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백성들은 사도적 신앙을 살라”고 마지막 숨을 거두기전에 마틴 루터(Martin Luther) 종교개혁자가 남긴 말이다. 윗테베르그 대학교에 의해 장례식이 거행되었을 때, 장례사에서 그는“성서럽게 살아나 복음의 빛을 회복한 사람”으로 묘사되었다. 2017년이면 종교 개혁 500주년이 되는데 2년이 남았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동시에 우리도 그러한 천국의 사신들을 사랑해야 하고 교계의 어둡고 부정적인 측면을 엿보면서 그런 사도적 삶이 요구되는 종말적 시대에 살고 있음을 예감하고 재삼 경각해야 할 때이다. 동시대에 영국 침례교 창시자이면서 침례교 지도자로서 첫 번 침례자인 존 스미스(John Smith)는 그가 알았던 하나님께 경배하는 자유를 즐기기 위해 자기의 조국을 떠날 수 없었다.
1611년 악화된 건강 속에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통해 개혁한 교회에 의해서 파문되지 않고 1612년에 소천했다. 그와 동역자인 토마스 헬웨이스(Thomas Helways) 역시 그의 처자를 뒤로 하고 암스테르담으로 피했다. 확실한 위험이 직면했음에도 불구하고 토마스와 그의 추종자 12인 침례교인은 영국으로 다시 돌아와 그곳에서 뉴게이트(Newgate) 감옥에 투옥되어 죽기까지 고통을 감수하면서 종교적 박해를 대항하여 복음을 전한 침례교도의 선구자들로 교회사에 남는다.
크리스마스의 참뜻은 여러 가지 장식품이나 성탄카드와 선물, 극빈자 구제와 화려한 축하행사와 예배 위에 루터의 유언처럼 사도적 신앙이 무엇인가를 깊이 각성하는 계절이다. 사도들은 모두 스승 예수와 같이 순교의 장도에 올랐다. 순교의 삶은 어디에 초점을 두는가? 바로 골고다 십자가를 품는 삶을 말하는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하고 살다가 마지막 순교의 소천을 말한다.
산 순교 곧 삶이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순교적 삶이 되도록 결단하는 것이 곧 크리스마스의 본뜻이리라.
제가 예수를 처음 만난 것은 만화책속에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 곧 나사렛 시골의 총각 목수였다. 그는 확실히 우리와 같은 인간 예수였다. 인간 예수, 확실히 우리와 똑같은 사람인 예수를 만났다. 그가 하나님 이였다면 가까이 쉽게 그리고 자연스레 만나기가 저에겐 얼마나 거북스러웠을까?
어머니 따라 절간에 가서 28번의 절을 하고 불자가 되었다고 등록했을 때와는 정반대의 느낌이었다. 거룩하게 황금빛 나는 옷을 입고 앉은 부처상과는 어쩐지 만나기엔 먼 거리감이 있었으나 십자가에 달린 초라한 예수의 그림은 하나의 인간으로서 가까운 이웃사람으로 다가가 애처롭게도 만날 수 있었다. 어릴 때 내가 만난 인간 예수는 지금까지 그의 말씀대로 친구로(요15:13) 만나고 있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고 증거하였고,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그리스도를 전하니 …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1:22, 24)고 증거했다.
그리고“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2:2)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갈6:14)라고 증거했다. 사도 바울의 삶은 정확히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증거하고 순교한 제자의 삶이었다.
탄생과 부활이 하나님의 전적인 구속섭리의 예정으로 이루어졌다면, 십자가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여 자기의 멍에를 지신 인간 예수께서 자원하신 것이다. 십자가는 인류 역사의 분수령을 이루는 장엄한 광경이요 기적이며, 인류 역사는 이 갈보리 십자가의 빛 아래 조명되어야 한다. 에릭 사우어(Eric Sauer)박사는 “구약은 약속과 대망이요, 신약은 성취요 완성이다. 구약은 하나님의 전투에 대비해서 군대를 배치시키는 것이며, 신약은 십자가 위에서 고난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이다”라고 말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복받고 행복하게 잘사는 것만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고통을 감수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십자가 없이는 성탄절이 절기행사로 그칠 것이며 온전한 기독교인도 될 수 없다. 십자가를 전제하고 십자가 후의 부활을 믿는 것이 신앙이기 때문에 고통을 이길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조국에 가면 감옥에 투옥되고 종신형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주님께서 함께하심으로 조금도 두렵지 않다. 내가 감옥에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 사탄이 얼마나 좋아하겠는가? 비웃고 조롱하며 기뻐하겠지만 그러나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으며, 나도 감옥에서 바울 사도처럼 찬송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다.
고통 속에서 십자가를 바라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히말라야의 인도인 전도자 프레담은 간증했다. 말구유 탄생에서 시골 나사렛 동리에서 30년간 목수 일에 찌든 인생살이 이후 3년간 복음을 전하는 동안 인간으로서 겪은 번뇌와 고통, 제자들과 함께 나눈 깊은 교제가 모함하여 죽이려는 원수들에 의해 마지막 십자가를 앞에 두고 무너질 때 너희가 다 나를 버리라고 말씀하셨고 십자가상에서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를 울부짖는 인간 예수의 절규는 즐거운 구주 성탄절 이면에 있는 천뇌의 음성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 손바닥 앞면이 믿음으로 구원받지만은 손등은 회개를 울부짖듯이 구주성탄의 즐거움은 언제나 손등같이 십자가의 깊은 조명 아래가납되어야 마땅하리라!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53:4~5)
한명국 목사 / BWA전 부총재, 예사랑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