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네눈을 들어 사면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사60:1,4)
묵은 해는 지나갔고 미래의 기약은 없으나 새해의 대망을 품고 온고지신의 문턱에 섰다. 한 살의 나이를 더 먹은 것은 인생의 경륜이 한 단계 고양된 것이다. 희노애락의 한 해인 2012년을 돌이켜 보고 숙고하여 새해의 웅비를 품는 것이다. 낙관주의와 적극적이며 진취적 사고방식에다 목표를 향한 열정에 밝은 미소를 주라.
작은 피라미 물고기도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고 작은 어선도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거늘 또 한 해를 살아가면서 역류와 강풍의 노도를 맞더라도 온갖 비난과 청천벽력 같은 실망과 좌절에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고, 천지를 창조하신 그 말씀이 아니라고 하면 ‘아니요’하고 말씀이 옳다고 하면 ‘예’하라. 말씀을 보고 영감 받은대로 기도하고 응답받으면 주저말고 즉시 실천궁행하라!
모세는 80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이스라엘을 인도했고, 여호수아는 모세를 이어 70세에 가나안 땅을 정복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고향땅 보금자리를 떠나 가나안으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따라 믿음으로 순종하여 간 결과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스펜서, 뉴튼, 볼테르, 제퍼슨 등도 80세가 넘어서 최상의 지능을 발휘했고, 조지 뮬러는 본격적인 고아사업을 70세 중반에 시작하였다.
사도바울은 죽을 때까지 천막쟁이로 손수 일하여 자비량하므로 온 세상에 생명의 복음을 전했다(행 18:3, 20:24, 고전 4:12, 9:15, 고후 11:7~9, 12:13, 살전 2:9, 살후 3:8). 촌음시경이라 했고, “시간이여 시간이여 다시 오지 못한다”라고 했다. 60초의 1분을 아껴쓰고 하루의 1,440분을 허송하지 않으면 1년 365일을 열정과 도전의 기회로, 인내의 승리로, 만족스런 행복으로, 축복의 영광으로 이어져 일생을 면류관 씌울 것이다. 시작이 반이다(Well begin is half bone), 끝이 좋아야 다 좋다(Ende gut, alles gut) 행복한 끝이 되게하라(Happy End)
창공을 향해 웅비하라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40:31)
어렸을 때 읽은 독수리 이야기를 기억한다.
인디언 소년이 어느 날 산속 나무 위로 올라 독수리 둥지에서 알을 꺼냈다. 집으로 들어와서 독수리 알을 닭장 속 달걀 속에 넣어두었다. 그런데 얼마 후 부화를 시작한 병아리들 사이에 새끼 독수리가 보였다.
새끼 독수리는 병아리들 틈 속에 같이 어울려 땅에 떨어진 곡식을 주워 먹거나 땅속 벌레들도 잡아먹으면서 잘 자라났다. 큰 날개를 펴보이며 위엄한 독수리로 잘자랐지만 가끔 우람한 날개를 퍼덕이며 창공을 쳐다볼 뿐 날기는 커녕 닭울음 소리를 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하늘 높이 날아올라 장엄한 날개를 펼쳐 보이며 창공을 높이 날아가는 독수리들을 바라보았다. “와 정말 멋지다. 나도 저렇게 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자 옆에 있던 늙은 장닭이 나래를 펄럭거리며 말했다. “주제를 알아야지 저건 새 중의 왕인 독수리란다. 넌 그저 우리처럼 닭일 뿐이야!”
그날부터 닭과 자신의 모습을 비교해 보고 닭 울음소리와 자신의 우렁찬 소리가 다름을 보았고 전혀 다른 면이 많이 있음을 발견했다. 하루는 하늘을 나는 독수리들을 보니 꺽꺽 소리치는 소리가 자기의 목소리와 같아 ‘너도 이렇게 날 수 있는 독수리지 닭이 아니야. 용기를 내어 창공을 향해 나는 도전을 해라’는 영감으로 뛰는 가슴을 안고 두 날개를 힘차게 펴서 창공을 향해 날아갔다. 그 시간부터 땅에 것을 먹고 걸어다니는 닭이 아니라 공중을 누비고 대지위를 날개치는 새들의 제왕 독수리가 된 것이다.
보금자리를 떠나 날아라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신32:11,12)
독수리는 새끼를 잘 키워서 독립해서 살아갈 때가 되면 둥지를 떠나기 싫어하는 새끼 보금자리 먼저 어지럽게 한다. 둥지를 만들 때는 나뭇가지나 가시나무나 온갖 것으로 엮는데 그 둥지 윗쪽에 놓은 풀잎이나 포근한 깃털같은 것을 발톱과 부리로 흩어 어지럽게하는 것이다. 그러면 새끼는 가시에 찔리고 불편하게 고통을 준다고 불평하며 소리를 지르고 그 때 어미 독수리는 새끼 위에 날개를 너풀거리며 날개를 펴서 올라 앉으라는 신호를 보낸다.
처음에는 두려워서 주저하지만 가시에 찔리는 고통보다는 어미의 날개를 선택하려 오르면 창공을 향해 높이 올라 넓은 대지의 세상을 보게하고는 날개를 흔들어 아래로 떨어뜨리고 죽는다고 소리를 지르는 새끼를 아비 독수리가 밑에서 받아 날개 위에 업고 또 다시 창공에 올라 떨어뜨리기를 반복하는 중에 새끼도 날개를 펴서 날기를 시도하다보면 다시는 가시둥지 생각은 잊고 창공의 왕자로 자유자재로 날아 자립하게 되는 것이다,
모세는 40년간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드디어 요단강 넘어 펼쳐진 가나안 땅을 바라보면서 최후의 고별 설교를 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처음엔 보금자리 같았던 애굽이 가시둥지의 고통으로 변하자 독수리 새끼를 업는 것 같이 인도하여 내셨음을 상기시켰다. 오늘 우리에게도 묵은 해의 쓰라린 고통과 사념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창공을 향해 힘차게 두 날개를 펄럭이며 높이높이 마음껏 웅비하는 새해가 되기를 축원한다.
한명국 목사 / 증경총회장, BWA전 부총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