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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에 담긴 신학 산책

요한복음에서 부활현현의 체험과 부활신학(11)

신약성경에 담긴 신학 산책

요한복음에서 부활현현의 체험과 부활신학(11)

사복음서 저자들 중에서 요한만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의 현현을 세 번으로 제시한다. 요한은 그만큼 예수의 현현에 대한 제자들의 체험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그 체험을 통하여 예수의 부활을 깨닫고 확신하게 되었으며 그런 깨달음과 확신은 그들의 삶에 심대한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예수의 세 번째 현현에 관한 묘사는 여러 가지 독립된 전승들에 근거했다: (1) 부활하신 주님의 갈릴리 현현(28:16~18), (2) 기적적인 고기 잡음(5:1~11), (3) 부활하신 주님과의 식사(24:30~31, 41~43), (4) 베드로의 위임(5:10; 16:18), 그리고 (5) 베드로의 순교에 대한 예견과 그 사랑 받은 제자의 운명(10:23; 16:28; 9:1; 13:30).

이러한 전승들이 중심인물인 베드로를 중심으로 엮어진다. 그는 예수의 부활에 대한 일차 증인이요 선교사이며 목자요 순교자였다. 저자는 여기서 요한복음 20장의 사건을 전제하면서도 그 때의 사건들과는 독립적인 사건으로 제시한다. 저자는 부활하신 주님을 인식하는 것과 예수의 양들을 인도하고 지도하는 일에 있어서 베드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부활하신 예수의 갈릴리 현현은 마가복음 16:7(14:28의 예고)과 마태복음 28:16~20에서도 언급된다.

이 사건은 누가복음 5장에 나오는 기적적으로 고기를 잡은 사건과 베드로의 소명 사건과 연결된다(5:2~8, 10~11). 두 사건들이 서로 다른 문맥에서 기적적으로 고기를 잡은 이야기로 발전되었다. 이 사건이 갈릴리 현현의 기대를 반영하고(14:28; 16:7), 또 요한복음서의 부활 사건 문맥에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저자가 이것을 현현 이야기로 간주하고 그것을 여기에 추가한 것을 암시한다. 그것은 예수와 베드로 사이의 대화에 적절하게 연결된다. 이 단락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1) 물고기 잡는 제자들(21:1~3); (2) 예수의 현현(21:4~7); (3) 예수가 준비한 아침식사(21:8~14).

물고기를 잡는 제자들의 장면은 예수의 갈릴리 현현에 관한 소개로부터 시작한다: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이 이러하니라”(21:1). “이 일들 후에라는 어구는 요한이 사건의 진행을 나타내기 위하여 즐겨 사용한 것이다(2:12; 3:22; 6:1). 저자는 라는 부사어를 통하여 예수의 새로운 현현에 관심을 기울인다. 디베랴 바다는 갈릴리 바다의 다른 이름이다(6:1). 저자는 이 사건을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자기 자신을 나타내신 것으로 지적한다. ‘나타내다는 동사는 요한복음에서 예수의 영광스러운 존재와 활동과 관련하여 자주 사용되었지만(1:31; 2:11; 3:21; 7:4; 9:3; 17:6), 부활하신 예수의 현현의 의미로는 여기서만 사용된다. 이 동사는 마가복음에서도 부활현현의 의미로 사용되었다(16:12, 14). 저자는 이 동사를 이 구절에서 두 번 사용하고 21:14에서 세 번째 사용함을 통하여 이 장면이 부활현현 사건인 것을 강조한다. 저자는 연결사 와 함께 이렇게 나타내셨다라는 중복적인 언급을 통하여 부활하신 예수의 또 다른 현현 사실을 강조한다. 이 동사의 사용에 있어서, 앞의 두 번은 능동태로 사용되어 예수께서 자기 자신을 제자들에게 나타내신 것을 제시하는 반면, 세 번째는 수동태로 사용되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 곧 그들에게 보이신 체험이 부각된다.

저자는 이 사건의 등장인물들을 소개한다: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21:2). 여기서 언급되는 제자들의 명단은 공관복음서들과 매우 다르다. 시몬 베드로라는 이중적 이름은 이 복음서에서 일관되게 불리어지는데(1:40, 42; 6:68; 18:25; 20:2), 공관복음서 명단들에서도 항상 맨 앞에 나온다. 디두모라 하는 도마(11:16; 20:24)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1:45; cf. 2:1)은 요한복음서에만 언급된다. 세베대의 아들들에 관한 언급은 요한복음서에서 여기에만 나오는데, 그들은 공관복음서들의 경우에서와 같이 야고보와 요한을 가리킨다(1:19; 3:17).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다른 두 제자 중에는, 이 사건 중간에 언급되는 사람으로서, 분명히 그 사랑 받은 제자가 포함된다.

이런 점에서도, 요한에 따르면, 세베대의 아들 요한과 그 사랑 받은 제자는 서로 다른 인물이다. 이 복음서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 갈릴리 사람 안드레와 빌립은 언급되지 않는다. 막달라 마리아를 포함하여 여자들도 언급되지 않는다. 이 일곱 제자들이 왜 거기에 함께 있었는지에 관해서도 언급되지 않는다. 그들은 부활의 예수를 만나기 위하여 모여 있었는가(14:28; 16:7)? 그러나 이 복음서 어디에서도 예수가 갈릴리에서 현현할 것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저자는 이 사건을 세 번째 현현으로 규정함을 통하여 앞에서 언급된 두 번의 예루살렘 현현과 갈릴리 현현을 연결시킨다.

이 명단에서 앞의 세 사람은 예수와의 관계에 있어서 특별한 국면을 가진 사람들이다. (1) 그들은 예수를 부인하거나 의문을 가졌다: 베드로는 부인했고 도마는 신체적 증명을 요구했으며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나오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2) 그들은 예수에 대한 믿음을 명백하게 고백했다: 베드로는 예수를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6:69), 도마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20:28), 그리고 나다나엘은 하나님의 아들과 이스라엘의 왕”(1:49). (3) 예수는 그들의 고백 후에 그 고백에 따른 헌신의 깊이에 관한 의문을 표현하는 선언을 했다(6:70; 20:29; 1:50). 이 사람들 외에 다른 어떤 인물도 예수와의 관계에 있어서 이것과 유사한 형태를 가진 사람은 없다. 저자는 이름이 언급된 이 사람들을 통하여 예수를 따르는 제자직은 믿음과 의문 그리고 용기와 비겁의 과정을 통하여 성장해 나가는 것을 나타낸다.

저자는 제자들 사이에 일어난 일을 언급하기 시작한다: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21:3). “물고기를 잡다라는 동사가 이 복음서에서 여기서 유일하게 사용된다. 요한복음서에는, 공관복음서들에서 명백하게 제시된 것과 달리, 지금까지 예수의 제자들이 어부들이었다는 것이 언급되지 않았다. 요한은 공관복음서들에 나오는 소명 이야기를 생략하고 침례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를 따라간 것으로 제시했다(1:35~42). 요한에게 있어서 제자들의 이전 직업은 이미 알려져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간다라는 말과 우리도 당신과 함께 간다라는 것은 예수를 따르기 위하여 그들이 버렸던 과거의 직업으로 돌아간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 물고기를 잡다라는 동사의 부정사가 사용된 것은 베드로가 그에게 익숙한 갈릴리 바다에서의 옛 삶으로 돌아간 것을 암시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이 동사를, 요한이 즐겨 사용한 이중적 의미를 따라, 제자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가리키는 비유적 의미로 보는 견해도 있다. 제자들은 이미 부활의 예수로부터 보냄을 받고 사명을 위임받았기 때문에(20:21, 23), 여기서 베드로의 말과 제자들의 동의는 그들이 사명을 감당하기 시작한 것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이 사건에 담긴 그런 상징성은 그들이 잡은 물고기를 가리키는 단어(21:6, 8, 11)에서도 나타나는데, 그것은 초기 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라는 그들의 신앙을 나타내기 위하여 상징적으로 사용한 단어였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간다라는 베드로의 선언은 세상을 향해 복음을 증언하는 제자들의 임무의 시작을 선언한 셈이다. 따라서 저자는 이 사건을 통하여 선교의 임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할 뿐 아니라, 그 분의 도움을 받을 때에만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려 했다는 것이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이 자기 자신들의 의욕을 앞세워 나갔을 때는 완전히 실패했지만, 그러나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된다는 상징적 의미를 전달한다. 당시 갈릴리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는 일은 주로 밤에 이루어졌다. 누가도 베드로의 소명 이야기에서 그가 물고기를 잡으려고 밤새도록 노력했다고 전한다(5:5). 그러나 요한이 즐겨 사용한 밤과 낮의 상징성에 따르면, 그 결과는 이미 예견되었다: 그 밤에 그들은 아무 것도 잡지 못했다. ‘잡다는 단어도 물고기를 잡거나 사냥하는 것에 사용되었다. 요한복음서에서 이 동사는 예수의 반대자들이 그를 잡으려는 시도를 가리키기 위하여 이미 여러 차례 사용되었다(7:30, 32, 44; 8:20; 10:39; 11:57). 물고기를 잡는 것이 제자들의 사명을 가리킨다는 상징적 의미에서 보면, 그들은 복음전도의 결실인 새 교인을 얻기 위하여 밤새도록 노력했으나 아무 결과도 얻지 못한 것이 된다. 주 예수의 도움이 없는 상황에서 그들은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cf. 15:5).

김광수 교수 / 침신대 신학과(신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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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차 총회(총회장 이욥 목사)는 지난 6월 30일과 7월 1일 양일간 한국침례신학대학교(총장 피영민) 페트라홀에서 각 지방회가 목사 청원한 124명의 예비 목회자가 참석한 가운데 115차 정기총회 목사인준대상자 교육을 진행했다. 개회예배는 총회 교육부장 김성렬 목사(만남의)의 사회로 한국침신대 피영민 총장이 대표로 기도한 뒤, 이욥 총회장이 “베드로가 스카웃 받은 비결”(눅 5:3~11)이란 제목으로 설교했다. 이욥 목사는 설교를 통해, “베드로는 부족함이 많은 사람 중 하나였지만 예수님께서 사용하셨던 크신 뜻이 있었기에 귀한 일꾼으로 사용받았다”며 “하나님은 외모나 성격, 학력과는 무관하게 하나님께서 택하신 뜻대로 사용하셨다. 이번 인준 교육을 받는 이들에게도 하나님의 부르심의 귀한 여정을 감당하며 놀라운 인도하심을 경험하기를 원한다”고 전한 뒤, 축도로 개회예배를 마쳤다. 이어 총회 총무 김일엽 목사가 이번 교육 일정에 대해 설명하며 “목사 인준자 교육은 우리 교단 목회자로 인증을 받는 첫걸음이기에 침례교회의 사명감을 품으며 1박 2일 동안 다시금 사명을 재점검하고 확인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격려하며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했다. 첫 강의는 해외선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