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또 가볍지 않은 질문을 해 왔습니다.
“여보, 당신은 한국에서 성탄절에 어떻게 보냈어?” “뭐, 보통 교회 각 부서에서 성탄전야에 축하행사하고, 새벽송을 돌면서 성도들 가정을 축복하지…”
아내가 대답합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저는 긴장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 또 뭘 요구하려고 하나 싶어서 말입니다. 역시, 올 것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여보, 우리도 새벽송 돌자.”
방학이라 집에 온 진경이까지 합세한 9명 전 가족이 집집마다 방문해 선물을 전해주며 예수님 성탄축하 노래를 함께 불러주며 축복하자는 것입니다. 마침, 날씨도 매우 추워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데도 발이 꽁꽁 얼어오는 것만 같은데도, 아내는 의미있는 성탄절을 보내자고 제안했습니다. 남자는 성령의 음성과 아내의 말을 잘 들으면 된다는 진담 섞인 농담도 있듯이, 이번에도 저는 아내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선교사님들 10가정, 그리고 현지인 20가정을 정하여 세탁기전용 하이타이, 휴지, 부엌용 타올을 각각 30개씩 가득 차에 실고, 12월 24일과 정교회 월력 성탄절 전야인 1월 6일, 양 이틀에 걸쳐 하루 종일 심방을 다녔습니다. 두 돌이 채 안된 막내 고은이까지 끌고 그날따라 기온이 가장 뚝 떨어지고 눈이 많은 길거리를 다니기란 쉽지는 않았는데, 온 가족이 함께 기뻐하며 즐거운 축하방문을 마쳤습니다.
성탄절 축하방문 중에 갑자기 떠오른 형제 한사람이 있었습니다. 8년전 집공사를 할 때 벽지를 발라주던 사샤 형제가 어떻게 지내는지 만나보고 싶어졌습니다. 이미 오래되어서 연락처도 없기에 안드레이에게 그의 연락처를 알아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갑작스런 전화에도 아직 내 이름을 기억하고는 반가워하는 사샤의 목소리였습니다. 내가 “30분안에 너희 집을 방문하려고 하는데 괜찮겠느냐?”고 물으니 오라고 합니다. 시골의 낡은 오래된 아파트에 사는 그의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함께 있었고, 그의 아내와 4살짜리 딸은 친정에 가서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예전에 알았던 사샤의 얼굴이 아닌 많이도 초췌해진 모습이었습니다. 어떻게 지냈느냐고 물으니 살아온 날들을 이야기해 줍니다. 그동안, 자기는 술로 인생을 살아왔고, 심지어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알코올 치료소까지 여러 차례 다녀왔지만, 지금도 이틀만 안 먹어도 손발이 떨리고 두통과 가슴, 근육들이 아파온다고 합니다. 8년전 저를 만나서 일하던 중에 복음을 듣고 예수님 영접했을 때가 자기 인생에 가장 좋은 상태였었고, 그때 지금의 아내를 만나 연애해 결혼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후로 계속 인생의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려 죽고 싶은 심정밖에는 없었다고 고백합니다. 방문한 그 날도, 집에 먹을게 하나도 없이 오직 손바닥 절반만한 빵조각 한 개 밖에 없어 너무나 낙심한 나머지 차라리 죽는게 낫겠다 생각하고 있었던 차였다고 합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제 마음에 죄책감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복음을 나누고 예수님을 영접한 이 형제를 가까운 현지교회에 연결만 해 주고는 관심을 두지 못하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이렇게 것에는 제 책임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서 오늘 나를 당신에게 보내셨으니, 내일부터 매일같이 나를 만나자고 제안했습니다. 같이 밥 먹고, 같이 이야기하고, 같이 성경보고, 그저 같이 다니자…. 나의 제안에 그도 흔쾌히 그러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후로 매일같이 나를 만나러 40여 km나 되는 먼 거리를 달려옵니다.
34세의 사샤는 자기 기억에 6살 때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고, 13살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자기 주변의 모든 친구들은 다 알코올 중독자들과 삶의 의미없이 비틀거리며 사는 이웃들 밖에 없다고 합니다.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다라고 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그런데 그 말이 제일 믿기 힘들다고 고백합니다.
“나의 아버지는 누군지 아직도 모릅니다. 어머니가 만났던 20명이 넘는 남자들 중에 한사람 일 것입니다. 그중 가장 가능성 있는 두 분 중의 한분은 이미 돌아가셨고, 또 한 분은 어디 있는지도 모릅니다. 나의 아버지는 나를 버렸고, 나는 아버지를 단 한 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내게는 아버지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라고 하는 말이 제일 믿기 힘듭니다.”
술에 취해 살다보니, 일도 못하고 돈도 못벌어오는 무능력한 남편이 되니, 아내와도 별거생활하게 됐다고 합니다. 이제 둘째가 또 서너달 후에 세상에 태어나게 되는데, 두 아이의 아빠가 된다는 것이 벌써부터 두렵다고 말합니다.
성탄절 전야, 갑작스런 감동에 의한 심방은 주님이 그 한 영혼을 살리시기 위해 저를 그에게 보내신게 너무도 분명하였습니다. 한 영혼의 가치. 많은 군중이 아니라, 한 사람. 주님이 내게 맡겨주신 그 한사람에게 집중하게 하심이 은혜로 고백되어 집니다. 그 후, 지금까지 매일 저를 만나고 함께 말씀 읽고, 공부하고, 예배드리며 기도합니다. 아직까지 그 첫 만남 후로,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술 먹자고 권하는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한다고 합니다. 그들이 욕을 해 오지만, 그래도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행복해 하는 모습입니다. 그의 아내 악산나도 처음엔 그의 달라진 내면의 모습을 믿지 않았지만, 이제는 점점 그를 믿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함께 예배가자고 초청했다고 합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주님이 그를 많이 사랑하고 계심을 느낍니다. 저도 그의 변화되어 가는 모습에 영적 보람과 기쁨이 큽니다. 오늘 형제와 함께 나눈 말씀 중에 한 구절이 또다시 심비에 박힙니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요 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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