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삼위일체적인 관점에서 본 갈라디아서의 구원론-29

하나님의 그 약속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미 성취됐지만 아직 믿는 자 안에 완성되지는 않았다.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써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성취됐고, 이제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 약속이 믿는 자들 안에 적용됐다. 이를 성령의 약속이라 했으니(갈 3:14), 바울은 예수의 흔적이라 했다(갈 6:17).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성령의 사역은 하나님의 약속들이 성취되는 토대이다. 그리스도의 오심과 성령의 사역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구원의 약속들을 성취하기 시작하셨다는 중요한 표지이다.


신약성경에 의해 하나님의 약속들이 성취되고, 말세가 왔으며(고전 10:11), 새 창조가 시작됐고, 영생이 임했고, 새 언약이 현실이 됐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시기 430년 전에 아브라함과 약속의 언약을 맺었다는 사실을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주장한다(갈 3:15-18). 바울은 유언 또는 언약을 모두 의미할 수 있는 “디아데케”(언약)라는 단어를 다루면서, 사람의 언약도 정한 후에 더하거나 폐할 수 없는 것처럼 아브라함에게 준 하나님의 약속도 후에 생긴 율법에 의해 폐해질 수 없음을 지적한다.


아브라함과 맺은 이 언약도 약속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행위로 의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은 철저하게 배제된다. 바울은 아브라함과 맺은 약속의 언약에 대해서 ‘디아데케’라는 술어를 사용하지만(갈 3장), 그는 또 그것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언약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율법의 언약(고후 3:14)에 대해서도 사용한다.
갈라디아서 3장과 로마서 4장의 사상적인 의미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언약을 신뢰하고 율법을 행위로 구원 얻는 방편으로 사용하지 않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


‘디아데케’(언약)이라는 용어는 고대 세계에서 ‘유서’ 또는 ‘유언’으로 이해됐다. 바울 시대의 역사가 요세프스는 디아데케를 항상 ‘유서’ 또는 ‘유언’으로 사용했으며 결코 “언약”으로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히브리 맛소라 원문을 헬라어 70인역으로 번역할 때 신학적으로 중요한 용어 베리트(언약)를 모두 “디아데케”로 번역했다.
히브리어 구약 성경을 보면 ‘언약을 하다’가 ‘카타르 베리트’로 돼 있다. “카라트”란 “무엇을 쪼개다”라는 의미가 있다. “베리트”란 언약이란 뜻이다. ‘언약을 쪼갠다’라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친히 아브라함과 언약을 체결하시는 사건은 창세전에 이미 그리스도가 인간을 위한 언약의 당사자로 세워졌기 때문이다(사 49:8). 로마 법률 체계에서 유언자가 자신의 유언을 취소하거나 변경하는 일은 언제나 가능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신 언약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사이에 체결됐기에 아무도 폐하거나 취소시킬 수 없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 15절에서 하나님이 취소 불가능한 방식으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셨음으로 그것은 결코 폐하거나 변경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보통 바울은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언약을 언급할 때 단수형의 에팡겔리아(약속)를 사용한다.


로널드 펑은 갈라디아서 3장 15절과 17절의 “언약”에서 “Will and testament”은 히브리어 언약인 베리트를 LXX역이 번역한 것으로 디아데케를 뜻한다고 한다. 이 단어가 그리스의 법적 의미에서 사용됐고, 좀 더 정확한 해석으로 “will and testament”을 가리킨다고 제시하지만 여기서는 “합의, 법적이고 강제적으로 만들어진 해결”이라는 원래의 의미로 디아데케를 선택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갈라디아서 3장 16절에는 명시된 주어를 지니지 않지만 하나님이 암시되어 있다. 하나님이 씨(스페르마)에 대한 약속을 하셨는데 그 씨는 단수형으로 그리스도를 말한다(갈 3:6). 즉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 언약을 성취하실 것을 미리 정하시고 아브라함에게 그 씨를 약속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은 이 “아브라함의 씨”에 의해서만 가능하며, 모세의 율법은 430년 만에 수여됐기 때문에 그 구속력에 있어서 약속에 종속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씨는 그가 처음으로 시행한 할례를 통해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성경에 약속한 한 명의 아브라함의 씨인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전통적인 유대교 해석을 배제한 바울의 해석이었다.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을 성취했고, 그 결과 율법의 시대를 끝내고 그리스도가 새 시대를 출발시켰는데, 믿는 자에게는 ‘속박으로부터의 자유’와 ‘율법의 마침과 진리의 삶의 시작’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우리를 육신을 좇지 않고 영을 좇아 행하게 함으로 율법의 요구를 이루신다(롬 8:54). 바울은 성령으로 말미암는 사랑이 본질적으로 율법의 성취라고 주장한다(갈 5:22). 전체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갈 5:14)는 구절 속에서 성취된다. 사랑의 법인 그리스도의 법은 율법을 성취한다.
성령이 내주하며 사랑의 능력을 받은 사람은 율법아래 있는 사람이 할 수 없었던 율법을 성취할 수 있게 됐다.


김종이 목사 성림교회



배너

총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