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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국 목사의 회상록 - 배국원 총장과 방호선 원장

“한 목사님, 미국서 공부하는 우리 국원이 위해 기도해 주세요!”
경제적으로 어려워 유학비를 송금하시지 못할 때마다 아마 가끔 기도를 부탁하셨으리라. 오늘의 총장 취임은 그 어느 누구보다 남편 없이 삼남매를 키우느라 애쓰신 방 원장의 기도 때문이었으리라. “목사님 얘를 좀 보세요!” 한번은 자매복지회 설교를 한 뒤 근래에 입원한 14세의 미혼모를 소개하시는데 만삭이 된 배를 보이고 두 손목을 들어보였다.

 

철사줄로 손목을 묶어 가두었는데 계속 탈출하려 하니 철사줄이 손목을 갉아먹어 피가 흐르다가 상처가 굵은 팔찌자욱처럼 피가 엉켰는데 잘 간호하여 상처가 나아지고 있었다. 가련한 14세 미혼모를 안고 우리는 함께기도하며 눈물을 닦았고 우리 서울교회도 그 때부터 작지만 선교비를 보내게 되었다.


한국이 낳은 테레사 같은 어머니 방호선 원장의 자비와 사랑으로 배국원 신임총장도 탁월한 지도력에 학사행정을 잘 수행하여 침례신학대학교를 그가 나온 연세대, 사우스웨스턴 신학교 및 하버드대 같은 세계적 명문신학대학교로 발전시킬 것을 기대하면서 저는 목메인 기침소리로 축사를 더 길게 못하고 말았으나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 될 것을 희원하며 기도하는 바이다.

 

방호선 원장은 서울시청 부녀부 과장을 하시다가 마포에 자매복지원을 개설한 후 시의 도움으로 구로에 이전하여 더 많은 불우여성들(가출소녀, 소박맞은 여인, 정신병자, 지체장애자, 남편의 구타로 도망쳐 나온 여인들 등)을 받았고 내발산동으로 건물을 지어 옮겼다가 또 옮겨 건축하며 은강복지회로 키웠다. 슬하에 북미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서 사역하신 배국진 목사와 어머니를 따라 전여회장을 지낸 배성연 집사 및 배국원 총장과 차수정 자부 교수를 두셨다.

 

박성웅 목사와 새댁 사랑
신학교 기숙사에 신혼살림을 차렸는데 이경숙 색시는 충북 영동의 복스런 아가씨로 충청도 양반이었다. 공부하면서 신혼생활에 경제적 여건도 여의치 않는데다 신랑은 어쩌다 그날은 화가 치밀었던 모양이다. 신부를 한대 쥐어박으려니 어디 때릴 곳은 없을 뿐만 아니라 사랑스런 아내라 어쩔수 없어 그만 자기 머리를 방바닥에다 몇번 내리 찍으니 이마에 피가 나는 것을 본 색시는 깜짝 놀라서 “여보, 내가 잘못했어요!”하면서 말리고 서방을 껴안고 울고 말았다.

 

 “이 기발하고 독특한 방법으로 결혼 초장에 아내의 기를 꺽어 아주 화목한 가정이 되었다”고 당시 부부 기숙사에 함께 살던 권혁봉 학생에게 뒤늦게 듣고 나도 깨달은 바가 있었는데, 그것은 박성웅 목사의 이마에 상처가 예수님의 “가시면류관 흔적”이라 생각되었다.


68년 원주춘천 군인센타 군목부를 마치고 복학하여 이원교회 목회를 하면서 신대원 공부를 하다보니 가끔 결석을 했다. 강의노트를 빌려서 필기를 했는데 박형중이 노트를 빌려왔는데 글씨를 30° 정도 뒤로 재켜서 영어 필기체 같이 갈겨 썼으니 절반도 도무지 알아 볼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박성웅이의 노트를 빌렸더니 글씨를 아주 반듯하게 정자로 잘 썼고 교수의 기침소리와 콧똥소리까지 자세하게 받아써서 가끔 신세진 일이 기억된다. 이 친구 성웅이도 앞으로 한건 할 것이 분명히 모였고, 글씨를 엘리야가 승천하듯이 휘갈겨 날려 쓴 형중이도 한건 하겠구나 생각했었다.

 

임성열 목사의 양부모 효도
지난 달 무주구천동 침례교회 집회를 인도하던 중 앞자리에 앉아 말씀을 잘 듣는 여자에게 갖고있는 성경을 들고 나오게 해서 열어보았더니 찢어진 한 장이 있어 하나님의 말씀을 담은 성경책을 이렇게 보관해서야 되겠느냐고 책망하고 문방구에 가서 투명 스카치 테이프을 구해 잘 붙이라고 했는데 겸손히 대답하고 자리에 들어가 앉았다.


“한 목사님, 떠나시기 전에 집에 같이 가셔서 장인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임성열 목사를 따라 언덕받이로 올라갔더니 여러개의 방을 가진 사택으로 안내했다. 젊을 땐 장로교회 장로로 잘 섬겼는데 5년 전부터 거동이 불편해지셨고 지금은 누워계신다고 했다. 기도 후에 저는 떠나기 전 엇저녁에 찢어진 성경 때문에 책망했던 여집사는 바로 임목사의 장모이며 그 성경이 본인의 것이 아니고 교회보관용이었음을 전해듣고 정말 미안해서 사과를 했더니 도리어 말씀 사랑하라는 교훈에 은혜를 받았다고 밝게 웃으시며 대답했다.

 

집회를 마치고 덕유산 자락을 따라 무주 구천동을 떠나오면서 이 산골벽지에 목회하면서 양가의 부모님들을 효성을 다해 섬기는 임성열 목사와 사모는 앞으로 큰 그릇으로 쓰임받을 귀한 주님의 종이라 생각했다.


임목사의 부친 임암천 목사님은 6.25 전란에 월남하여 울릉도 저동교회에 오셔서 목회하셨는데 대전포항 총회분규시 교인들의 갈등으로 자진하여 떠나실 때 뱃머리까지 전송하는 성도들에게 환한 웃음을 보이셨던 뒷모습은 어린 저의 마음에 늘 남았는데 그 후 저동교회는 임암천 목사님을 다시 그리워 모셨고 교회가 재촉하여 결혼도 하신 후 잘 목회하시다가 섬을 떠나신 후 지덕 목사가 개척한 반석교회로 부임하셨고 그 후 91세에 소천하셨다.

 

정진황 학장의 축하인사
23년전 89년 10월 6명이 사망하고 7명이 4도화상으로 불속에서 살았으나 마치 도깨비 모습이 된 서울교회 유치원화재 수습을 위해 정신없이 이곳 저곳을 다니다 대전을 방문해서 여러 목사님들을 초청하여 화재경위 설명과 후원을 호소하게 되었다. 안종만 목사께서 마련한 식당에서 격려와 위로의 인사를 받고 있었다.


“한 목사님, 축하합니다!?” 누군가 큰소리로 인사했다.
설마 여기 나를 보고 한 말은 아니겠지 생각이 들다가 고개를 들어 소리나는 입구쪽을 보니 정진황 학장과 몇 분이 들어오고 있었다. 어리둥절한 나에게 다가온 정 학장은 악수를 하고 가시 “축하합니다!” 했을 때 주위의 목사들도 의아해했다. 이분이 무엇인가 잘못알고 인사하시는지 아니면 농담인지? 나의 이런 처지를 비꼬아서 하는 말은 아닐테고? 따뜻한 격려와 위로의 말 한마디는 못하더라도 도대체 무슨 인사인가? ...... 나중에 깨달으니 그 큰 재난이 욥의 시련일줄이야!


1954년 대구에 처음 생긴 반월당 덕산침례교회에 고등학교 1학년째 다니며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했는데 김기석 목사님과 안재환 집사 등은 대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 않고 대전에 처음 생긴 신학교에 간 “진황이”와 “윤백이”(정진황, 노윤백)에 대해 자랍스럽게 자주 얘기했었다.

 

 여름방학 때는 우리 고등부 학생들에게 RA와 GA를 소개하는 특강을 했는데 당시 들리는 말은 졸업하면 곧 미국유학을 갈 것이라 해서 우리의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60여 년이 지나고 전번 배총장 취임식에서 만나니 그 호탕한 너털웃음에 대범한 기개는 사라지고 세월의 흐름속에 거동이 불편하셔서 가슴이 아팠다.
한명국 목사 / 증경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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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차 총회, KT·금융결제원과 손잡고 ‘스마트 목회 환경’ 구축
우리교단 114차 총회(총회장 이욥)는 지난 6월 19일 여의도총회빌딩에서 KT(대표 김영섭), 금융결제원(원장 박종석)과 함께 ‘스마트 목회 환경 구축을 위한 3자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을 통해 디지털 기술과 신앙이 결합된 새로운 목회·선교 생태계 조성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이번 협약의 핵심은 전국 3750개 침례교회와 산하 기관을 대상으로 △스마트헌금 키오스크 △침례교 전용 플랫폼 △스마트 카페 복합공간 등을 도입해 디지털 기반의 목회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편의성을 넘어서, MZ세대와의 소통, 기부 문화의 신뢰성 제고, 친환경 사회 공헌 확대 등 다방면에서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협약에 따라 각 기관은 다음과 같은 역할을 맡는다. 총회는 교회 및 기관의 스마트 인프라 도입을 위한 행정 지원과 참여 기반을 조성하고, KT는 통신 및 디지털 전환(DX) 기술을 바탕으로 플랫폼 개발과 키오스크 설치, 유지보수를 책임진다. 금융결제원은 결제서비스 및 기부 시스템 연동 등 금융 인프라를 제공해, 신도들이 손쉽게 스마트 환경을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날 협약식에서 이욥 총회장은 “이번 협약은 복음 전파 방식의 혁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