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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드 엔딩을 부르는 노래(사무엘하19:1~15)

찬양 속 바이블 스토리-2

보통 드라마나 영화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시청자들이나 관객들은 마음에 큰 위로를 받는다.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기고 극복한 주인공들이 마침내 큰 행복으로 보상받는 것을 마치 시청자들이나 관객들 자신들에게 주어지는 행복으로 투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생은 그것으로 끝이 나지 않는다. 잠자는 백설공주를 깨워 결혼한 왕자가 왕이 되어 수많은 후궁을 거느리게 됐다면, 백설공주에 관한한 해피엔딩이 아닐 수 있다.


알렉산더대왕이 유럽과 아시아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하는 것으로 영화가 끝날 때에는 해피엔딩으로 보일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30대의 젊은 나이로 병사하는 알렉산더의 죽음과 그의 죽음 이후 제국이 세 조각으로 찢어지는 역사적 비극까지 영화가 계속된다면 해피엔딩이 될 수 없다. 당나라 측천무후가 자신의 아들과 딸을 포함한 약 90명에 달하는 왕족들을 죽이고,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해피엔딩을 이뤘지만, 무려 3,000명에 달하는 남창들과 놀아나다가 측근들의 돌아섬으로 인하여 15년 만에 본의 아니게 황제의 자리를 내려놓아야 했던 역사는 본인에게 있어서는 해피엔딩이 아닐 것이다.


핵무기를 개발하고, 그것을 경량화하고, 사거리를 확대하고, 추적이 어려운 이동발사대를 제작하고, 백두혈통 장손을 암살하여 독재권력을 공고히 하는 것까지만 보면 독재자에게 주어진 해피엔딩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국제적 경제제재 및 외교적 고립으로 야기될 자국 경제의 피폐와 인민들의 조직적인 반발까지 보게 된다면 해피엔딩이 아닐 것이 분명하다.

역사는 끝없이 흐른다. 누구든지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죽은 자의 뒤를 이어서, 그리고 또 그 죽은 자의 뒤를 이어서 역사는 계속 흐른다. 성경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이나, 역사에는 주님의 재림이 이르기 전까지는 온전한 해피엔딩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친아들 압살롬의 반란을 하나님의 은혜로 겨우 진압한 다윗 왕의 귀환도 마찬가지이다. “왕의 귀환으로 역사가 끝났다면 왕의 귀환은 해피엔딩이다. 하지만 귀환 이후의 역사는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이 계속되는 역사를 계속해서 해피엔딩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해피엔딩을 맞이한 주체들이 다음 해피엔딩을 위해서 마음을 가다듬는 냉철한 이성으로 대비해야 한다. 해피엔딩에 취해서 마음의 긴장의 끈을 느슨하게 하거나, 막연한 낙관론에 사로잡히게 되면, 더 이상의 해피엔딩은 주어지지 않는다. 그 지혜롭던 다윗 왕도 자신에게 주어진 해피엔딩의 은혜를 이어가지 못했다. 다음 단계로 이어질 해피엔딩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압살롬의 반란이 진압된 후 구사일생 다시 왕으로 귀환하게 된 다윗은 몇 개의 실책을 범했다.

첫째 실책은, 반란군의 수괴 압살롬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었다. 반란 진압 과정에서 자신의 아들 압살롬이 죽었다고 해서 식음을 전폐하고 실의 빠져 있었던 모습은 전혀 왕답지 못했다. 왕의 귀환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대신 싸워주었던 신하들과 백성들이 눈물과 감상에 젖어있는 왕을 보고 속으로 무슨 생각들을 했겠는가. 왕은 가까운 가족보다 백성들이라고 하는 촌수가 먼 가족들을 먼저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둘째 실책은, 반란군의 장수 아마사를 충신 요압과 같은 선에서 예우했다는 점이다. 외견상 탕평책의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으나, 실상은 충신 요압에 대한 견제였다. 역적을 들어 충신을 이이제이하겠다는 발상은 결코 현명하지 못했다. 반란군의 최전선에서 싸운 역적 아마사를, 목숨을 걸고 사력을 다한 충신 요압과 같은 수준에 올려놓음으로써, 오히려 공신들의 마음속에 불만을 쌓는 결과를 가져 온 것이다.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신하의 마음을 합당하게 위로해 주지 못하는 왕은 그 다음 단계에서의 해피엔딩을 기대하기 어렵다.


셋째 실책은, 유다지파에게 지나친 애정을 보임으로써 향후 피비린내 나는 민족분쟁을 야기했다는 점이다.

다윗은 유다지파를 콕 찍어서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귀환을 주선하게 했다. 사실상 유다지파에 대한 우대정책이었다. 우리나라 국내정치에서 잘 써먹는 편가르기식의 저질 정치전략의 한 모습이다.

전체를 품지 못하고, 자신의 지지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맹목적으로 특정집단의 정치적 성향과 견해만을 고집하며 그들의 어릿광대가 되는 것이다.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와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교단에서 파견하는 이사들을 무조건 거부함으로써 산하기관들을 큰 위기 빠뜨린, 편가르기의 인사들이 속히 회개하기를 촉구하며, 더 나아가 우리 교단의 계속되는 해피엔딩을 기대한다.


노주하 목사 / 찬양산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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