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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음악으로 풀어보는 성경이야기(263)

창가를 서성거리는 여자

 

요즘 인터넷을 통한 소통이 활발하다. 세상살이가 복잡다단하고 바빠서 실제로 대면할 수 있는 시간이 늘 부족하기 때문이다. 군중 속에서 고독을 느끼는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상에서 단체 채팅 등의 방식으로 동창회도 하고 각종 계모임도 하며 활력을 얻는다. 동창들이나 친구들의 성공적인 소식을 접하면서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한다. 이러한 면에서 온라인상의 채팅방은 긍정적인 소통방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소통방식이 때때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때도 있다.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체면이나 자존심으로 인해 본심을 숨기는 사람들에게 다른 동창들이나 친구들의 화려한 성공소식이 오히려 의욕저하라는 부작용으로 작용할 때가 많다.

 

물론 실제보다 부풀려서 자신의 성공담을 늘어놓는 사람들도 많지만, 필요이상으로 남에게 자신을 비교하며 비관하는 사람들이다. 친구들의 성공이 나를 위축시키고, 친구들의 행복이 나를 불행하게 한다. 이러한 부러움은 필경 시기심이나 미움으로 변질된다.

 

열정적으로 기도하거나 찬양하는 자들을 바라보며 불편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저렇게 요란을 떨어야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가? 저렇게 시끄럽게 떠들어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가? 이러한 마음은 불신자들뿐만 아니라 나름대로 교회생활을 오래했다는 사람들 중에서도 발견된다.

 

교회에 오래 출석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식의 가치관이나 성경관이나 신학관을 가진다. 물론 자기식의 사고의 틀이 늘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드러내 놓고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 한, 이러한 틀이 자신에게 주어진 믿음을 지켜 나가게 하는 중요한 하나의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면에 숨겨져 있는 자기 식의 이데올로기를 외부로 표출시켜서 타인을 강요하게 될 때는 문제가 복잡해진다. 예컨대 주여, 주여하며 부르짖는 통성기도는 광신자처럼 보일 위험이 있으니 하지 말자고 한다. 예배는 경건해야 하므로 오르간에만 맞추어서 조용하게 찬양하자고 한다. 몸을 움직이는 것은 경망스러운 것이므로 기도나 찬양할 때 손을 들거나 춤추지 말자고 한다. 상황에 따라 다른 것이겠지만 실제로 이러한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많다.

 

뜨겁게 기도하는 기도자나, 열정적으로 찬양하는 찬양자의 모습을 보고 불쾌해지거나 마음이 불편해지는 사람들은 왜 그러한 반응을 보일까? 첫 번째로, 문화의 다양성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화다원주의는 종교다원주의와는 차원이 다르다. 민족이나 시대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는 문화의 다양성을 서로 이해하는 것이다.

 

어떤 선교사가 원시부족과 예배드리기 위해서 옷을 벗고 강단에 섰는데, 원시부족은 선교사를 생각해서 모두 옷을 입고 있었다는 웃지 못 할 일화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서양 사람들이 양복을 입고, 한국 사람들이 한복을 입고, 원시림에서 사는 부족들이 아무 것도 입지 않고 예배하는 것은 당연하다. 서로 자신의 잣대를 우월하게 여기며 예배패션이 다르다고 비난할 수 없다. 찬양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두 번째로, 주님과의 깊은 교제를 시기하기 때문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가장 가까운 친구가 로또에 당첨됐다는 소식에 밥맛이 없어질 수 있다. 친구목사가 웅장한 교회당을 건축하면 마음이 불편해질 수 있다. 탕자의 형처럼 가장 뜨겁게 축하해야 할 위치 있는 사람이 오히려 가장 큰 시기심으로 불행해지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영적 체험에 대한 반응도 이와 유사하게 일어날 수 있다.

 

세 번째로, 기도와 찬양의 깊은 체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다윗이 자신의 알몸이 드러나는 것도 모른 채 열정적으로 찬양할 때 아내 미갈은 창가에서 서성거리며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항상 품위 있게 행동했던 부친 사울과 비교하며 다윗을 업신여겼다(삼하6:16).

 

기도와 찬양의 깊은 경지를 체험하지 못한 미갈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누가 사도바울의 삼층천의 체험에 대해 비난할 수 있는가? 궁금하면 진다. 부러워도 진다. 부러우면 그러한 체험을 달라고 주님께 뜨거운 열정으로 나아가자. 만약 그러한 체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면 남을 비난하지는 말자.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지도 말고, 창가에서 서성거리지도 말고, 문을 열고 내려가서 다윗과 함께 뜨겁게 찬양하자.

 

노주하 목사

대연교회 담임목사 / 침례신학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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