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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일을 태만히 하면

한명국 목사의 회상록

스타린과 밀로반
조셉 스타린(Joseph Stalin)의 아버지는 술주정뱅이로 야만적 구타로 아들을 괴롭혔으나, 어머니는 헌신적 세탁부로 일하면서 가사를 이끌었고 아들이 훌륭한 성직자가 되기를 희원해 조지아의 고리(Gori)에 있는 희랍정교회 소속의 티프리스(Tiflis) 신학교에 보냈다. 그러나 청년 스타린은 당시의 칼 마르크스의 서적을 읽으면서 조지아 지하 혁명당 조직에 가담하고 소련 사회주의당의 볼세비키 당원이 된 후 당의 총장이 됐다가 레닌(Lenin)의 사후 전권을 장악한 독재자가 됐고, 영국과 미국의 합세로 히틀러(Hitler)의 러시아 침공을 막고 제2차 세계대전 후엔 냉전(Cold War)의 주역이 됐으니, 어머니의 소원인 성직자가 아닌 그의 정권장악과 독제통치하에 수천만의 살인마로 변할 줄이야!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19:10)


밀로반 딜라스(Milovan Dilas)는 공산주의의 탄압에 대해 거리낌 없는 저항자가 되기 전에는 한 때 옛 유고슬라비아의 고위 공산주의자였다. 밀로반은 20대 초반에 공산주의자가 되어 반정부 활동으로 투옥됐는데, 감옥 하수구를 통해 공산당 서적을 감옥 안으로 밀반입하는 아주 혐오스러운 일을 맡아했다. 그는 ‘공산당을 위해서는 어떤 일도 더럽거나 천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으므로 그런 일을 기꺼이 감당했다’고 술회했다. 그 후 그는 고위공산당원이 됐으나 복음을 받은 후에는 복음 때문에 탄압을 받게 되었으며 기쁘게 감수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을 모르는 공산주의자가 그들의 사상이론에 그토록 헌신하고 충성을 바쳤다면, 그 목적이 무한정 고결하고 위대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태도로 헌신하고 그 충성을 나타내야 마땅하겠는가? 우리가 가진 복음의 진리와 위대한 생명의 말씀을 위해 비록 우리가 비천하게 보이고 멸시를 받는 일이 있다하더라도 우리를 위해 자기 생명을 십자가에 버리신 주님께 대한 거룩한 사명감을 갖고 최선을 다해 충성함이 당연하지 않는가? 바울 사도는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후5:13~14상)라고 고백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8)


장개석과 모택동
중학교 때 카네기의 인생처세론을 읽은 후 대학교 때까지 10년간 수많은 인생전기서를 읽었다.
대만에서 발간한 중국 공산당사와 장개석과 모택동이란 책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이다. 장개석이 대장정의 막바지에서 모택동과 최후의 결전 앞에 만주의 토벌군 소위 팔로군의 두목 장학량과 장학림의 꾀임에 빠져 서안에서 만나 연금 상태로 사경에서 협상하므로 중원통일의 막바지 절호의 최후기회를 놓치므로 그 후 참패하여 결국은 대만으로 쫓겨 가면서 회오의 글을 성경에서 남겼다. “여호와의 일을 태만히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 자기 칼을 금하여 피를 흘리지 아니하는 자도 저주를 당할 것이로다”(렘48:10)


1967년 5월 16일 서울에 있는 삼각산 금식 기도원에서 성경을 읽어가는 중 위의 예레미야 선지자의 글을 읽으면서 나야말로 성경에서 말하는 십자군의 장교로서 게으름뱅이요 사꾸라요 밥만 축내는 사기꾼같이 주님의 종이라기엔 삯군이었음을 발견했다.
다시 춘천 봉이산과 의암댐 밑의 삼악산에 올라 기도하고 먼저 자신을 금식기도하며 혁신하고 침례교단을 개혁한 후 한국교회를 바로 세우고 세계로 나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태만하지 않고 주님이 주신 말씀과 성령의 검으로 피 흘리기까지 헌신하여 싸우기로 서약했었다.


송미령 여사의 이야기
장개석 총통의 부인이었던 송미령 여사가 전하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구령의 차원에서, 생명을 구조하는 차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야기이다. 언덕 꼭대기에 있는 논에서 일하던 농부가 땅이 갑자기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깜짝 놀라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먼 바다를 바라보았을 때에 바닷물이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곧 빠져나갔던 바닷물이 큰 파도가 되어 몰려올 징조였다.
그 시간에 낮은 지대에서 농사를 짓던 이웃 사람들이 열심히 농사를 하고 있었다. 이 사람은 ‘내가 소리를 질러서 저들을 구출하기는 늦었고, 또 소리를 질러도 잘 들리지 않겠고….’라고 생각하고, 그는 자기의 볏단을 모아서 쌓아놓은 후에 급히 불을 붙였다.  그리고 그는 창고의 처마 밑에 달려 있는 종을 힘차게 내리쳤다.


그제야 열심히 농사일을 하던 농부들이 연기를 보고, 그 불을 끄기 위해서 모두가 그 언덕으로 올라왔다. 그들이 올라오자마자 해일로 인한 큰 파도가 몰려와서 낮은 지대를 순식간에 물바다로 만들었다. 그들은 모두 생명을 구했다. 그러나 볏단에 불을 피운 이 농부는 자신의 소유를 다 잃고 말았다. 이 이야기 속에 나오는 농부는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희생을 치렀다. 세상에서도 사람을 구하려고 하면 희생을 치러야 하는 것처럼 영적인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도 희생을 치러야 한다. 예수님도 십자가의 희생 없이는 인류의 구원도 이룰 수 없었든 것이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점토를 백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 할 자가 없느니라(막10:29~30)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1:9~10)


이제 나도 석가모니가 삼천제자의 곡읍 속에 죽어 열반에 입적한 80의 나이요,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뵙고 애굽의 노예동포를 구원할 사명을 받은 80인데, 장개석 총통처럼 대만에서 뒤를 돌아보며 회오에 잠길 것이 아니라 송미령 여사의 이야기의 뜻을 다시 깨달아 “이 몸과 재산 드려 이 복음 전하세” 찬송가처럼 석양의 인생길이지만 최선을 다해 복음의 나팔을 들고 온 세상에 나가 주님의 약속의 말씀 따라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2:10) 약속에 아멘의 결단을 우리 함께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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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다시 사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벧전 1:3) 2024년 부활절을 맞이하여 3500침례교회와 목회 동역자. 성도들 위에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과 기쁨과 회복의 은총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가 죄인으로 영원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에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심으로 영원한 생명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이 부활의 기쁨과 감격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이 땅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직접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며 이제는 구원의 완성으로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몸소 가르치시고 보여주시기 위해 그의 아들을 보내주신 사실을 믿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 분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고 가르치셨으며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 고난 받는 자를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셨습니다. 그 회복을 통해 우리는 이 땅에 믿음의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그 공동체의 핵심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의 놀라운 소식입니다. 이 소식이 복음의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