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회나 총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지역교회의 대표가 아니라 개인자격으로 참석하는 것이다. 개인자격으로 지방회나 총회에서 투표에 참여하기 때문에 그곳들에서의 결정이 지역교회를 당연히 구속하지 않는다.
한국침례교회의 경우 지방회나 총회 참석자를 “대의원”(Delegate)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명칭에는 “대표성”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 지역교회의 자치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 남침례교에서는 “사신”(Messenger, 심부름꾼, 전달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지역교회의 대표가 아니라 개인자격으로 참석하는 것임을 암시한다.
지방회나 총회의 결정보다 더 우선하는 것은 지역교회의 결정이다. 지방회와 총회는 지역교회를 향해 군림하거나 명령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역교회를 섬기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는 점을 기관 관계자들과 책임자들은 명심할 필요가 있다.
평소에 필자는 지역교회들로 하여금 교회의 재산(건물과 대지 혹은 토지)을 총회에 가입하게 하고, 재산을 가입한 교회들의 목회자들에게만 피선거권 혹은 피임명권을 부여하고 있는 현행 침례교총회의 제도는 매우 침례교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지역교회의 재산은 지역교회 회중의 것이며 성령님의 이끄심에 따라 사무처리회의 다수결 투표에 의해 그 재산을 처분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침례교 회중주의 그리고 지역교회 자치권의 요체라고 생각한다.
지역교회의 재산을 사고 팔고 이전하는 일에 총회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거나 총회의 간섭을 받아야 한다면 그것은 회중정치의 정도를 벗어난 행정이라고 생각한다. 요즈음 대부분의 지역교회들이 재산을 총회에 가입시키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재산을 가입시킨 소수의 목회자들에게만 피선거권 혹은 피임명권을 부여하는 것은 민주적 평등의 원칙에도 크게 벗어난 관례라고 생각한다.
과거 타교단으로부터 넘어온 목회자들이 기금위원회(현 국내선교회)로부터 상당한 금액의 개척자금을 지원받아 교회를 이루고서는 어느 날 갑자기 침례교단을 떠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교회재산을 총회에 가입케 하는 관례가 생긴 것 같다.
이제는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침례교단 신학교에서 훈련을 받아 목회자가 되고 섬기는 교회가 침례교지방회에 가입되어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과거의 관례에 집착하여 침례교 회중주의의 원칙에 훼손을 가져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VII. 결론
성경에는 교회에 대하여 우주적 교회를 의미하는 표현도 없지 않지만 거의 대다수는 일정한 지역을 중심으로 “모인”(gathered) 신자들의 공동체인 지역교회를 가리킨다. 여기서 “모인교회”(Gathered Church)란 예수 믿고 거듭난 자들이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일정한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모여서 이룬 교회라는 의미이다. 다른 말로 하면 “회원교회”(Membership Church)이다.
회원이 어떤 단체에 가입할 때에는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다른 사람이나 기관의 강제에 의하여 억지로 비자발적으로 가입하지 않는다. 회원은 자기가 속하는 단체에 대하여 회원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가지며 그 단체를 사랑하고 그 단체를 위해서 헌신한다.
신약성경이 말하고 있는 교회가 그러하다. 하나의 지역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인하여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자들의 생명체요 유기체요 하나의 독립된 살아있는 (그리스도의) 몸인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하나님의 양무리(God’s Flock of Sheep)이다.
최초의 침례교회들(일반침례교회 1609년, 특수침례교회 1638년)은 영국국교회로부터 뛰쳐나와 독립된 교회를 이루었던 분리주의자들(Separatists)을 모체로 하여 시작되었다. 따라서 침례교회는 태생적으로 관료주의체제나 성직계급제도를 가진 국가교회를 거부하는 민주적 회중주의 정체를 가지고 있었다. 지역교회는 자치적으로 운영되었다.
분리주의자들의 공동체인 게인즈보로교회가 존 스마이드(John Smyth) 목사를 새 담임목사로 결정했을 때에도, 핍박을 피해 네델란드로 집단이주하기로 결정했을 때에도, 암스테르담에서 그곳의 아나뱁티스트들의 행습에 따라 신자의 뱁티즘을 채택하여 신자들의 교회를 이루어 새로운 교회로서 재출발을 하고자 했을 때에도, 회중이 자치적으로 결정을 하여 시행하였다.
침례교회가 강조하는 신앙의 특징들과 “그리스도 중심적인 민주적 회중주의” 정치는 상호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협력을 전제로 하는 건전한 개인주의 신앙, 종교문제에 있어서의 영혼의 유능성, 대리종교를 거부하는 신앙, 유아세례 거부, 모든 신자들의 제사장주의, 중생한 자들로 교회회원을 삼는 교회, 신자의 침례에 의한 신자들의 교회(Believers’ Church by Believer’s Baptism), 지역교회의 독립성과 자치권, 모든 자들을 위한 종교의 자유(Religious Freedom for All), 교회와 국가의 분리(국교체제의 반대) 등의 침례교신앙 특징들은 지역교회 회중주의 정치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지만 실천되지 않고 있는 신앙은 무의미하다. 침례교회라는 간판은 달았지만, “감독중심적”이거나 “당회중심적인” 정치와 행정이 이루어지고 있다면, 그 교회는 신약성서적인 침례교회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소유”라는 의미에서 교회의 궁극적인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지만, “소속”이라는 의미에서 교회회원 각자가 자기가 회원으로 속해 있는 교회를 “나의 교회”라고 느끼고 자긍심과 함께 책임감을 가질 수 있어야 하겠다.
“모든 신자들의 제사장주의”의 현대적인 의미는 “모든 신자들이 목회자다”라는 의식이다. 지역교회의 모든 교회회원들이 담임목사와 더불어 담임목사의 지도 아래 교회의 전체 목회사역을 함께 감당하는 것이다. “전신자의 제자화”라고 부를 수도 있고 “전신자의 사역자화”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현대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는 모든 지체들이 머리되시는 그리스도를 위해 활발하게 움직이기를 요청하고 있다. 그래야만 건강한 몸이 될 수 있다. 한국의 침례교회가 더욱 “그리스도 중심적”이고, 더욱 “민주적”이고, 더욱 “회중주의적인” 교회로 변화되어 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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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진 교수
침신대 역사신학 (교회사)
신학연구소소장
예사교회 협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