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를 인도하고 사무실로 올라오니 남녀부부가 앉았다가 일어서며 인사를 하기에 “교회에 왔으면 새벽기도회 참석하시지 왜 여기 와 계세요?” 했더니 선교사 시취를 위해 늦지 않도록 일찍 와서 기도하며 대기하고 있다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일찍 오신 것 같군요!”하면서 마음속으로 ‘선교사 후보자의 마음 자세가 바로 되었구나’생각했다.
시취시간에 이들 부부에게 몇가지 물었는데 매우 기본적인 질문이었다. 이미 부부의 성명, 나이, 자녀, 학력, 소명, 나라, 사역후원 등 시취서류를 모두 점검하였고 일찍와서 기도하며 대기하는 자세도 50점이상의 기본합격을 했기 때문이다. “자 이제 그만 나가보세요!”했더니 좀 당황하며 그들은 저를 쳐다보면서 일어서서 나가기를 주저하기에 내가 먼저 일어나서 나가려하니 그들은 미심쩍게 인사를 하고 나갔다.
언젠가 또 선교사 시취를 하는데 목양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쿵쿵’했다. 노크 소리를 10가지로 분류해서 분석하기에 이미 짐작했다. 들어오시라고 했더니 건장한 부부가 좋은 인물에다가 잘 차려입고 와서 인사하며 앉았다. 이미 인성검사가 2-30초내에 끝났는데 점수가 별로였다. 노크소리부터 머리칼, 인물에 눈빛, 넥타이와 옷차림, 인사와 말소리 기도 후 앉은 자세 및 기타 태도에서 A, B, O, AB와 다혈질, 담즙질, 점액질, 신경질의 기질 등의 인성검사와 속사람의 됨됨이를 시험쳤다.
나의 첫 번 질문은 평소에 얼마나 다른 사람들의 영혼에 관심이 있는가와 개인전도에 대한 질문이었으나 별로 시원치가 않아 “양가의 부모님들은 신앙생활을 하시는가?”물었더니 아니라고 했다. 한번이라도 지옥 갈 부모님의 영혼을 생각해서 간절히 눈물로 복음을 전해보았느냐고 했더니 솔직히 아니라고 했다.
나는 언성을 약간 높여서 “가까이 계신 양가 부모님도 구원하지 못하면서 언어와 문화와 민족이 다른 먼나라 사람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겠어요! 내 생각에는 우선 부모님들의 구령부터 완수하고 다음에 선교사 시취를 다시 하도록 하세요! 자, 이제 그만 나가보세요!”
부부는 저를 유심히 쳐다보더니 고개를 떨구었다. 나는 계속해서 구령과 선교사로서의 소명과 사역에 대해 충고하고 나가라고 했으나 그들은 눈물을 닦으며 나가지 않았다. “당신들이 안 나가면 저가 먼저 나갑니다.”하고 사무실을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니 또 울고 있었다.
눈물에 약한 나였지만 또 권면했다. “여보세요. 여기서 저 앞에 흘릴 눈물이 있으면 양가 부모님 앞에 꿇어앉아 눈물흘리며 복음을 전해 가장 사랑하는 부모님의 영혼부터 구원하세요!” 그래도 나갈 생각이나 움직이지 않아 저가 밖으로 나왔다가 들어가니 그제야 그들은 나가고 없었다. 마지막 시위위원들의 종합심사에서 모두 합격이었으나 저혼자 불합격이었다.
해외선교회와 동남아선교회를 통합하여 하호성, 이금주 등의 여러 선교사를 시취하여 파송한 후 88년 두 번째 선교사 시취를 할 때의 일이 떠올랐다. “워낙 엄격하고 꼬치꼬치 따지는 위원장”이라는 소문이 퍼졌으나 서울대학원 졸업에 신대원 졸업한 똑똑한 선교사 후보자를 두 번째도 불합격시켰더니 그만 그는 포기하고 말았다. 너무 엄격하게 시취했던 일이 마음에 걸림이 되어 괴로웠다. 그런데 “엄격한 시취위원장”이란 소문이 되풀이해서 들려오던 터였다.
그 즈음 성령님의 인도로 깨달음을 주셨다. 예수님이 잡히실 때 “배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막14:52)친 청년 요한 마가가 바나바의 생질로 일차전도여행에 따라갔다가 중도에 돌아가므로(행13:13)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지게”(행15:39)하는 원인이 되었으나, 그 후 마가 요한은 베드로 사도 밑에 훈도를 받고 마가복음을 쓰고 나중 사도 요한 밑에 좋은 사역을 했고 끝으로 바울 사도에게까지 인정을 받아 만년에 디모데에게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4:11)했던 말씀이 떠올랐다.
저가 선교사 인선 시취규칙을 만들 때 위원 중에 한 사람이라도 불합격이면 재시험 치도록 했기 때문에 만일 저가 반대하면 만장일치가 되지 않아 이 건장한 선교사 후보는 재시험 칠 수 밖에 없었으나 저는 마가를 생각해서 주님께서 주의 종들을 다듬어 쓰시는 훌륭한 선교사가 되기를 바라면서 후하게 합격을 시켰다.
4년후에 건장한 부부 선교사가 서울교회에서 열린 교회진흥원 수료식에 참석하여 저에게 찾아와 매우 정중히 인사를 했다. 처음엔 몰라봤으나 그들은 “목사님, 감사합니다. 선교사 시취하던날 주신 교훈을 우리 부부는 지난 4년간 뼈속 깊이 새기고 실천하려고 노력했으며 안식년이 되어 귀국하여 이렇게 찾아 뵙고 인사드립니다.”했다. 저는 가슴이 뭉클거리며 감격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교제했다.
그 후론 좀 부족해도 웬만하면 합격을 시켰다. 20년간 640여명 선교사 시취를 했는데 그중에 8명의 파송선교사를 징계 퇴출시키게 되었다. 선교사 인선시취 징계위원장을 맡을 때 무엇보다도 선교사 한 사람이 바로서야 그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고 굳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선교역사의 윌리엄 캐리, 아도니람 져드슨, 허드슨 테일러를 위시하여 펜윅 선교사, 그리고 아펜셀러, 언더우드 뿐이겠는가? 하다윗 선교사 한 사람이 바로 서니 강원도에 30여 교회와 원주와 춘천 두 군인선교센터를 세우지 않았는가?
한번은 이재경 회장과 저는 자비량하여 필립핀 현지를 방문하고 현지의 동역 선교사들을 만나 청취하고 의논하고 본인을 만나고 또 사모도 만났으나 두 번이나 불러 심문한 결과 전체의 합의로 선교사를 징계하고 교단선교사에서 축출하게 되었다. 그 후 그가 한국에 들어오면 두 번이나 저를 찾아와 만나면 심한 불평과 공격을 하곤 했다.
그가 과연 바울에게서 “구리장색 알렉산더와 후메네오와 빌레도”(딤후 4:14, 딤후 2:17)가 아닐진데 저가 너무 심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사도 바울의 “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쫓으라”(고전5:13)에 해당되는지? 법과 규칙을 따르자니 사랑이 울고 사랑으로 용서를 따르자니 법규가 울었다.
어렸을 때 부친은 고려의 강감찬 대장군의 얘기를 들려주셨다. 강감찬이 젊었을 때 좀 유명해지자 강릉부사는 그가 어떤 사람인가 됨됨이를 알아보기 위해 불렀다. 그의 키가 우선 5척(155cm) 단구에 얼굴은 검고 풍골은 볼 것이 없어 부사는 처음부터 능멸하는 언사로 대했다. 강감찬은 이미 자기를 알아볼 줄 알고 “부사께서는 내 키가 오척 밖에 안 되어 무시하시는 것 같은데 여기 오척의 갈대 하나를 가져왔으니 꺽지 말고 팔소매 속에 똑바로 넣어보시지요?”
사또는 찡그리며 갈대를 받아 도포자락 속에 넣어보니 꺽지 않고는 도저히 넣을 수 없었다. 이 때 강감찬은 “사또님께서 갈대 하나도 꺽지않고 품에 넣을 수 없을진데 어찌 저 강감찬을 꺽어 품속에 넣으시렵니까?” 강릉부사는 풍체를 보고 얕잡아보았으나 그의 기개가 범상한 인물로 알아 고개를 끄덕이고 예의를 갖추어 환대했다. 강감찬은 그 후 고려의 대장군이 되어 거란 소손녕의 10만 군사를 물리친 고려의 영웅이 되었다.
한명국 목사
BWA전 부총재
예사랑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