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아비에게 패륜을 행하는 아들, 아비에게 반역하는 아들의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문학 작품들 가운데서도 특별히 비극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기억되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쓴 4대 비극 햄릿, 오델로, 리어왕, 맥베드 등을 비극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그리스 신화에서 우리를 슬프게 하는 테베왕‘오이디푸스’의 신화는 우리를 많이 슬프게 합니다. 자기의 친부인지도 모르고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어머니 인줄 모르고 자기 왕비로 맞은 ‘오이디푸스’의 신화는 더 이상의 비극은 없을 것 같습니다.
최근 우리 극장가에서 흥행한 ‘사도세자’의 이야기는 조선 21대 영조 왕이 그의 둘째 아들 세자 ‘이선’을 뒤주에 넣고 죽인 슬픈 역사입니다. 하지만 어떤 역사나 작품, 신화도 비교 될 수 없는 슬픈 역사가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었던 다윗 왕 때 일어납니다.
다윗 왕의 삼남 ‘압살롬’의 반역과 패륜사건은 너무 엄청나서 글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패륜아이고 반역자인 아들 “압살롬을 끝까지 사랑한 이 사랑에서 하나님의 한량없으신 사랑을 발견하게됩니다.”
사무엘하 15장은 압살롬의 숨길 수 없는 반역의 마음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압살롬이 품은 마음은 자기 아버지 다윗왕을 제거하고 왕좌에 오르면 아버지 보다 더 위대한 왕이 될 수 있다는 꿈입니다. 대부분의 반역은 몽상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온 세계를 이데올로기의 투쟁의 장으로 몰아갔던 레닌,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 카스트로 등 이들은 이 땅에 낙원을 만들겠다는 몽상가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 멋진 몽상으로 반역을 시작 했지만 그들이 반역한 마지막은 잔인하고 끔찍한 결과뿐이었습니다.
압살롬이 이스라엘을 내전 가운데로 몰아가면서 건설하려 했던 나라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자기 백성들을 죽이는 나라일 뿐입니다. 아버지 다윗을 살해하려 한 아들 압살롬. 하지만 아버지 다윗은 반역자인 아들을 끝까지 살리기 위해서 자기의 신하 군대장관 요압에게 아들의 생명을 구걸하고 있습니다“. 나를 위하여 젊은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우하라” 압살롬은 그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어지는 순간부터 아버지 다윗에게 반역의 아들입니다. 하지만 아버지 다윗에게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단 한 번도 포기하지 않은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이었습니다.
(13:39; 14:33) 이것이 바로 “십자가를 참으시며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 사랑의 모습입니다.” 그 누구도 구원 받을 수 없는 반역의 우리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단 한 번도 멈추신 적이 없으십니다. 이제 반역자 압살롬의 반란군들을 진압할 다윗 왕의 군대는 준비되었습니다. 압살롬의 반란군들은 진압 될 것입니다. 압살롬의 죽음은 언제 닥칠지 모릅니다. 아버지 다윗은 압살롬을 죽음 가운데 버려 둘 수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압살롬처럼 하나님을 반역하며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웃들입니다. 우리는 매일 그들 곁을 스쳐가며 얼마나 의미 없고 건조한 인사말을 건네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저들이 지금 영원한 죽음 앞에 있음을 말해 주어야 합니다.
압살롬이 에브라임 상수리나무 수풀에서 반역의 전투를 맹렬히 치르고 있듯이 오늘도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압살롬들이 세상의 에브라임 상수리 수풀에서 자신들의 자랑인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하나님께 반역의 전투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간청하시는 말씀은 “저 반역자들을 살리라는 말씀입니다.” “교회가 세상에서 범하는 가장 큰 죄는 하나님께 반역하는 이들에 대해서 무관심하는 것입니다.”
다윗왕은 백전노장이며 왕 중의 왕입니다. 압살롬은 다윗 왕과 싸워서 패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에게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다윗 왕은 압살롬을 살려달라고 외칩니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을 거역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그문트 프로이드한 말 가운데 “그 누구도 소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은 옳습니다.
그는 인간은 누구나 거세 콤플렉스( Castration complex)가 있어서 끈임 없이 하나님을 반역합니다. 인간은 오늘도 “에브라임 상수리 수풀”에서 반역의 전투를 치르고 있습니다. 압살롬은 그가 그렇게 아끼고 자랑하던 머리카락 때문에 상수리나무 가지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 사실을 안 요압 장군은 단창 셋을 압살롬의 심장에 박아버리고 말았습니다. 반역의 아들 압살롬의 죽음 앞에서 그 누구도 울지 않았습니다.
오직 한 사람, 아버지 다윗만이“내 아들,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라고 피눈물 흘리며 울부짖을 뿐이었습니다.
지금 수많은 압살롬들이 하나님을 반역하는 에브라임 상수리 수풀의 전투장에서 저마다 자랑하는 머리카락을 출렁이며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도 우는 이 한 사람 없습니다.
한국교회는 성도의 교제라는 명분으로, 위로라는 명분으로 압살롬의 죽음을 방관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신학교도 울지 않습니다. 오직, 다윗 왕처럼 한분 우리 하나님만이 “요압 압살롬을 살려 주게”라고 간청하시며 울고 계십니다.
이정일 목사 / 청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