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세대 아우르고 다음 세대를 훈련시켜 거룩한 제자화에 역점‘샘’과 ‘밭’이 많아 천전리로 불리던 곳에 한국전쟁이후 전쟁의 상흔을 치유하기 위해 교회가 세워졌다.미27사단 보급부대 소속 미 군목은 격전지였던 춘천 천전리에 부대 천막을 기증하고 이곳에 침례교회를 세우게 된다. 샘밭교회(구 천전교회)의 태동은 이렇게 시작됐다. 해방 이후 재건된 침례교회와 미남침례교한국선교부는 1955년 8월 천막목제 가건물을 짓고 선교부를 통해 교회 건축 대지를 지원받아 예배당을 건축한 샘밭교회는 1961년 천전교회에서 샘밭교회로 개명하고 교회를 방주 모양으로 건축하는 등, 춘천 지역 복음화와 앞으로 미래 통일을 대비한 북방 선교의 전초기지로써의 역할을 감당하게 됐다.2008년 차성회 목사가 담임 목사로 부임한 이후 샘밭교회는 농촌교회라는 한적한 교회를 벗어나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세워진 교회의 비전과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다양한 사역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교회 출석하고 있는 다음 세대와 장년 세대를 함께 아우를 수 있는 선교 사명을 감당하며 생동감 넘치는 교회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오는 2014년 6월 교회 창립 60주년을 맞이하는 샘밭교회는 60주년 준비위원회를
목회자 스스로 본을 보이며 헌신하고 희생할 때 성도들도 함께 동참“전도사 시절 대도시 부교역자로 헌신하면서 섬기고 헌신하는 목회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고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교회 개척을 꿈을 품으면서 내 본분과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목양했던 것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30여 년의 목회 생애를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지만 제 신념은 성도와 함께, 교회와 함께, 그리고 하나님께 함께 하는 삶이었습니다.”익산지방회 신남교회에서 지역 복음화와 섬김의 사역을 실천하고 있는 이종봉 목사. 정통적으로 침례교인으로 성장해 오직 한 길만 걸어왔던 그는 작금의 교회 현실을 지켜보면서 침례교회가 뼈를 깎는 고통을 이겨내고 교회가 세상과 더불어 교회다움의 본을 세워나가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특히 절대적인 위치의 담임 목회자가 아닌 성도들보다 먼저 헌신하고 자신의 것보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 사역에 우선시하며 내 교회보다 지역 복음화에 앞장서며 자기 스스로를 겸허히 낮추는 사역에 매진하고 있다. 대도시 부역자에서 시골 개척교회로 서울 영광교회 전도사 시절, 광시교회 부흥집회를 인도했던 담임목사의 말씀을 듣기 위해 길을 나서 이종봉 전도사는 그곳에서 놀라운 하나님
예목수양관, 실버타운, 추모공원 등 교회 복지 인프라 구축“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항상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열심을 다해 부교역자 사역을 감당해온 서정용 목사는 2004년에 목사 안수를 받고 2006년에 경기도 평택 동구리에 상가를 임대 받아 예목교회를 개척했다.무엇보다 개척은 고난과 눈물의 순간이었다. 더욱이 사람의 왕래도 많지 않은 시골에 인접해 있는 교회여서 찾는 이도 많지 않고 지역 주민도 교회에 대한 인식보다는 세상의 방법에 의존하는 모습에 한두 번 좌절한 것이 아니었다. 교회 개척과 고난, 교회 이전3년 동안 교회에서는 서정용 목사와 유양미 사모외에는 예목교회를 찾는 이가 전무했다. 그동안 서 목사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강단에 무릎 꿇고 하염없이 울면서 교회 부흥과 지역 영혼을 살리고자 하는 열정을 계속 품에 안았다. 유양미 사모도 지역 주민을 만나 전도도 하고 복음에 대한 소식도 전했지만 교회에 대한 반응은 싸늘했다.서정용 목사는 “사모가 고생이란 고생은 정말 많이 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상황도 여러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돕고 계신다는 확신을 가졌다”면서 “그
예수님 공생애 사역 모델 기초로 교회 성장의 토대 마련1975년 결혼 이후 전 재산을 털어 대구에 동대구교회를 개척한 유영식 목사. 교회 개척이후 쉽지 않은 길을 걸었던 그의 행보는 38년동안 한결같이 교회와 함께 하며 죽을 각오로 교회 성장과 함께 교회 부흥에 초석을 다지게 된다. 힘겹게 모은 헌금으로 대지를 구입하고 현재의 교회터를 매매하고 교회를 세울 때, 무엇보다 자신의 살과 피를 평생 교회에 바친다는 의미를 담으며 자신의 신체 일부를 교회 기둥에 심기도 했다. 그만큼 유영식 목사에게 목회는 바로 생명을 다 바쳐 충성하겠다는 각오를 담고 있다.눈물의 교회 개척…교회 창립 그리고 부흥막막했던 시절 개척한 교회는 6개월동안 성도가 전혀 찾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교회 창립 예빼에는 미국 선교사 3명과 한국인 목사 6명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이 허락하는 교회를 일으키기 위해 노력했다. 개척교회의 목사로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던 유영식 목사는 지방회 지원이나 교단 기관의 지원조차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특히 기금 신청을 위해 대구에서 대전까지 내려갔지만 아무 소득없이 떠날 때는 왕복 비용도 없어 대전역 한 전당포에 결혼반지를
모방보다는 철저한 성경 중심 설교로 성도를 깨워나가“이 땅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말씀이라는 것을 삶의 생동력을 불러일으키며 교회를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이를 실천해 나가고 있습니다. 작은 교회도 말씀이 살아 움직인다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저는 목회자라는 타이틀보다 설교가라는 타이틀이 더 어울리는 사명을 감당하고 싶습니다. 가난하고 힘들었던 개척교회의 삶을 되돌아보며 무엇보다 성경 중심의 말씀만이 세상을 싸워 능히 승리할 수 있는 영적으로 무장된 군사로 세워나갈 수 있음에 확신합니다. 그 길을 참좋은교회와 함께 걸어갈 것입니다.” 1988년 신학교를 졸업하고 학사장교를 거쳐 전도사로 1992년 교회를 개척한 안재민 목사. 모친과 함께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 사명을 감당하면서 그에게는 여러 차례 위기와 도전이 있었다. 현 참좋은교회로 부임해서 담임목회 사역을 할때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재민 목사의 마음에는 오직 교회 일꾼을 섬기며 교회의 규모를 넘어 오직 성경적인 교회, 하나님 말씀 중심의 교회로 세우기 위한 한결같은 마음으로 현재도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며 건강한 교회로 영향력을 미
선교·양육·비전으로 세워 미래 믿음의 유산으로 이어간다60년전 민족의 비극이었던 한국전쟁은 한반도 남단 부산의 환경을 바꿔놨다. 수도 행정이 급격하게 이전하고 전쟁을 피해 수많은 피난민이 정착했으며 유엔군을 비롯해, 해외 각국의 군수물자와 구호물자들이 유입됐다.부산 범일동 지역에는 지역민들과 피난민, 무너진 한국교회를 세우기 위한 다양한 구호물품들이 유입되고 공수됐다. 유엔군 소속 미 군종 목사들은 무엇보다 실의에 빠진 우리 국민들을 위해 물자를 나누고 배분하며 믿음과 신앙으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1952년 구호 물자를 나눠주던 창고를 예배당으로 개조, 첫 예배를 드리며 시작된 교회가 바로 범일교회(최재훈 목사)이다. 우리나라 최초 유엔기념교회인 범일교회는 지난 60년간 부산지역의 대표적인 교단교회로 자리매김하며 초대교회의 공동체를 실현하고 있다. 창립 60주년 본질로 돌아가는 교회교회 태동부터 나눔과 선교적 사명을 감당했던 범일교회는 교회 창립 60주년을 맞아 교회의 본질을 추구하며 “ACTS 29”(행9:31)를 진행하고 있다.지난 4월 1일부터 오는 11월 30일까지 7개월간 진행되는 “ACTS 29”는 교회 창립 이후 지역사역
침례교 농어촌선교회(농선회, 회장 이종봉 목사, 사무총장 강형주 목사)는 지난 4월 4일 웅포교회(박선원 목사)에서 농선회 제1차 교회 사역 탐방을 진행했다.이번 교회 탐방은 지난 3월에 열린 농선회 제1차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 일으키며 다수의 참석자들이 탐방을 희망한 것에 따라 이뤄졌다. 이날 1차 탐방에는 농선회 회장 이종봉 목사(신남)를 비롯해, 사무총장 강형주 목사(선장중앙) 등 농선회 임원들과 30여 명의 농어촌교회 목회자부부가 함께 했다.이날 프로그램을 진행한 농선회 직전회장 박선원 목사(웅포)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성도들과 함께 많은 눈물도 흘리고 아픔을 겪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잊지 않은 것은 ‘농촌목회는 불가능은 없다. 안된다는 없다’는 것이다. 이 마음으로 한결같이 달려왔다”며 “우리가 필요로 한 것은 성공이 아닌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를 건강하게 지켜나가야 하는 사명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전했다.또한 박 목사는 “하나님은 절대로 교회 쓰러짐을 허락하지 않으신다. 분명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뜻이 있음을 기억하고 이를 위해 보다 많은 정보와 열린 마음으로 농어촌교회 목회를 감당해야 한다”고 강조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하나님의 비전을 품고 개척한 교회. 숱한 고통과 어려움, 온갖 시련을 딛고 일어나 부흥과 성장을 이룬 목회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는 침례교회를사랑하는목회자모임 공개세미나. 올해로 4번째를 맞은 “작은교회 부흥성장 노하우 공개세미나”는 오는 4월 1~3일 2박 3일간 대구 샘깊은교회(손석원 목사)에서 진행된다. 50개 교회 목회자 부부가 함께 하는 이번 세미나는 과거 세미나를 통해 이뤄졌던 회복의 역사를 다시 한 번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교회를 대천동으로 이전하고 침사목 세미나를 준비하고 있는 손석원 목사를 만나 그동안의 침사목 세미나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주◇ 침례교를사랑하는목회자모임(침사목)이 어느덧 네 번째로 작은교회 성장 세미나를 진행하게 됐습니다. 특히 침사목을 다른 유관단체와 달리 대표자가 없이 꾸준히 첫 세미나 강사분들이 꾸준히 이 사역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침사목 사역을 정리해주신다면.= 무엇보다 침례교회를 사랑하고 아끼는 이들이 함께 모여 이 사역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른 유관 단체와는 다른 상황입니다. 조직을 만들고 그 조직에 참여할 목회자들이 함께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우리 침
현재 중앙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김태형 목사는 그의 장인을 비롯해 처가쪽 가족 대부분이 장로교단목사이지만 장로교로 넘어가지 않고 침례교회에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고 사역을 하고 있다. 교회로 온지는 5년 정도가 됐고 지하에 있는 중앙교회의 가장 큰 기도제목은 교회가 지상으로 올라갔으면 하는 것이다.교회가 하나의 공간으로 만들어져 있고 아이들이 따로 있을만한 공간이 없어 지난 5년간 많은 안타까움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 출석하는 교인은 20명 정도이고 대학생활을 하면서 병행하는 아르바이트로 인해 교회와 자꾸 멀어지려고 하지만 계속해서 출석하는 전체 교인 중 7~8명이 청년이다. 제주도에 있는 목사님들은 대부분 5년정도가 되면 목회를 그만둔다고 한다. 계속해서 전도해도 변화에 기미는 보이지 않는데 아이들은 계속해서 크다보니 생활대책이 안서서 결국은 목회를 그만두게 되는 것이다. 김태형 목사는 “제주도가 전도하기가 많이 힘든 곳이다. 그런데 목사님들이 몇 번 시도해보고 몇 번 현실에 부딪히시다 보니 힘이 들어 복음을 전할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힘을내서 전도해야 하는 것은 알고 있고 항상 마음속에 부담이 있지만 겉으로 드러내기는 힘들고 나타나는데는 오랜
오랜 시간동안 도시에서 목회를 하며 담임목사와 부교역자 생활을 했던 최길헌 목사. 갑작스런 건강악화로 인해 목회를 중단해야 했던 최 목사에게 한 가지 희망으로 다가온 것은 바로 전원교회였다. 치유선교교회의 주된 사역 중에 하나는 쑥 찜질이다. 쑥은 우리 몸에 노화 방지와 면역기능을 강화하고 해독과 피로회복은 물론 알레르기 예방에도 효과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고혈압 환자에게는 정혈작용과 체내 노폐물을 배출시키기도 하고, 불임 여성 진환이나 암환자에게 효과를 보기도 했다.이 쑥과 특허를 받은 황토 쑥찜질기를 이용해 뜸을 뜰 경우, 3~4시간 동은 쑥찜과 좌훈을 하게 된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 쑥찜을 할 수 있도록 치유선교교회 1층에는 쑥찜방이 마련되어 있다.최길헌 목사는 “이 사역은 예수님의 3대 사역인 가르치고 복음을 전파하시면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시니(마4:23)라는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문을 열었다”면서“나 스스로도 이를 지키지 못해 머나먼 길을 걸어 온 나 자신이기에 무엇보다 이 사역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 치유와 회복이 필요한 우리에게 세상의 의학으로 힘을 빌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과 함께 하고자 이런 사역을 마련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