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한국적인 상황
장로교회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한국의 기독교 상황에서, 장로교회의 직분과 교회행정의 관행이 침례교회를 비롯하여 여타 교단들의 교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무엇보다도 한국교회에는 직분에 있어서 엄청난 인플레이션 현상을 빚고 있다.
신약성경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직분들이 교단헌법에 규정되어 있고 또한 교회에서 공공연히 시용되고 있다. 성경에서 집사는 안수집사만을 의미하는 직분인데 서리집사 제도가 한국교회 전체에 만연하고 있다. 이는 목회와 교회행정에 있어서 교회의 영적인 지도자인 목사들부터 성경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고 있지 않는 관행이다.
성경에도 없는 “서리집사”는 원칙적으로 1년 임기의 임시직분인데, 한번 서리집사로 임명받으면 그 직분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평생 따라 붙게 된다. 또한 “권사”라는 직분도 서리집사 활동을 오랫 동안 한 여성도들에게 담임목사의 임명에 따라 부여하는 직분이다. 목회서신들에는 권사라는 직분이 언급된 적이 없다.
이렇게 목사-장로-안수집사-집사-성도, 권사-집사-성도 등의 직분명칭이 생기면서, 한국교회에서는 직분이 마치 계급과 명예의 상징인 것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성경이 말하는 직분은 어디까지나 봉사를 위한 것이고 결코 높낮이의 위계질서를 세우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은연 중에 교회직분은 교회 내에서뿐 아니라 세상에서도 지위를 가리키는 호칭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한국침례교단 내에서는 “호칭장로” 문제가 심각한 논쟁거리가 되어 왔다. 지역교회 내에서 안수집사들 가운데 전부 혹은 일부를 장로로 호칭하는 것과 관련하여 총회와 지방회에서 수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1980년대 중반에는 호칭장로를 반대하는 여론이 강성하여 호칭장로제도를 취하는 교회의 담임목사는 총회의 공직을 맡지 못하도록 하는 결의가 총회에서 이루어졌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 와서는 한국적 상황을 강조하면서 호칭장로제도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는 주장이 대두되었고 결국 2009년 연차총회에서는 호칭장로제도가 총회결의로 가결되기에 이러렀다.
안수집사들에게 장로교 장로에 해당하는 책임과 명예를 부여하여 교회를 위해 더욱 헌신케 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것이 호칭장로제도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그리고 그 동안 침례교 지역교회들에서 호칭장로제도가 이미 많이 채택되고 있는 현실을 총회에서 제도적으로 인정하자는 동기도 있었을 것이다.
4장에 언급한대로 침례교인들은 지역교회의 독립성과 자치권(자율권)을 매우 중요한 신앙원칙으로 삼고 있다. 지역교회가 교회 나름의 필요에 의해 직분자들을 세우고 그들에게 특별한 호칭을 부여하는 것은 그 지역교회가 알아서 할 일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침례교회는 그리스도 중심적인 민주적 회중주의라는 큰 원칙 위에 서 있다는 사실도 명심하여야 하겠다.
비록 안수집사가 장로로 호칭된다고 하더라고, 이제 그가 장로교회의 당회원처럼 교회회원들을 치리하는 지위에 있게 되었다거나 교회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침례교회의 궁극적인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교회문제 결정의 최종권위는 교회회원들 전체가 참여하는 사무처리회에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비록 장로로 호칭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더욱 겸손하게 헌신적으로 목사와 교인들을 섬기는 종임을 마음 깊이 새겨야 한다.
VI. 한국침례교회와 회중주의
교회 회중이 직접 참여하여 자치적으로 교회의 중요한 일을 스스로 결정하는 민주적 회중주의 정치는 한국의 침례교회에서 아직 많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신약성서적인 그리스도 중심적인 민주적 회중주의 행정이 교회 내에서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1. 목회자들의 민주의식
민주적 회중주의 정치가 한국의 침례교회 내에서 정착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담임목사를 비롯한 목회자들이 보다 성숙한 민주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목사는 한 교회의 담임목사이기 이전에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하나의 지체이며 섬기는 종으로서의 지도자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담임목사가 기본적인 침례교 신앙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하나님께서 기대하시고 인정하시는 교회를 이루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담임목사 자신부터 솔선하여 독선적인 권위의식을 버리고 교회 회원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잘 알아서 교회를 이끌어가야 한다. 담임목사는 교회 성도들을 자신의 목회성공과 업적달성을 위한 도구나 수단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김승진 교수
침신대 역사신학(교회사)
신학연구소 소장
예사교회 협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