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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을 꿇고

김형윤 목사의 새벽이슬-52


순례자가 되어 다녔던 걸음마다 주님의 사랑을 깊이 누리고 깨달으며 각성하고 감사로 더욱 풍성한 시간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옛 것을 통해 새것은 배운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경험하는 복된 시간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순례의 시간과 경험을 통해 새롭게 다짐하고 결단한 것들을 삶 속에 녹내고 담아내 진정한 개혁의 열매와 증거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에베소서 3:14~19의 말씀을 통해 선교를 다 마친 바울 사도가 로마의 감옥에 수감, 생애 마지막을 보내면서 자신이 가장 오래 머물렀던 에베소교회에 보낸 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사도는 무릎을 꿇고 드리는 기도를 즐겨 행했습니다(20:36). 스데반 집사도 복음을 전하다가 박해자들에게 돌에 맞아 순교 당할 때, 무릎을 꿇고 큰소리로 기도하고 죽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도 무릎을 꿇으시고 기도하셨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기도의 모습은 거의 다 무릎으로 드리는 기도였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어릴 적에는 예배당이 거의 다 의자가 없는 마루였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방석에 앉아서 예배드리고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게 당연한 거였습니다. 그런데 서구 문화의 영향으로 예배당에 의자가 들어오면서 신발을 신고서 의자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다 보니 언젠가부터 무릎을 꿇는 일이 없어진 것입니다.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겸손과 경배의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어른들한테 절할 때도 무릎을 꿇었듯이 하나님께 경배할 때도 당연히 무릎 꿇어야 합니다.

아직도 뷸교나 이슬람교는 자신들의 신을 예배할 때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법당이나 모스크를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철저하게 무릎을 꿇고 예배를 드리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마음은 태도와 연관이 깊습니다. 태도가 공손하면 마음가짐도 그렇게 됩니다. 거꾸로 마음이 겸손한 사람들은 자세도 그렇게 갖게 됩니다. 이 둘은 함께 가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무척 중요하기 때문에 바울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할 때 두 가지 결과가 주어질 것을 믿고 아멘으로 끝을 맺으셨습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는 약속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구하지 않아도 주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고 기도드릴 때 자연스럽게 주어지고 따라오는 것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은 9월이 시작되는 월삭입니다. 아름다운 계절이 왔습니다. 이 좋은 계절에 우리가 더욱 힘써 기도함으로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그의 영광 가운데 기쁨으로 나아가며 모든 것이 합력해 선을 이루게 하시는 주님께 감사드립시다.

김형윤 목사 / 서울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