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던 2014년을 뒤로 하고 2015년 을미년(乙未年) 한 해가 밝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2014년은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 모두에게 가슴 아픈 사건들이 유독 많았던 시간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세월호 사건을 필두로 한 각종 인재(人災)가 끊이지 않았고, 기독교 내부적으로도 교회 성장의 정체와 청년 복음화의 어려움, 또한 동성애 및 종교차별 법안 철폐를 위한 기나긴 싸움이 계속되어 왔습니다.그 가운데 이번 신년을 맞이하여 교수신문에서 선정한 “정본청원”(正本淸源:근본을 바로잡고 근원을 맑게한다)이라는 한자성어가 새로운 발걸음을 시작하는 한국 교회와 우리 침례교단에도 꼭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의 근본인 복음을 올바로 붙잡고, 세상을 변화시키기에 앞서 먼저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5:13~14). 그러나 빛이 그 밝음을 잃고,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오히려 세상에 버리워 밟히게 될 것임을 또한 말씀하셨습니다(마5:13). 우리는 이 말씀 앞에 우리 한국 교회의 실상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초대교회는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거센 파로 뒤로 뒤로 노저어가며겨우내 다다른 반쪽 하늘과 맞닿은 땅애써 돌린 등 한 손으로 악수청하며마주 잡은 양손은넘치는 서러움과 반가움으로온기를 뿜어낸다 비로봉에서 불어오는 한줄기 푸른바람저마다 가슴을 열고 들어서는 고성항에새로운 계절을 알리는 듯정을 보듬고, 또 보듬고적송과 푸르름이 어우러진 금강산 풍경소리등산객의 붉게 달아오른 얼굴빛은술 한잔에 취하고,풍경의 신비로움에 또 한번 취하고. 잠시 무지의 시간,발길 닿은 곳마다 이어지는 격한 감동소리내 몸 근육이 쉽게 풀어져버린 까닭이여기에 있는 것일까? 위에서 아래로 세차게 흩뿌리는폭포수의 신비로움 속아홉 마리 용의 재주를 담아이 땅에 머무르는 모습을새겨두려는 흔적일까?아니면,시작과 끝이 보이지 않는나의 외로움을 담아두려는 것일까? 몇천년 굳어 새겨진 물살 사이로둥지튼 금강산 바위석화처럼, 옛 흔적처럼 드리운저마다의 숨어있는 전설은현실을 바로 알지 못하는방랑자들에게 질책을 내리고살아남기 위한 방법을이렇게 어렵게도 전하고 있다.김현자 집사/ 성천교회
“인생성공 단십백”이라는 말이 있다. 한평생을 살면서 한명의 진정한 스승과 열 명의 진정한 친구, 그리고 백 권의 좋은 책을 기억할 수 있다면 성공한 인생이라는 뜻이다. 동양에서는 진정한 친구의 숫자를 열로 잡았지만, 서양에서는 그 숫자를 한참 낮추어 잡았다. 철학자 파스칼이 “모든 사람이 서로에게 어떻게 말하는지 알게 된다면 누구든 이 세상에 네명 이상의 친구를 갖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심지어 프랑스 대문호 로망롤랑은 네명도 많고, 무수한 사람들 가운데 나와 뜻을 같이할 한둘은 있을 것인데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공기를 호흡하는 데는 들창문하나로 족한 것처럼, 친구가 몇 명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내 영혼의 숨통을 트이게 하는 친구가 단 하나라도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라는 취지의 내용을 라디오에서 듣게 됐다. 이 말을 들으면서 난 기억할 수 있는 백 권의 책과 견줄 만할 한권의 성경과, 열 명을 대신할 수 있는 한명의 친구와 때마다 일마다 도움을 구하고 지혜를 얻는 선배들을 기억할 수 있으니 성공해가는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더불어 날씨가 겨울로 직행하는 길목에서, 아주 추운 겨울 손이 꽁꽁 얼어있는 친구가 놀러왔을 때 가장 먼저
위대한 일들은 힘이 아니라 참는 것으로 성취된다. “하루 세 시간 힘차게 걷는 사람은 7년이 지나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것과 같은 거리를 걷게 된다”는 말이 있다. 영국의 작가요 사진편집인인 사우엘 존슨의 말이다.우리는 인내의 중요성에 관해 수없이 많이 들었으며 잘 알고 있다. 성공적인 인생을 위해서 반드시 참을성이 있어야 한다.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위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인내할 줄 모르는 사람, 인내심을 결한 사람은 제반 여건이 완벽할지라도 성공이라는 목표에 이르게 되기가 어렵다 할 것이다.힘보다 중요한 요소가 인내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배가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듯이 시험 또한 모든 사람에게 고통스럽게 마련이다. 강도의 차이가 어느 정도 있을 수는 있겠으나 시험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성경에서 환난을 참도록 권고함은 이를 견디기가 그 만큼 힘이 들고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뜨거운 불이 금이나 은 같은 보석을 단련하는 것처럼, 사람의 인격이라든지 신앙 등은 환난을 통해서 단련이 된다. 따라서 그것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참아내야만 인정을 받을 수 있다.인내는 가장 쓰다고 생각하는 어떤 약보다 더 쓰지만, 인생을 성공
구원파는 유병언 교주의 잘못된 신학에 따라 기도와 금식, 예배를 전면 부정하며, 사도신경, 주기도, 축도를 거부한다. 찬송을 하되 찬양을 하지 않는다. 사도 베드로(벧후 2:10)가 예언한대로 유병언은 당돌하고 고집이 세며 집요하게 목적을 추구한다.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양회정을 비롯해 김 엄마 등은 그 교주를 닮아 유병언 교주의 사망과 관련해서도 진실을 말하지 않고 거짓말을 반복하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기독교복음침례회 구원파는 기독교란 이름으로 위장하여 사회에 폐해를 끼친 사교집단”이라고 규정했다.구원파는 기독교도 아니며, 전혀 복음적이지 않으며, 침례교적이지도 않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딤전 6:3~5)이다. 이제는 전 국민이 알게 된 것처럼, 유병언은 자기 가족의 영화를 위해 몇 만 신도들의 재산을 착취하고 종교를 빙자해 상습사기를 치는데 성공한 희대의 사기군이었으며 유도, 태권도, 스쿠알렌 등을 통해 거짓 선지자로서의 미친 듯한 종교노름에 비극적인 마침표를 찍었다. 4년간의 복역도 그를 변화시키지 못했으며 반성과 회개를 부정하는 유병언은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을 반대로 미행하고
10여 년 전 예기치 않게 어느 기독교인들의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 중에 교회에서 사역하기도 하고 기관에서 사역하기도 했던 한 분이 이야기 중에 이런 말을 했다. “교인은 자기 목회자를 따라가기 때문에 수준이 자기 목사 수준이다. 목사를 보고 교인을 보든 교인을 보고 목사를 보든 내가 겪어본 경험에 의하면 교인은 영락없이 자기 목사 수준, 딱 그만큼이다.” 그 분은 내가 목사인줄 알면서도 거침없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 그만큼 확신하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바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정말 그럴까?’하며 우리 교회 교인들을 생각하는 순간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당황스러웠기 때문이다. 몇 안 되는 교인들이지만 개중에는 어디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교인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다. 믿은 지 얼마 안 되지만 덕스러운 믿음 생활을 하는 이가 있는 반면 목사인 나로 하여금 자괴감을 느끼게 할 정도로 변화되지 않는 이도 있기 때문이다. 그 때가 내가 우리 교회에서 목회한 지 10년 가까이 되었을 때니 아무리 내가 열두 번째 목사라고 하더라도 교인들의 당시 신앙 수준에 내 책임이 상당히 있음을 부정하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향해 마음을 열고 그들의 말을 들어줄 줄 안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인데 우리는 자주 그 반대의 모습으로 살아갈 때가 많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관용을 베푸셨고 또한 우리에게 그렇게 살도록 가르치셨다. 그러나 오늘을 사는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고 있을까? 생각하기조차 부끄러운 일들이 매일매일 우리 주변에서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다. 은혜를 받았다고 특별한 체험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 가운데 관용의 미덕에 무지한 자들이 부지기수로 많다. 그리고 그 원인은 인내의 부족이다. 근본적인 치유가 요구되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인내심을 키워야 관용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영향력이 크고 존경을 받던 위대한 지도자들이 지녔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마음이 온유했다는 것이다. 부드러운 마음, 따뜻한 마음,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사람들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말로만 예수 운운할 것이 아니라 이런 마음을 보여야만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전하는 복음을 신뢰하게 될 것이다. 요즘처럼 각박한 때일수록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하다.가족 간에도 대화가 단절되고 가까운 친구 사이에도 벽이 생
지난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청해진해운의 실질적 소유주 유병언 “목사”가 6월 12일 백골화된 시체로 발견됨으로써 지난 3개월 동안 전 국민을 수사탐정으로 만들었던 사건은 일단락됐다. 국과수는 이것이 유병언의 시신이 100% 맞다고 확인해 줬는데도 국민의 60% 정도가 이를 그대로 믿지 않고 갖가지 음모론을 거론하고 있다.77년 구원파를 탈출한 이래 지난 40년 동안 유병언에게 14차례나 피소되어 그와 악연을 맺어온 나도 그의 사체에 대한 보도를 들었을 때 언뜻 이를 믿을 수가 없었다. 저것은 유병언답지 않다. 유 사장이 저렇게 죽었을 리가 없다는 것이 나의 일차적 반응이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지 않아 나도 구원파 교인들과 함께 그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게 됐다.유병언 사장이 즐겨 읽던 전도서의 말씀이 스쳐지나 갔다. “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음으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모든 사람의 결국이 일반인 그것은 해 아래서 모든 일 중에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 악이 가득하여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다가 후에는 죽은 자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저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고 얻은 것을 아무 것도
부족한 종이 그동안 실버사역을 하면서 은퇴목사님이 사역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어 이번 기회에 소개한다. 적지 않은 목사님들이 은퇴 후 담임 사역에서 손은 뗀 후 마땅히 할 일이 없어 매일매일 지루하게 남은 생애를 보내고 있는 분이 적지 않다고 한다. 실버처치는 은퇴한 목회자에게 새로운 제2의 사역의 장이 될 수 있는 매우 좋은 요소를 가지고 있다. 연세 드신 어르신들을 전도하여 양육함에 있어서 은퇴목사님이야말로 딱 들어맞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동안에 소개한 바와 같이 실버처치는 단순히 어르신들을 섬기는 일이 아니라 그들이 죽기 전에 예수 믿고 천국입성하게 하는데 사역의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실버처치는 어르신들의 삶속에 직접 찾아들어가 복음을 증거 하여 영혼을 살리는 최일선 사역으로서 참으로 보람 있는 노후의 사역이 될 수 있다. 은퇴목사님은 정년이 되었기 때문에 은퇴를 하시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연세가 점차 많아지면 교회의 대다수 젊은 회중을 이끌어가기에는 여러 가지로 부딪치거나 맞지 않아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에 자연히 은퇴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실버사역은 목회자나 성도(어르신)나 다 같이 늙어가
뜨거운 햇살 가득 삼켜 타오르는노을길 따라 돋아나는 가을길 그늘아래사색에 잠겨있는 길모퉁이 가을빛 인생꽃 다발 만발의 행운을 누리며부드러운 햇살의 애무와잘 자란 단란한 모습 속에서허약해진 내 삶을 돌아보는 잠깐의 시간수줍은 나의 고백 들어줄까한들한들 그 몸짓 반가움의 또 다른 인사 가을보다 먼저 도착해길섶에 아스러진 외톨뱅이 낙엽 한줌활짝 웃기도 전에 거친 풍랑 겪은상처투성이 모습 속에서고독에 묻혀 사는 나그네 깨어나는 시간주름진 굴곡의 발자취 몰래 꺼내볼까바람가는 곳 졸졸 따르는 반쯤 다다른 인생꽃오색의 찬란한 가을빛 어울림나그네 맞아주는 왈츠의 선율따라광부 아버지 고달픈 인생도 흘러가고가난 시절 꺼내어 다시보는내 미련한 자화상 숨겨두고다시 찾는 가을빛 인생꽃 따르는활짝 피어난 희망봉은 꼭 잡아두고 김현자 집사 / 성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