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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줄에 참새는 몇 마리가 남았을까?

“하늘 붓 가는대로”-87

전기 줄에 참새 다섯 마리가 종알거리고 있었다. 두 포수가 새 총을 쏴서 두 마리 참새를 떨어 뜨렸다. “하는 순간에 그러 그 전기 줄에 몇 마리의 참새가 남았을까?

수학도(數學徒)가 말했다. “세 마리요.” 다섯 마리 중 두 마리가 총 맞아 떨어졌으니 세 마리가 남은 것이 확실하다. 누가 이 답을 틀렸다고 말할 것인가? 순진한 수학도의 수학적 산수적 대답이다. 수학에는 참, 거짓을 가리는 힘이 있다고 수학자는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 전기 줄에 참새 세 마리가 남아 있을까? 현실파 사람이 씩 웃으면 말했다. “한 마리도 남은 게 없어요.” 맞는 말이다. “하는 총소리에 총알 안 맞는 놈은 혼비백산하고 날아갔기 때문이다. 어느 참새가 미련하게 거기 앉아 있겠는가? 이것은 현실파 사람의 현실적·현상적 대답이다.


우리는 판단해야 한다. 수학도의 답이 맞느냐, 현실파 사람의 답이 맞느냐? 어느 한 쪽 답만 맞다고 하기엔 곤란하다. 수학적·원리적 대답으로는 참새 세 마리가 있다는 게 맞고, 현실적 대답으로는 참새가 없다는 말이 맞다. 그러나 질문자가 기대한 대답은 무엇일까? 질문자의 속셈은 주관적이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질문자가 기대하는 답이 무엇이었을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질문자의 기대한 답은 갑() 아니면 을()이었는지, 갑을 둘 다였는지 모른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원리와 현실이 있다. 원리와 현실은 꼭 들어 맞지 않는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가령 원이란 무엇인가? 질문하면 중심에서 모든 면으로 똑같은 거리에 있는 점들의 연결선이 온전한 원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가 생활하는 데에는 왠만하면 온전한 원이라 하지만 플라톤의 이데아(idea) 개념에 의하면 이 세상에는 온전한 원은 있을 수 없다. 가장 이상적인 원은 관념의 세계에서 공상(空想)하는 것이지 현실상으로 결코 같은 거리에 있는 점들은 없다는 것이니 현미경으로 보면 톱니처럼 울퉁불퉁한 점들의 연결일 것이고 그렇다면 원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원은 원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믿고 현실 생활에서 원이란 현존재로 인해 기계도 만들며 기하학적 생활을 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는 일차적 이차적 세계가 있다는 말인데 왜 삼차적 세계는 상정(想定)할 줄 모르느냐? 우리의 경험 밖에서 경험되어지는 경험 세계도 있으니 그게 영적 세계이다.

바울 사도가 올라갔다가 내려온 것이 삼층천 하늘 세계였던 것이다(고후12).


사람들에게는 그 주변 세계가 수많은 겹으로 된 것을 가르쳐 줘야만 한다. 그게 그리스도인의 전도이다. 전기 줄의 참새 수에 대해서는 원리와 현실 이야기로 끝맺을 수 있찌만 이것저것도 초월하는 또 다른 세계가 있으니 하늘세계였던 것이다. 예수님은 이 세계는 거듭나야 볼 수 있다고 일찍 말씀하셨다. 그게 바로 이런 말씀이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3:3)

그리스도인은 땅 세계 말고 하늘나라를 보는 자이다.


水流(수류) 권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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