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1세(1558~1603) 시대 성공회를 개혁하려한 청교도들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쳤다. 첫째, 모든 예배와 신앙행습은 성경에 근거해야 하는데, 성경에 나오는 예배는 예식서의 예전적 형식의 예배가 아니라, 성령의 임재 하에 자유롭고 살아있는 예배였다. 따라서 획일화된 예배를 생산하는 성공회의 공동기도서는 폐지돼야 한다. 둘째, 가톨릭교회의 절기들을 없애고, 대신 주일을 엄격히 성수해야 한다. 주일날 세상적인 오락과 경건치 못한 언행과 행위들은 금하고 경건하게 지켜야 한다. 셋째, 예정과 특별구속, 하나님의 언약은 성서적 진리이므로 믿어야 한다. 청교도들의 언약사상(계약사상)은 존 칼빈과 스위스 종교개혁자 하인리히 불링거(Heinrich Bullinger)로부터 기원했다. 칼빈의 언약신학은 예정론과 연계되어 있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실 때, 아브라함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언약을 맺었으며, 따라서 언약은 택한 백성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이 일방적인 약속이라 하였다. 한편 불링거는 구원에 있어 인간의 반응을 필수적인 요소로 보았다. 그래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쌍무적 계약사상을 주장했는데 즉, 하나님은 아들을 통해 화해와 축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소나 닭들을 방목하며 키우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참 평화롭고, 행복하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묶여 있거나, 갇혀있는 모습을 볼 때면 왠지 안쓰럽고, 불쌍하게 보이곤 했습니다. 그 차이는 “자유”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도 근심, 걱정, 불안, 시기, 질투, 미움, 낙심, 절망, 두려움 등 우리가 이런 것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이것이 진정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참모습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최고의 “복”인 “자유”가 바로 이러한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선 이 자유가 진리 안에 있으며, 진리를 알 때 비로소 이 모든 것이 가능케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지금까지 사역을 해오면서 교회 임원진들과 회의를 할 때, 교회 내에 물건을 구입하는 일에 있어서나 또는 단합회 선물을 어떤 것으로 할 것인지 그리고 교회 리모델링 등 여러 의견들에 있어서 늘 마음을 비우고 가능한 한 성도들의 의견에 많은 비중을 두고 지내왔지만 그러나 진리에 대해서만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사수해왔습니다. 왜냐면 진리는 하나님 말씀 곧 하나님 뜻이기
목사님께 가난한 집사님이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부탁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목사님의 지혜와 명철로 제 문제가 해결됐으면 좋겠습니다. 저에게는 오랫동안 사귀어 온 친구가 있습니다. 같은 마을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학교도 다니고 함께 먹고, 함께 등산도 하면서 무엇이든지 함께 동고동락 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빵 장사를 해서 돈을 좀 벌더니 어느날 변해 버렸습니다. 제가 좀 힘든 일이 있어서 금전적인 부탁을 한 적이 한 번 있었는데, 그 뒤로는 이제는 길에서 서로 만나도 아는 척도 하지 않습니다. 아니 인사는커녕 저를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그냥 지나쳐 버립니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목사님은 한참 동안 눈을 감더니 나지막하게 말을 꺼냈습니다. “이쪽으로 오셔서 창문 밖을 쳐다보세요? 무엇이 보입니까?” “산이 보입니다. 집이 보입니다. 빵 가게도 보입니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이리 오셔서 거울을 보십시요! 무엇이 보입니까?” “제 얼굴이 보입니다” “그런 것입니다. 처음에는 모두의 마음이 유리창처럼 투명합니다. 그래서 어려움에 처한 누군가를 보면 도와주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부자가 되면 그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한 아브라함이 고백했던 말, “여호와 이레”. 우둔하고 연약한 사람의 생각 너머에서 준비하시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시라고 외치는 소리다. 단 하나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삼일길을 걸어가 사랑하는 아들을 결박해 단 나무 위에 올려놓고 칼을 들었던 아브라함. 준비해 놓으신 그 분의 손을 모르고도 순종할 수 있었는데, 적어도 우리는 그를 위해 벌써부터 준비하시고 기다리셨다는 말씀의 주님을 알고도 순종하지 못한다. 부족하지만 작은 순종에 준비하시고 기다리신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10여년전 한국의 모든 사역을 정리하고 미국에 도착했을 때의 일이다. 기도하던 아내가 처가가 있는 논산 시골 마을에 아동센터를 세우고 싶다고 말했다. 가까운 거리도 아니고, 가지고 있는 생활비도 넉넉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인도하신 주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선교의 씨앗을 심고 싶다는 아내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음성을 위해 기도했다. 2년여 동안 가깝지 않고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아내와 교대로 몇 차례를 오가며 아동센터를 세웠다. 급식비라도 보조금을 지원 받기 위해서는 2년 동안 개별적으로 운영을 해야 하기에 가능한
“루이스의 ‘고통의 문제’는 전통적인 변신론의 테두리 안에 있습니다. 이것이 고통 받는 사람에게 직접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루이스는 ‘헤아려 본 슬픔’에서 잘 보여 줍니다. 삼인칭적 경험과 일인칭적 경험의 차이지요.” 강영안 저(著) ‘신을 모르는 시대의 하나님’(IVP, 195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교 변증학의 거성(巨星) C.S. 루이스는 고통에 관해 두 권의 책을 썼습니다. 한 권은 고통을 객관적인 어조로, 이론적으로 다룬 ‘고통의 문제’이고, 다른 한 권은 자신이 겪은 슬픔을 관찰한 ‘헤아려 본 슬픔’입니다. 전자가 3인칭 시점의 이야기라면 후자는 1인칭 체험의 이야기입니다. ‘고통의 문제’는 마치 고통이 저만치 있는 것처럼 거리를 두고 고통에 관해서 말했습니다. 제일 유명한 구절이 이것입니다.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불러 깨우는 하나님의 메가폰입니다.” 그러나 ‘헤아려 본 슬픔’에서는 다릅니다. 루이스는 평생 독신으로 살다가 만년에 뒤늦게 만나 결혼하게 된 사랑하는 아내 조이 그레섬이 죽은 직후 이 책을 씁니다. 이 책에서 루이스는 ‘고통의 문제’에서 했던 자신의 말을 잊은 것처럼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다른
4차 산업혁명은 과학기술과 정보통신의 발달로 나타나는 기술의 융합과 연결과정을 거쳐 이뤄지는 산업구조와 새로운 생활의 패러다임을 지칭하는 말로 그 특징을 나타내는 요소를 살펴보면 사물인터넷, 빅 데이터, 플랫폼, 인공지능 등이 나타난다. 물론 이외에도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다양한 특징과 현상이 존재하나 전반적인 과학기술과 산업체제의 변화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은 이 연구의 범위나 목적을 넘어서기에 위에서 열거한 일반적이며 대표적인 특징들에 대한 논의에 집중하려 한다. 1) 플랫폼(Platform) 플랫폼은 4차 산업혁명에 등장하는 주요 키워드 중 하나다. 플랫폼은 본래 기차를 타고 내리는 정류장을 의미하는 영어단어로서 사람들을 모으고 새로운 목적지로 보내는 장소를 의미하는데 현대사회는 이 용어를 기술 혁신을 통해 사람과 사람 또는 사물을 연결하는 인프라를 제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비즈니스의 생태계를 나타내는 말로 사용한다. 전통적인 기업이 제품을 생산해 생산자와 다른 쪽에 연결된 소비자 사이의 중간역할을 통해 이윤을 창출했다면 플랫폼 기반 기업은 혁신적인 과학기술과 플랫폼을 중심으로 모인 사용자들 간의 개방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의 필요를 연결해 새로
한국침례교 최초의 순교자는 1918년 시베리아 선교사로 파송 받은 박노기 목사, 김희서 교사, 전영태 총찰, 최응선 감로였다. 이들은 10월 20일 포시에트해(海) 모커우 지점에서 갑자기 불어 닥친 돌풍으로 인해 배가 파선해 해상에서 순교했다. 이 일이 연추와 수청 전 지역에 알려지면서 많은 교회 부흥이 일어났다고 한다. 당시 동아기독교 순회전도자들은 대게 육로로 이동했는데 왜 이들은 ‘육로’가 아닌 ‘바닷길’로 이동했는지 궁금하다. 이들은 당시 국경지대에 마적단(馬賊團)들이 들끓었기 때문에 이를 피해 바닷길을 선택했을 것이라 추정한다. 연구자가 지난해 1월 연해주의 고려인 역사관을 방문해서 초기 한인이 탔던 배의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는데 그 이유는 배가 너무 초라한 목선(木船)이어서 오늘날의 국제여객선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작은 배였다는 사실이다. 큰 풍랑을 만난 작은 배로 인해 순교한 것이었다. 4. 평가 시베리아는 동아기독교의 교회개척이 가장 단기간에 이뤄졌고 빨리 문을 내린 지역이다. 동아기독교의 시베리아 교회개척은 1909년 2월에 첫 교회가 세워졌고, 1925년 가을에 으르싯쓰교회가 마지막으로 개척됐다. 시베리아에 44개의 동아기독교가 세워지
그런데 거의 같은 시기의 러시아의 문호 끄리일로프(Krylov)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썼습니다. 어떤 두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재판을 받게 됐습니다. 한 사람은 세상에서 살인을 하고 잡혀서 사형을 받아 죽고 한 사람은 유명한 저술가로서 명성을 떨치며 존경을 받다가 나이가 많아 죽어서 심판대에 서게 됐습니다. 두 사람은 모두 유죄가 인정되어 지옥으로 가서 벌을 받게 됐습니다. 둘 다 자기에게 주어진 가마솥에 들어가게 됐고, 가마솥 밑에서는 꺼지지 않는 불이 타고 있었으나 살인죄를 짓고 사형을 받고 온 죄인의 불보다 오히려 책을 많이 썼던 학자의 불이 더 뜨거웠습니다. 학자는 “재판장님! 저 사람은 사람을 죽인 흉측한 살인자지만 저는 그런 죄를 지은 일도 없고, 남의 것을 한 푼도 훔치거나 떼먹은 일도 없는데 불이 더 뜨거운 것은 공평하지 못합니다”라고 항의를 하자 재판장은 “저 사람은 한 사람의 생명을 죽였거니와 너는 네 쓴 책으로 수많은 영혼들이 병들고, 죽게 했노라. 그러므로 너는 불이 더 뜨거운 것이 마땅하니라”고 선언을 했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볼테르야말로 수세기를 이어오면서 그의 높은 지식과 넓은 학문에 비춰 불멸의 지성에 틀림이 없지만 하나님을
저는 요한복음에서 ‘인자’(사람의 아들) 칭호가 나오는 구절들을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사역에 관한 요한의 신학적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 호에서는 오병이어 표적 사건 이후에 예수님을 다시 찾아온 무리와 예수님 사이의 대화에 나오는 인자 말씀을 통해 제시되는 신학적 교훈을 살펴보고자 한다. 예수님은 오병이어 표적의 놀라운 영광을 체험했지만, 그 표적에 담긴 의미를 알지 못하고 육신의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에 예수님을 다시 찾아온 무리를 향해 예수님은 그의 존재를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으로 제시하셨다. 예수님은 단순히 육신의 양식을 제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삶에 진정으로 필요한 영원한 생명의 떡을 주러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다. 이번 호에는 오병이어 사건 후에 진행되는 생명의 떡에 관한 예수님의 긴 교훈에 나오는 인자 말씀에 담긴 기독론적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예수님은 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떡이지만, 그가 줄 떡은 세상의 생명을 위한 자기 ‘살’(육신)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여 “이 사람이 어떻게 자기의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라고 반문하는 유대인들과 변론하시면서 자기의 말씀의 참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막 12:30) 1981년도에 사랑하는 제 아내를 만나 깊은 사랑에 빠져 연애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그때 당시에 저는 산악인으로서 암벽등반에 심취되어 있었습니다. 학창시절부터 산을 너무 좋아해서 친구들로부터 “산적 두목”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제 이미지는 늘 산과 연관 지어져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산이 얼마나 좋던지 집에 와서도 방에서 잠을 자기보다는 옥상에서 하늘을 보며 자는 것이 더 행복했을 정도로 산과 저는 아주 밀접한 관계였습니다. 어느 날 사랑하는 제 아내에게 산 사나이다운 멋진 면모를 보여 주고 싶은 생각에, 늘 암벽 등반하던 서울 도봉동에 있는 선인봉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때 그 현장에서 산악인들의 활동 상황을 다 목격한 제 아내가 “길조 씨도 이런 암벽에 올라가나요?”라고 질문을 하길래 “그럼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내가 훈련시킨 후배들인걸요.”했더니, 제 말을 듣던 아내의 얼굴에 감탄보다는 어둠의 그늘이 드리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우리 두 사람이 그곳에서 내려올 때 제 아내가 저에게 청천벽력 같은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