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아침 일찍 동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설교차 청주로 향하는 나의 가방 속에는 아내가 정성들여 싸준 아침식용품이 들어있다.
이른 새벽 떠나는 길이기에 집에서 조반을 들 수가 없어 아내가 늘 그렇게 아침을 챙겨준다. 고맙기 그지없다.
가방을 열고 아침식용품을 열어보니 떡조각, 과일조각 등이 있었고 플라스틱 물병엔 커피가 있었다. 떡조각을 꺼내 먹고 커피 한 모금을 넘기는 순간 이건 커피가 아니라고 확인했다.
원래 나는 집에서 모닝커피랑 손님대접 커피랑 내가 손수 커피콩을 갈아서 적당한 온수에 내려 먹는 커피 매니아요 또 약간은 전문가이다.
따라서 아내가 커피를 끊이는 일은 거의 없다 싶어 내가 끓여주는 커피의 소량을 아내가 즐기긴 한다.
그런데 오늘 아침 커피는 아내의 솜씨였다. 아내는 어제 밤에 인스턴트커피를 끊여서 식혀 두었다가 플라스틱 병에 넣어뒀는데 그것은 아침에 서둘지 말라고 잔뜩 편의를 본다는 심산으로 선심커피를 탄 것인데 그 인스턴트커피는 이미 오래 전에 어느 구석에 박혀 둔 것이었다.
나는 이미 그 사실을 어제 밤에 알고 있었다. 그건 커피가 아닌데! 밤새워 뒀다가 먹는 커피맛? 그건 커피가 아닌데, 그럼 왜 아내가 싸주는 커피를 마다하지 않고 지니고 와서 버스터미널 대합실에서 시음했느냐? 아내는 솔직히 집에 있는 커피를 그냥 두고서 굳이 커피전문점에서 몇 천 원 주고 사먹는 그 자체도 싫은 것이었다.
말하자면 속셈으로는 경제생각이었다. 나는 그런 아내의 인생철학과 생활의 양태를 깨뜨릴 필요가 없다고 여겼기에 그냥 싸가지고 온 것인데, 이런 나의 태도에 아내는 만족, 행복, 평화 그리고 신뢰를 느낀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맛보고 그런대로 삼키려했으나 영 맛이 간 커피라서 마치 외양간의 암소 소변(?)을 마시는 것 같아 재빨리 공중화장실 세면대에 쏟아 붓고 병청소를 깨끗이 하고 말았다. 커피를 쏟아버리고 나오는데 바로 그 옆에는 패스트푸드전문점에서 신선한 커피 향기라 내 코를 들락날락했다.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하자, 예쁜 손녀같은 아가씨가 “2000원입니다.”라고 값을 가르쳐주면서 커피콩을 스르륵 가는데 이미 신선한 커피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듯 했다. 아주 행복한 아침 여행이었다.
커피를 끊여 싸준 아내도 행복하고 그것을 쏟아버리고 새 커피를 사서 마시는 나도 행복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만족이란 무엇인가? 그저 그런 것이다. 평지풍파 일으킬 것 없이 그냥 지내는 것, 사소한 것에 눈을 감아 버리는 것, 그럴 수도 있고 이럴 수도 있다는 융통성, 그것이 자유가 아닐까?
아직 그날 설교 마치고 귀가하지 않았지만 귀가해서도 커피를 쏟아버렸다는 말을 하지 않으리라 혹 아내가 커피 맛이 어떠냐고 물으면 “좋았어요.”라고 할 것인데 이게 윤리적으로 잘못된 것일까?
水流(수류) 권혁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