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9~21장은 사사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한 남색과 성폭행의 심각성과 그 비극적 결말을 보여준다. 사사시대는 대략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나안을 탈환한 때부터 엘리 때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성경은 이 무정부 시대를, “[그때에]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하고 묘사했다(삿21:25).
그 시절, 에브라임 산골에 살던 어떤 레위 사람이 불륜을 저지르고 친정으로 도망친 첩을 찾아서 멀리 베들레헴까지 갔다. 그는 친정아버지 집에 숨어있는 첩을 발견하고 따뜻한 말로 달래서 고향으로 돌아갈 차비를 했다.
그런데 사위가 길을 떠나려 하면 장인이 자꾸 붙들어서 레위 사람은 닷새를 더 머물렀다. 엿새째 되는 날도 장인이 해가 기울 때까지 붙들자 레위 사람은 장인을 뿌리치고 저녁 무렵에 첩과 하인을 데리고 나귀에 짐을 싣고 길을 떠났다.
그들이 가까운 여부스[예루살렘] 부근에 이르자 날이 저물어 베냐민 지파의 마을 기브아로 들어갔다. 그들은 마침 길에서 한 노인을 만나 하룻밤을 유하려고 그의 집으로 갔다. 그런데 그날 밤에 마을 불량배들이 몰려와서 집주인에게,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 하리라”하고 위협했다(19:22).
노인이 나가서 여러 말로 사정을 해도 듣지 않자, “내 처녀 딸과 이 사람의 첩이 있은즉…너희가 그들을 욕보이든지 너희…좋은 대로 행하되 오직 이 사람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하고 간청했다(24절). 그래도 무리가 듣지 않자 레위 사람이 자기 첩을 문밖으로 내보냈다.
아침에 레위 사람이 문을 여니 첩이 문지방에 두 손을 올려놓은 채 엎드려 죽어 있었다. 뭇 남성들에게 밤새 윤간을 당하고 숨이 끊어진 것이다. 레위 사람은 첩의 시체를 나귀에 싣고 에브라임 산골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열 두 토막을 내어서 이스라엘 각지에 보냈다.
토막 시체를 보거나 소문을 들은 백성들이 이스라엘 전 지역에서 일어나 미스바에 모였고, 그 소식을 들은 레위 사람이 미스바로 가서 “이스라엘[베냐민지파]의 음행과 망령된 일을” 낱낱이 고했다. 분노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베냐민 지파를 진멸하기로 결정하고 전쟁에 돌입했다.
결국 이스라엘 연합군이 기브아를 함락하고 승리했으나 양 진영에서 죽은 장정이 줄잡아 6만 5천명이 넘었고 죽은 베냐민 지파의 부녀자의 숫자는 헤일 수조차 없었다. 베냐민지파는 야곱이 그의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14년 동안 하인노릇을 하면서 얻은 아내 라헬이 낳은 두 아들, 즉 요셉의 동생 베냐민의 후손이다.
야곱이 그토록 사랑했던 라헬은 난산 끝에 베냐민을 낳고 숨을 거두었다(창35:16~20). 그의 후손들이 이와 같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다니, 문란한 성 문화가 초래한 참담한 결말이다. 기브아에서도 역시 롯의 집에 몰려간 폭도들처럼 여자를 마다하고 남자와 상관하겠다며 행패를 부렸다. 무질서와 변태와 폭력의 현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