첫 번째 요소는 평화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 때의 제자들처럼 두려움으로 위축되고 숨어서 떨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먼저 필요한 생명이었다. 이 평화는 세상이 줄 수 없고 오직 부활의 주님만이 주시는 당당함과 자신감이다(14:27; 16:33). 그것은 풍랑이 일어나는 바다 한 복판에서도 두려움 없이 고물에서 주무시던 공생애의 예수가 소유했던 담대함이다.


제자들이 앞으로 박해의 상황을 극복하며 세상에서 그들에게 맡겨진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첫 번째로 필요한 생명이 바로 이 평강이다. 그래서 부활의 주님은 제자들에게 맨 먼저 평강을 주셨다. 이 평강을 주시는 것의 중요성은 부활의 예수께서 하신 두 번째 말씀의 첫 부분에서 다시 언급되고(20:21a), 또 두 번째 현현에서도 제자들에게 하신 첫 번째 말씀에서 세 번째로 언급된 것을 통해서도 표현된다(20:26).


주님은 제자들의 삶에서 문제를 없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어떤 문제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그것을 극복하면서 주님의 영광을 체험하게 만든다. 이러한 담대한 삶을 위해 먼저 필요한 것이 바로 평강의 생명이다. 평화는 예수의 제자들로 하여금 어떤 상황에서도 어느 누구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예수의 복음을 증거하며 주님의 뜻을 실행하게 만드는 능력이다.


저자는 현현하신 예수의 다음 행동을 묘사한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20:20). ‘보여주었다는 동사는 부활하신 예수의 시각적 현현을 나타낸다. 이 동사는 부활현현 사건들과 묵시적 환상들을 나타내기 위해 주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시각적 현현을 통해 제자들로 하여금 부활하신 예수의 존재를 더 분명하게 알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바울도 부활현현의 체험을 보이셨다는 시각적인 체험을 중심으로 표현했다(고전 15:5-8). 부활하신 예수께서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신 것은 예수의 공생애 모습 중에서 특별히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모습을 부각시킨다. 예수께서 이렇게 공생애의 마지막 모습으로 자기 자신을 보여주신 목적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바로 그 예수께서 부활의 주님으로 나타나신 극적인 반전을 제자들에게 확증해 주기 위함이었다.


부활하신 예수의 손과 옆구리에 관한 언급도 이 문맥에서 세 번 나오는 중요성을 보여준다. 그것은 나중에 도마의 진술(20:25)과 두 번째 현현의 모습(20:27)에서 또 다시 언급된다. 요한은 이렇게 같은 내용을 세 번이나 말하는 방식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바로 그 예수의 부활을 강조한다.


부활의 예수께서 공생애의 모습으로 자기 자신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셨다 하더라도, 부활의 주님 자신이 그런 형상을 가진 존재가 되신 것은 아니다. 부활의 주님 자신은 이제는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변형되신 분이기 때문에, 그 분의 근본적 존재 양태는 어떤 형상도 갖지 않으신 무소부재의 하나님의 존재로 존재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활의 예수께서 공생애의 모습으로 자기의 존재를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목적은 공생애의 예수와 부활의 예수 사이의 연속성 곧 공생애를 사셨으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신 그 예수께서 하나님의 권능으로 부활하시어 영광중에 살아계신다는 것을 그들로 하여금 확신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그 주님을 보고 기뻐했다. “주님을 본다는 것은 부활의 주님을 대면하고 그의 임재를 확신하게 된 상태를 가리키며 또 기뻐한다는 것은 그런 체험의 반응을 나타낸다(cf. 28:8; 24:41, 52). 예수는 이미 고별 강화에서 제자들이 예수를 다시 보게 될 것에 관하여 약속했다(14:19; 16:16ff.). 부활현현의 경험 속에서 제자들은 예수의 부활을 체험하고 깨달으며 확신하게 되었다.


그 체험은 또 그들에게 예수의 기쁨을 공급받는 통로가 되었다. 이 기쁨도 고별강화에서 약속되었던 생명의 또 다른 국면이다(16:20, 22, 24). 이 기쁨은 예수의 제자들로 하여금 어떤 슬픔과 고난의 상황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좌절하지 않으며 오히려 즐거움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수를 따라 가도록 돕는 생명이 될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평화와 기쁨과 사랑은 제자들이 이 세상에서 당하는 환란을 극복하면서 그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는 근원적인 원동력이 될 것이다.


김광수 교수 / 침신대 신학과(신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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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차 정기총회 목사 인준 대상자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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