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목사님으로부터 소개받은 조세형입니다. 저를 서울침례교회에 간증할 수 있도록 세워주신 목사님과 교회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여섯살 때 고아가 된 후 어려서부터 배운것은 도둑질로 반평생 넘게 교도소를 드나들었습니다.
절도죄로 수감되었으나 탈옥하여 6일만에 안동에서 다시 붙잡혀 수감되었을 땐 15년형을 받았는데 7년째 되던해에 교회와 성도들의 도움으로 교도소내에서 성경을 읽고 신앙생활로 교화되어 55세에 모범수로 출소했고 이렇게 여러 교회의 초청으로 신앙간증을 하고 다닙니다... 사실 집털이를 한번하면 3,000만원씩 생기고 또 금은방털이를 하면 억대의 수입이 생길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간증해봤자 몇십만원 밖에 생기지 않아도 감사함으로 받습니다”(중략)
우리 성도들은 그의 간증을 듣고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조세형은 57세의 나이에 300여명을 거느린 중소기업의 사장인 39세의 이은경과 1999년 행운의 결혼을 하고 아들도 낳았으나 얼마 후 이혼하게 되었다. 2000년 7월 선교활동차 일본에 건너갔는데 도쿄의 한 주택가에서 그놈의 도벽이 발동하여 빈집 털이로 일본 경찰의 집요한 추적에 붙잡혀 3년 반 옥고를 치루고 2004년 귀국 후 집에 칩거하더니 “배운것이 도둑질”이라 마포 서교동치과의사 집에 160만원 금품털이로 3년 복역, 2010년 4인조 금방털이범의 박물아비로 받은 1억중 1,000만원 챙긴 죄로 2년 옥고 중 감형으로 2011년 9월초 출소했다.
지금 나와 동갑내기로 75세까지 큰집(유치장, 소년원, 교도소, 감호소)을 마치 내집처럼 일평생을 살아온 그 원인은 무엇일까? 어려서 고아로 자라면서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탓일까? 우리 사회의 구조와 냉대 때문인가?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속담처럼 돈에 비뚫어진 “도벽사랑”인가? 나와 너의 교회의 사랑 부족 때문인가? 저도 8개월 교도소 생활을 했고 40여년 교도소선교 활동을 해왔지만 아직도 헷갈리는 세상이라서 그 해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놈의 세상이 온통 도둑놈의 세상이 아니라 이제는 도적(盜賊)떼의 세상이 되어가고 있으니, “도둑의 씨가 따로 없다”는 속담이 옳은 말로 들린다. 옛날엔 모기와 하루살이만 거미줄에 걸리고 똥파리나 풍뎅이는 거미줄 법망을 뚫고 나간다고 하더니, 이제는 좀 도둑이나 국회의원, 장관 및 대재벌 같은 거물급 큰 도적들도 걸려들어 감방신세를 면치 못하는 모양이다.
그놈의 “돈이 무엇이길래?” 돈 앞에는 졸부도 최고의 권력자도 쪽을 못쓰는지? 우리 역대 대통령들의 종말을 보았고 다음 대통령들의 종국도 변함이 없으리라! 전번에도 돈 많이 쓰고 이번에도 선거비 많이 쓴 자가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딤전6:10)라고 바울은 말했고, 예수님도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마6:24)고 말씀 하셨다.
예수님이 만난 세리장 마태는 ‘삥땅’의 돈방석에서 일어나 도벽을 씻고 훌륭한 제자가 되었고, 예수님을 집에 모신 삭개오는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으며 토색한 재물은 4배나 갚겠다고(눅19:8) 회개했을 때 구원을 약속하셨고, 십자가의 우편 강도에게도 낙원을 약속하셨으나, 어려서부터 계명을 잘 지킨 부자 청년은 재물이 많은 고로 근심하며 주님을 떠나갔다. 예수님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것보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마19:16~26)고 말씀하셨다. “그리아니하실지라도”(단3:18) 신앙으로 황금우상에게 절하지 아니한 오늘날 다니엘의 세 친구는 교회 안에서도 찾을 수 있겠는가?!
우리 부부가 은혜받으면 교회도
낮 10시부터 부흥회가 시작되는데 기도실 문을 열고 몇번 내다보아도 10명도 모이지 않아서 정현태 담임목사를 불러서 “저는 무거운 마음으로 계룡산에 들어가 이 무더운 8월 초에 한 주간을 금식기도하고 공주침례교회부흥회를 인도하러 왔는데 교인이 10여명도 안모였고 굶어서 허기진 몸이라 그만 가보겠으니 목사님이 부흥강사이시라 잘 해 보이소!”
정 목사님은 봇짐을 들고 나가려는 저의 두다리를 꽉 붙잡고 늘어지면서 “강사님을 모시고 부흥회를 열었는데 세상에 강사가 떠나가면 나는 어쩌란 말이요! 지금은 날씨가 덥고 충청도 사람이라 늦게라도 30명은 나올테니 집회를 인도해주세요! 그리고 조금 앉아서 내 얘기를 우선 듣고난 뒤에 결정해주세요”라고 간청해서 짐을 내려놓고 앉았다.
“작년에 안면도 침례교회에서 박 집사가 찾아와 부흥회를 초청해 갔는데 첫날 저녁에도 다음날 새벽에도, 낮공부 시간에도 계속 두사람만 앉아 있어서 ‘교인이 더 올 사람이 없어요?’했더니, ‘강사 목사님 죄송합니다 우리 부부가 은혜받으면 우리 교회도 부흥할 줄 믿어요’ 했지요” “명색이 나도 부흥회를 인도하면서 두 사람 앉혀놓고 집회하기는 처음이었으나 박집사 내외의 대답에 도리어 감동을 받고 계속 집회를 했더니 나중에 30여명이 모였지요! 강사님 그냥 가시면 어쩌란 말이요! 자 나가서 낮집회부터 시작합시다!” 부흥강사는 한주간 담임목사의 머슴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때는 한달간 4교회를 사역했는데 그의 간청과 박 집사의 간증에 부끄러운 마음으로 짐을 풀고 나의 철없는 교만을 내려놓고 진짜 강사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왔으니 시키는대로 대언자로서 나팔불기로 결심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66년 여름 함백산과 태백산 금식기도를 하다가 밤중에 너무 추워서 하산했는데 길 옆 아래에 불빛이 보이는 작은 교회로 들어가서 새벽기도를 마치고 만난 목사가 당시 동점침례교회 정현태 목사였다.
“일제 때 저는 고등계 형사로 우리 조선사람을 심하게 고문한 속죄를 위해 목사가 된뒤 3년간 꿇어앉아 기도했는데 양쪽 발의 복숭씨와 발등에 구덕살이 검게 솟아났지요!”라고 간증했다.
이듬해 춘천군인센타 관장으로 춘천교회 부목으로 있을 때 장시정 목사님께 말씀드려 강사로 모시고 은혜를 받았다. 그 때 정목사는 나를 강사로 모시고 부흥회를 약속한대로 제대한 후 신대원 복학중인 저를 초청한 것이다.
순종하는 마음으로 월요일 낮 집회를 마칠때는 과연 늦게오신 노인들을 합해서 30명이 되었다.
집회 후 정 목사는 큰 과일바구니를 들고 오셔서 “우리 안수기도 할 때 맨 앞쪽 강단앞에 앉은 할머니를 기억하시지요?”했다. 생각해보니 부흥강사의 상투어처럼 “꿔다놓은 보릿자루”같이 아무 반응없이 앉았던 노모를 기억했다.
“목사님 그는 눈도 침침하고 귀가 안들려도 언제나 시간맞춰 강단 앞에 앉는 분인데 우리가 안수할 때 환상을 보았는데 흰옷입은 천사같은 분이 나타나 입을 벌리라고 해서 벌렸더니 큰 사탕을 입에 넣어 주셔서 어찌나 속이 시원하고 날아갈듯 기뻐서 삼지돈을 다 풀어 과일상자를 사왔다고 했으니 잘 잡수시고 힘내세요. 이번 성회는 첫 시간부터 좋은 징조가 보이니 큰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계속 사람이 모이더니 자리가 메꿔지고 마지막 금요일 저녁에는 노영식 목사가 떠나실 때 말썽을 일으킨 신아일보 기자 홍 집사와 떠났다가 돌아온 교인과 다른 교회 성도들을 합해 강단자리까지 메꿨다. 강사의 의견도 묻지않고 오는 월요일 새벽까지 꼭 한주간 부흥회를 연장한다고 광고하고 박수쳤다.
집회 후 저는 초등학교 교사 두달 봉급에 해당하는 5만원을 받아 어쩔줄 몰랐는데 신학교를 찾아와 만난 정 목사는 쌀 한가마니를 매달 받고 사례비도 갑절로 늘어났고 교인들고 많이 늘어났다고 기뻐하신 모습을 보고 주님께 감사를 드렸다.
한명국 목사 / 서울교회 은퇴선교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