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놀라운 고백적 선포 앞에서 한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신학훈련을 마치고 교회 현장으로 돌아가 열심히 성도들을 섬기며 목회사역을 했다. 설교와 교육, 목회행정 등 부족함이 많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는 잘 성장하였다. 적어도 주일에 만나는 성도들이나 교회 상황만 보면 그랬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나 자신을 포함하여 성도들의 교회 밖 삶의 주중 생활 현장을 조금만 들춰보면 각양 갈등과 상처, 아픔으로 힘들어하는 성도들의 모습이 보였다.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그때 이후로 ‘세상을 치유하는 하나님의 유일한 전략이 교회’라는 독일의 목회신학자 본회퍼의 선포가 나의 가슴 깊이 뿌리내리게 되었다. 이 선포는 나를 ‘친구’로 대하며 기독교·목회상담의 멘토요 코치가 되어준 브리스터(C. W. Brister) 박사와의 만남과 대화들을 통해 분명하게 확인되었다. 교회야말로 내부 성도들은 물론 지역사회 주민들의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도록 영적으로,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전인적인 돌봄을 제공해야 할 소명과 책임이 있는 곳이었다.
이러한 치유적 돌봄과 상담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바로 교회였다. 이것은 한두 사역자나 훈련된 상담전문가만이 아닌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로 주어진 사명이요 부르심이었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돌봄과 상담 그리고 교회의 현장은 나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흥분시켰던 모습과 많은 차이가 있었다.
어느 날 아침, 미국의 남부 도시 달라스(Dallas)에 위치한 파크랜드(Parkland) 종합병원의 에이즈 환자 병실문을 열고 들어갔다. 내 가슴에는 병원 원목(chaplain) 명찰이 달려있었다. 한바탕 의료진과 간호사들이 분주하게 오가며 오전 회진을 마친 터라 병실은 조용했다. 환자의 차트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창가에 힘없이 누워있는 젊은 환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를 소개했다. “오늘 좀 어떠세요? 저는 병원 원목 다니엘 유입니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기력이 다 소진된 것처럼 늘어져있던 환자가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벌떡 일어나 옆에 있던 두루마리 휴지를 내게 집어던지며 소리쳤다: “이 방에서 당장 나가!” 대부분의 환자는 원목을 반갑게 맞이하며 자신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그의 돌발적 행동에 깜짝 놀란 나는 순간적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쫓겨나듯 병실을 나왔다.
쿵쾅쿵쾅 심장 박동이 한참을 요동치며 진정될 줄 몰랐다. 얼마 후 평정심을 회복하고 임상훈련을 받은 대로 이런저런 성찰을 하였다: “그 환자로 하여금 그렇게 반응하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최근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을까?” “그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셨을까?” “이 상황이 내게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에게서 무언가 들어야 할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에겐 분명 무언가 내게 말할 스토리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다음 날 오후에 그가 혼자 있는 시간을 택하여 병실을 찾아갔다.
어제 그처럼 공격적인 반응을 보였던, 그리고 젊은 나이에 에이즈에 걸려 피골이 상접한 채 죽음 앞에 서 있는 사람을 찾아간다는 것이 부담되긴 했지만 기도와 심호흡을 한 후 그의 병실 문을 두드렸다. 또 무언가를 내게 던지며 나가라고 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그는 의외로 덤덤한 표정과 목소리로 ‘왜 또 왔냐’고 물었다. 내가 일반 미국인들과 다르게 생긴 원목이었기 때문에 전날 잠시 조우한 것으로도 나를 기억하고 있었던 듯 했다.
나는 안도감을 느끼며 몸 상태는 어떤지, 기분은 어떤지 등을 점검하며 어제 있었던 상황에 대해 그리고 어떤 사연으로 현재에까지 이르렀는지 등에 대해 공감적 경청을 실시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는 어린 시절 교회를 열심히 다닌 사람이었다. 하지만 청소년기에 가정이 어려워지면서 점차 반항적인 청소년이 되었다. 술과 마약에 손을 대며 학교에서도 문제아로 찍혀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쫓겨났다. 그리고 결국에는 가출 청소년이 되어 이곳저곳을 떠돌며 험한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무분별한 성경험을 하면서 당시 미국 젊은이들에게 많이 발생하였던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 즉 에이즈(AIDS)에 감염되어 20대 초반에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 어느 날 밤, 그는 차가운 겨울바람이 매섭게 부는 달라스 도심을 배회하다가 기력을 잃고 도시의 후미진 골목길에서 쓰러졌다. 살을 에는 추위와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필사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았지만 그의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그러다가 마침 어린 시절에 다녔던 교회 생각이 나서 전화를 걸어 절박한 심정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교회는 ‘지금 갈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경찰의 도움을 받으라’ 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에게 정말 교회가 필요할 때 어느 교회도 문을 열고 그를 받아주거나 찾아와주지 않은 것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달라스 내 동성애자들의 모임에서 한 밤중에 그에게 달려와 따뜻한 음식과 잠잘 곳을 마련해주어 그 혹독한 추위에서 살아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에이즈 치료를 위해 그를 병원까지 데려와 입원시켜준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교회에 다니는 원목이라고 소개하자 반사적으로 당장 ‘나가라’며 ‘너희 그리스도인들은 위선자’라고 교회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 것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의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그 교회가 바로 ‘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는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 오지 않은 교회에 대해 분노한 것이었지 하나님에 대해 분노하며 자기 삶에서 ‘나가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결국 그는 공감과 치유적인 대화를 통해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보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 후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회복의 과정을 경험하고 세상을 떠날 수 있었다. <계속>
/ 유재성 목사 침신대 상담심리학과 늘사랑교회 협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