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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적인 관점에서 본 갈라디아서의 구원론-25

하나님은 교회를 향한 모든 계획은 아들 그리스도 안에서 세우시고(1:4), 우주가 아들 안에서 통일되게 하시고(1:10),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 피로 죄 사함과 구속과 은혜를 받고(1:7) 그의 십자가를 통하여 화목을 이루게 됐다(2:16). 성자 하나님의 구속 역사는 그리스도의 ‘구속’과 ‘죄사함’을 통해 보다 분명하게 제시된다. ‘구속’의 개념은 애굽의 통치 아래 있던 이스라엘 민족이 해방된 출애굽 사건을 통해 예표했고 마침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에 의해 성취됐다. 이는 성부 하나님의 뜻에 기꺼이 복종한 그리스도의 구속 행위였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구속에 참여하게 됨으로써 결국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그 은혜는 새 삶이 시작된다는 약속과 함께 주어졌다. 이에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엡 1:7~8)라고 말한다.
에베소서에는 모든 것 위에 뛰어난 그리스도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묘사하는 이른바 우주적 기독론이 서신 전반에 걸쳐 강조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을 통해 모든 정사와 권세 위에 뛰어나신 분이 됐고, 바로 이 분이 자신의 몸인 교회의 머리로 주어졌다(엡 1:21, 22).


에베소서 1장 13~14절은 성령 하나님의 인치심을 찬송한다. 바울은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한다. 바로 이곳에서(1:13) 에베소서에는 처음으로 성령이 실제적으로 언급됐다.
여기서 성령에 대해 사용된 이미지는 하나님의 인(도장), 상속의 보증 등이고 또한 약속의 성령이라고 언급됨으로써 하나님의 아들의 공동체, 즉 교회를 새로운 이스라엘에 견주고 있음이 암시된다.


즉, 신령한 복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구속과 성령의 선물을 통해 주시는 복이다. 하나님은 교회(아들들의 공동체)를 계획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그 기반을 닦으시고, 성령은 시간 속에서 그것을 수행하시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13절에서 바울이 구원의 복음을 가리켜 ‘진리의 말씀’이라고 한 것은 복음 사역을 통해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진리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 또한 진리를 그 내용으로 가지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 과정에서 역사하시는 분이 성령이시다. 구원의 복음이 선포될 때 그 복음에 반응하고 그리스도의 믿음이 발생하는 것은 전적으로 성령께서 행하시는 인치심의 결과이다.
이 성령 하나님의 역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는 인치심이며(롬 8:14~15) 성령의 인치심은 오로지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삼위 하나님께 대한 신앙, 즉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의 결과(갈 5:6)이다.


그리고 성령께서 신자들의 삶 속에서 이루신 변화는 그들의 삶 속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며 그 삶을 하나님이 소유하고 계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확실한 표시이다(갈 5:22~23).
성령의 역사는 구원의 완성을 향해 역사하신다. 복음을 구원의 능력으로 성도들에게 역사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이로써 성령은 개인의 삶에 변화를 가져오며 믿음과 협력의 교회 공동체를 이루도록 역사하심으로 성령은 교회 가운데 활력을 일으키는 실체가 되신다. 성도들에게 주어진 구원은 전적으로 성령께서 친히 약속을 성취하심으로써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에베소서 1장의 찬송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을 자세히 증거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작정과 그리스도의 구속과 성령의 인치심으로 이뤄진다. 이는 모두 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된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된 것이다. 그 목적은 우리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6절).


(3) 목회서신의 찬송시(딛 3:4~7)
디도서 3장 4~7절은 디도서에서 유일하게 성령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된 구절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구원자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동시에 우리의 구원자 성자 예수님의 사역”을 언급하면서 삼위 하나님의 인간 구원활동을 감동적으로 묘사하는 아름다운 찬송시이다. 여기서 성령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과 성자 그리스도와 더불어 인류 구원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묘사하고 있다.
먼저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은 성부 하나님의 사랑으로 시작된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을 따라 이뤄졌다. 우리의 구원은 그의 긍휼의 결과였기에 하나님의 긍휼, 그의 은혜, 그의 선하심과 사랑은 우리의 구원의 유일한 원천이 된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주신 결과인 것이다.
목회서신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강조하는 낮은 기독론의 대표적인 칭호 ‘예수’만을 독립적으로 지칭하는 구절 자체가 없으며, 신성을 강조하는 높은 기독론의 대표적인 칭호인 ‘하나님의 아들’도 나타나지 않지만 디모데 서신들과 디도서에서 ‘그리스도 예수’라는 호칭은 25번이나 나온다.


디도서 1장 4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칭호로 사용됐으나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 예수” 사이에는 특별한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목회서신에는 성령의 언급이 거의 없다. 디모데전서 4장 1절에 한 번, 디모데후서 1장 14절에 한번, 그리고 디도서에 한번, 총 세 번 언급될 뿐이다. 그런데 디도서에 구원의 과정을 묘사할 때 성령이 언급됐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구원사역에서 성령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바울 사도의 이해를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디도서 3장 5~6절에 사용된 언어들은 바울의 성령에 대한 어떤 묘사보다도 강력하게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우리의 구원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성령 하나님에 대해 언급한다. 인류 구원에 대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을 노래하는 디도서 3장 4~7절은 동일한 내용을 지닌 찬송시, 에베소서 1장 3~14절과 많이 닮아 있다.
이 문장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성품과 역사와 목적에 초점이 있고 인간의 반응(믿음)은 나와 있지 않다. 다만 인간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 구원과 은혜 그리고 의롭게 되고 영생의 수혜자로만 기술되고 있어서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주도적인 사역이고 은혜임이 강조돼 있다. 이 문장 5절 하반절에 한글 번역상(개역개정)의 문제점과 그로 인한 구원관과 성령의 역할에 대한 오해를 야기 시킨다고 한다.


디도서 3장 5절(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에서 성령의 언급이 있는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라는 개역 성경의 번역에 문제가 있고, 이 어구의 전치사와 접속사, 그리고 사본학적인 증거 등을 감안한다면 “다시 남(중생)과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씻기는 사역을 통하여” 혹은 “성령의 새로 나게 함과 새롭게 함의 씻는 사역을 통하여”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한다.


하나님은 무엇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셨는가? 개역개정의 번역에 따르면 하나님의 구원의 두 가지 사건 곧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함”으로 이뤄졌다. 여기서 중생·거듭남과 새롭게 함은 두 가지 사건인가? 아니면 동시에 일어나는 한 가지 사건인가? 대등 접속사 카이로 묶인 팔링 게네시아와 아나카이노시스는 둘 다 루트루를 한정한다. 이는 두 가지의 개별 사건이 아니고 하나님은 “씻음을 통해서”, 즉 씻음이라는 한가지의 사건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셨는데, 그 씻음이 두 가지로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씻음이란 영적인 씻음 곧 거듭나게 하는 씻음과 새롭게 하는 씻음을 말하는데 이를 성령의 침례라 한다.


이와 같이 중생과 새롭게 하시는 씻음의 사역은 성령 하나님의 사역 혹은 성령님을 통해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로 볼 수 있다. 디도서의 본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구원하셨다고 말하고 있다. 성령을 받게 되면 우리가 거듭나고 또 새롭게 된다. 이때 우리를 변화시켜주는 주체가 성령이시다. 이것이 디도서 3장 5절이 증언하는 구원의 과정이라 한다.


디도서 3장 4~7절에서 중생은 침례 개념과 성령 받음에 대한 것과 관련된다. 영생은 아직 미래적이지만 지금 여기서는 그것이 이미 현존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이 분배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새롭게 창조하신다. 여기서 중생이 구원의 행동으로 나타난다. 영생은 성령부음을 통한 중생을 위하여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와 같이 영생에 이르는 구원의 역사는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공동사역이며 함께 성취시키신다.


김종이 목사 성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