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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하나님!

시시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것이지만 필자에 대한 이야기를 좀 써 볼까 한다. 이런 시시한 것에서 일지라도 어쩌면 독자들의 잘 발달된 감수성이 무엇인가 작은 것 하나는 건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파란하늘에 떠 있는 한 점의 구름을 보고도 시를 만들어내고, 시궁창의 더러움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건져낸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이자 소설 <눈고장(雪國)>의 저자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는 꽃잎에 맺힌 한 방울의 이슬에서 대해(大海)를 보고, 선향(線香)의 재가 떨어지는 소리에서 낙뢰(落雷)를 느낀다고 한다. 독자들도 필자의 시시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에서일지라도 무엇인가를 느껴 얻는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 


필자는 언젠가 이 난의 글에 환갑을 맞던 해 심한 어지럼증으로 병원 응급실 신세를 지며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쓴 적이 있다.
그때, 나중에 이석증이라는 것을 알고 안심했지만, 알기 전까지는 너무도 어지러워 죽음을 생각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도 필자는 이상하게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그다지 느끼지 못했다. 이제 살만큼 살았고 누릴 만큼 누렸으니 지금 죽는다 해도 별로 아쉬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일을 하지 못하고 죽는 것만은 못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러고도 십년을 더 살아 지금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그 일을 하며 살고 있다. 사실을 말하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것인지, 아니면 착각하여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다만 어떠한 일도 성경에 위배되면 하나님의 일이 될 수 없고, 부합하면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맡겨 주신 사명이라 말한다 해서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지금 믿음에 관한 글을 하나 쓰고 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일이라 해서 무리일 리 없고,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일이라 해서 안 될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믿음의 글을 쓴다 하면서 믿음의 글이 아닌, 그러니까 성경정신에 어긋난 글을 쓴다면 그야말로 큰일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도 아니며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이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고, 그런 우를 범하지 말게 해 주시라 기도드리고 있다. 하나님께서 독자들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을 깨닫게 해주시고, 하나님의 독자들을 향한 뜻을 알게 해 주시라 기도드리고 있다. 믿음으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직하게 진실을 쓰도록 해 주시라고도 기도드리고 있다. 


지금 쓰고 있는 글은 오래 전에 계획한 것인데, 엄밀히 말하면 필자 스스로가 한 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계획된 것이다. 이것을 필자는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 계획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그것이 한 권의 책으로 알맞은 분량이 됐으면 하고 바랐으나, 그렇게 될 가능성은 이미 사라져 버리고, 두툼하거나 아니면 두 권으로 나누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지금은 될 수 있는 대로 원고의 분량에 구애를 받지 않고 써지는 대로 쓰려 하고 있다.


본래는 집필 기간을 5년이나 그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지금의 상태로 계속 간다면 아마 2년 정도로 끝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일 매일을 하루에 여섯 시간 이상씩 자판을 두드리며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원래가 허약체질인데다가 허리도 약한 편이고 칠순을 넘긴 나이이다 보니 중노동도 그런 중노동이 없다. 한 번에 두어 시간씩 앉아 있다 보면 허리도 아프고 온몸이 다 뻐근하다. 나이 탓도 있어 머리마저 낡은 기계 같아 피로가 쉽게 온다.


지난 2월에 일을 시작하여 5개월여를 그리했더니 지난여름에는 몸도 정신도 지칠 대로 지치게 되었었다. 쉬면 될 일을 가지고 뭐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어디에 있었느냐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필자는 그럴 수가 없는 사람이다. 일하는 것이 그 어떤 취미보다 재미있으니 쉴 수가 없었다.


쉬는 것은 다음의 작업을 위해 피로를 풀 때뿐이었고 그것은 지금도 그렇다. 그런 필자이다 보니 쉬기 위해서는 집을 떠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여행이라도 떠나려 했으나 그도 쉽지 않다. 한여름은 휴가철이라서 가는 곳마다에 사람들이 북적거릴 테니 싫고, 휴가철이 지나니 날씨가 받쳐 주지 않았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사진을 찍을 수가 없는 것이다. 사진을 좋아하는데다가 욕심까지 많은 사람이다 보니 필자는 날씨가 좋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날이 아니면 여행을 떠나지 않는다.


그러니 필자는 여행 날짜를 미리 잡지 않는다. 밤에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날씨가 좋다 하면 그 이튿날 바로 떠난다. 이는 퇴직을 한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도 하다.
구월 초에야 날씨를 확인하고 선유도로 떠났다. 필자가 사는 전주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이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 어떤 곳일까 하는 궁금증이 가슴을 가볍게 설레게 했다.


가서 보니 작지만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섬이었다. 명사십리와 그 주변이 특히 아름다웠다. 날씨까지 받쳐 주어 사진 찍기에 그만이었다.
전에는 날씨가 좋으면 카메라를 둘러메고 나가고 싶어 안달이었는데, 지금하고 있는 일을 시작하고부터는 그런 일이 언젠지도 모르게 없어지게 됐다. 일이 사진을 찍는 일보다 재미있는 것이다. 그래서 걱정이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취미 없는 삶만큼 삭막한 인생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여행지에서 찍어 보니 예전과 다름이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필자에게 크고 큰 은총을 하나 내려 주셨는데, 그것은 무슨 일이고 일단 시작하면 거기에 몰입하고 만다는 것이다. 일도 취미처럼 재미있게 한다. 학문이라는 것을 할 때도 그랬다. 남들은 쓰면서 목에서 신물이 올라온다는 논문도 필자는 취미처럼 즐기며 썼다. 그러기에 필자처럼 아둔한 사람이지만 그 어렵다는 학문도 남들만큼은 아니지만 정년 때까지 별 다른 탈 없이 할 수 있었지 않나 한다.


선유도에서 보낸 일박이일은 참으로 행복했다.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사진을 실컷 찍을 수 있어 좋았다. 고장이 나 갯벌에 오랫동안 방치해 둔 딸딸이를 찍는 데에 많은 시간을 썼다. 필자는 마음에 드는 피사체를 하나 발견하면 질릴 때까지 찍는다. 질리지 않으면 피곤해서 못 견딜 때까지 찍는다.


갯벌에서 무엇인가 작업을 하다 보면 무척 힘이 든다. 그런데 몇 시간씩 이틀에 걸쳐 찍었으니 몸이 발걸음을 옮기기조차 힘이 들 정도로 지쳐 있었다. 그런데도 머리는 푸른 하늘만큼이나 맑아졌다. 취미생활의 가치를 유감없이 느낄 수 있는 여행이었다.


돌아와서 지금까지 맑은 머리로 일을 하고 있다. 매일을 하루 같이 매달리는 일이니 싫증도 날 법하지만, 싫증은커녕 너무도 즐겁고 행복해서 믿겨지지 않을 정도이다. 몸은 지치고 피곤해도 마음만은 하늘나라이다. 스포츠 마니아가 몸이 파김치가 되도록 지쳐 있으면서도 하던 게임을 그만두지 못하고 계속 즐기는 것 같다면 어느 정도는 설명이 될지 모르겠다.


요즈음은 일을 하는 즐거움에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일을 하고 있다는 만족감까지 더해져 행복이 절정에 다다랐다는 느낌이다. 이와 같은 나날이다 보니 내가 지금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이나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때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눈살을 찌푸리고 계시는데, 혼자서 신이나 북 치고 장구 치며 좋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없지 않다.
그러나 아니다. 전술했듯이 나름대로 기도하며 성경정신을 붙잡고 하고 있는 일을 하나님께서 못마땅해 하실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여기에서 독자 여러분께 고백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필자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나서 사십여 년을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 왔다. 그런데 지금의 이 행복을, 그런 자신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주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아주 희미하게 이기는 하지만 몇 번인가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자신이 걸어 온 인생길을 돌아다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아 주시지 않았다면 벌써 채찍을 맞아 죽었을 만큼 허물 많은 삶을 살아 온 것이 필자였던 것이다. 필자의 행복은 오로지 오래 참아 주시며 사랑으로 감싸 주신 하나님의 은혜였다. 이를 깨닫자 행복은 배가 된 느낌이었다. 오, 하나님!
임 종 석 목사
우리집교회 협동목사
충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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