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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일까, 추측일까?

가정회복-20

상담소를 찾은 B양은 직장일과 관련되어 고민이 많았다.
자신에게는 직장에 들어가기 위한 인터뷰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사교적이고 언변이 뛰어난 B양은 자신의 의견이나 능력을 보이고 설명하는데 뛰어났다. 처음에 좋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할 만큼 친절했고 상냥했다. 인터뷰를 주관하는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리고 남성과 인터뷰를 할 경우 좀 더 여성스럽고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애쓰고, 여성과 인터뷰를 할 경우 전문적인 경험과 능력을 더 강조한다고도 했다. 그러한 그녀만의 독특한 기술이 효과를 보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어쨌든 인터뷰를 하는 직장마다 쉽게 자리를 얻어 들어갔다. 그러나 문제는 들어간 직장에서 두세 달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던지 쫓겨난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일도 빨리 배웠고 맡겨진 일들을 척척 해나갔다. 그러나 똑똑하고 눈치 빠른 그녀의 눈에 직장의 문제점들은 너무나 쉽게 빨리 드러났다. 누가 일을 안 하는데도 안 걸리고 넘어가고 있으며, 누구와 누가 친했고, 어떤 상사가 능력이 없는지도 금방 알아차렸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쉽게 눈치 챘다. 그중 누군가가 미소 없이 쌀쌀맞게 대하면 자신의 능력을 시기한다고 믿었다.
쉬는 시간에 모여 잡담을 하고 있는 동료들을 보면 자기에 대한 험담을 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능력 없는 상사는 똑똑한 자신을 견제하거나 친한 다른 동료들에게만 편의를 봐주는 듯 보였다. 직장에서 상사나 동료들이 자신을 미워한다는 그녀의 추측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증거를 모아갔다.
자신을 왕따 시키는 듯한 느낌 때문에 동료 간에 다툼이 잦아지고 상사에게 투덜대기도 했다. 그 사이 이미 B양은 다른 직장을 찾기 시작하고, 결국에는 사표를 던지고 나오든지, 주위 사람과의 갈등으로 해고되기도 했다. 똑똑하고 눈치 있고 판단이 빠른 B양의 특성은 초기 인터뷰에서는 힘을 발휘하지만, 직장에서의 지속적인 인간관계에서는 장점이 되지 못했다.


자신의 직감을 지나치게 의지하는 B양은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서 너무나 쉽게 그들의 의도와 생각을 추측했다. 문제는 B양의 빠른 눈치가 항상 들어맞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그녀가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서 내리는 결론이 늘 맞는 것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너무나 지나친 추측과 해석 때문에 문제가 다른 문제를 낳게 되는 경우가 생겨나는 것이다.
B양처럼 우리도 자주 상대방을 보면서 쉽게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추측한다. 교회 안에서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갑자기 눈을 마주치지 않고 별 말이 없어지면 눈치가 보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왜 화가 났나? 삐진 거 아냐?’라는 추측에서 시작해서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실수했나?’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왜 내 눈을 피하지? 저 사람이 내 흉을 보고 다니나?’까지 생각이 진행되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러다보면 생각이 생각을 낳아서 ‘저 사람, 날 무시하나보다’ ‘날 싫어하는 게 분명해’라고 믿던지, ‘저 인간, 성격 진짜 이상한 거 아냐?’라고 판단하게 되기도 한다. ‘사모님이 오늘은 나한테 인사를 안 했어. 나한테 관심도 없는 게 분명해’라든지, ‘목사님 오늘 설교는 나 들으라고 하는 이야기일 거야. 날 미워하는 게 틀림없어’라고 생각한다.


‘저 집사님 말투가 딱딱하고 쌀쌀맞아. 사랑이 많은 사람은 아니야’라고 판단하기도 한다. 간혹 우리의 추측이 맞을 때도 있겠지만 실제로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겉모양만 보고 생각보다 많은 오류를 범하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나마 관계가 아주 깨지기 전에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하는 성숙함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대부분은 추측과 오해로 관계가 절단 나서 끝을 맺는 경우도 허다하다.
미움, 분노, 슬픔, 우울, 불안 등의 여러 가지 감정이나 떠오르는 생각에 대해 나눌 때, 내담자에게 잠깐 뒤로 물러나 그 생각이나 감정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도록 요청할 때가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 그 생각과 감정이 굴러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눈덩어리처럼 불어나 가속도가 붙을 때가 있다. 우리가 했던 추측이 확신이 되고 믿음이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또다시 걷잡을 수 없이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에 휩싸일 때가 있다. 이 부정적 생각과 감정은 폭발로 이어지고, 당하는 상대방은 영문을 모른다.
누군가에 대해, 어떤 사건에 대해 생각이 생각을 낳도록, 감정이 눈덩어리처럼 불어나도록 속수무책으로 내버려 두고 있는 상태라면 잠깐만 멈추어 보자. 잠깐만 그 생각을 들어다 보자.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것들은 한정되어 있다.


우리 스스로의 생각, 느낌, 감각, 행동, 혹은 다른 이들의 행동, 사건들, 물리적 현실들은 관찰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가 관찰할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다른 이들의 생각, 감정, 의도, 믿음이다. 어떤 이가 말수가 적은 것은 관찰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말을 안 하니까 나를 싫어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증명할 수 없는 추측이고 판단일 뿐이다. 다른 이들의 의도나 생각, 감정을 분명히 알고 있다고 믿는다면, 아마 우리의 생각은 이미 관찰을 넘어 도가 넘는 추측과 판단으로 치닫고 있는지도 모른다. 거기에 치이고 상처받는 이는 결국 우리 자신일 뿐이다.


잘못된 추측과 판단이 우리의 하루를 지배하지 않도록 마음을 살피자.
아침의 말씀묵상으로 우리 마음을 열자. 우리의 생각을 점검하기 위해 순간순간의 기도로 멈추어 서자. 하나님의 크고 넓은 생각이 우리의 짧고 좁은 추측을 바꾸시도록 우리의 생각도 내어 드리자.


심연희 사모
RTP지구촌교회(미주) Life Plus Family Center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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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다시 사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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