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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 루이스가 큰 고난을 당한 후

비전 묵상-44

한재욱 목사
강남비전교회

“루이스의 ‘고통의 문제’는 전통적인 변신론의 테두리 안에 있습니다.

이것이 고통 받는 사람에게 직접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루이스는 ‘헤아려 본 슬픔’에서 잘 보여 줍니다.  삼인칭적 경험과 일인칭적 경험의 차이지요.”
강영안 저(著) ‘신을 모르는 시대의 하나님’(IVP, 195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교 변증학의 거성(巨星) C.S. 루이스는 고통에 관해 두 권의 책을 썼습니다. 한 권은 고통을 객관적인 어조로, 이론적으로 다룬 ‘고통의 문제’이고, 다른 한 권은 자신이 겪은 슬픔을 관찰한 ‘헤아려 본 슬픔’입니다.  전자가 3인칭 시점의 이야기라면 후자는 1인칭 체험의 이야기입니다.


‘고통의 문제’는 마치 고통이 저만치 있는 것처럼 거리를 두고 고통에 관해서 말했습니다.  제일 유명한 구절이 이것입니다.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불러 깨우는 하나님의 메가폰입니다.”
그러나 ‘헤아려 본 슬픔’에서는 다릅니다. 루이스는 평생 독신으로 살다가 만년에 뒤늦게 만나 결혼하게 된 사랑하는 아내 조이 그레섬이 죽은 직후 이 책을 씁니다. 이 책에서 루이스는 ‘고통의 문제’에서 했던 자신의 말을 잊은 것처럼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다른 모든 도움이 헛되고 절박해 하나님께 다가가면 무엇을 얻는가? 면전에서 쾅하고 닫히는 문, 안에서 빗장을 지르고 또 지르는 소리, 그러고 나서는 침묵. 왜 그분은 우리가 번성할 때는 사령관처럼 군림하시다가 환난의 때에는 이토록 도움 주시는 데 인색한 것인가?”


깊은 고난을 당한 루이스는 고난 당하는 성도들이 종종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마치 문을 걸어 잠그고 외면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슬픔에서 조금씩 회복되면서 다시 예전의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거성 루이스일지라도 큰 고난을 직접 경험해 본 후에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본 것입니다. 고난은 참 싫은 것이지만, 크고 영원한 것을 깨닫게 합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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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