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교회 강제 철거 중 여성 신자를 산채로 묻어 중국 헤난성에서 교회를 철거하던 철거반이 저항하던 기독교인 부부를 산채로 묻어 버렸고, 결국 부인은 사망했다. 딩 쿠이메이와 그녀의 남편인 리 지앙옹는 지난 4월 14일, 철거회사에서 불도저를 동원하여 그들이 출석하는 주마디안 소재 베이토우 교회를 철거하려 하자 불도저를 막아섰다. 이 교회는 교회가 세워져 있는 땅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당국과 이해관계자들과 갈등을 겪고 있었다. 결국 철거회사 측은 철거를 강행했고 이들은 산채로 매장 되어 버렸다. 한참 후에 그들을 덮고 있던 흙더미가 치워졌을 때, 딩 쿠이메이는 이미 질식하여 사망한 상태였다. 한편 현장에 있던 한 교인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철거팀을 이끌고 있던 사람이 “산채로 묻어버려라. 내가 책임진다.”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이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불도저는 이들 부부를 가까이에 있던 움푹 패어진 웅덩이로 밀어 버렸고, 이어 흙을 덮었다는 것이다. 흙이 덮이자 남편인 리 지앙홍은 흙을 헤치고 자력으로 빠져 나왔으나 그의 아내인 딩 쿠이메이는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공안은 철거팀원 두 명을 구속 수사 중이다. 성서공회 , 작
네팔의 카드만두 길거리에는 무너져 내려 나뒹구는 벽돌들과 흙먼지가 길 위에 자욱했다. 곳곳에 지붕과 벽들이 허물어져 내린 건물들이 즐비하였고, 그 앞에 뜨거운 태양 빛을 받으며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이리와 우리 집 안을 보세요. 안은 더욱 더 엉망이 되었어요.”라고 하며, 한 노파가 우리를 불러 세웠다. 비닐 천막에 여기저기 누워 있던 네팔인들은 외국인들을 향해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네팔 대지진 후 한인 선교사들은 꾸준히 구호사역을 해 오고 있었다. 천재지변의 대 참사 앞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참담함은, 구호의 손길을 통해서 차츰 현실적인 도움을 받으며 안정을 찾으려고 무너진 벽을 다시 세웠고, 집안 가득히 채워진 흙과 벽돌들을 바구니에 담아 옮겼다. 그들의 땀방울은 삶의 터전을 복구하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아직도 들려오는 여진과 홍수로 인한 인명피해 소식은 그들의 마음을 또 다시 긴장시켰다. 지진을 겪은 네팔의 한국 선교사들과 자녀들에게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들이 나타났다. 틱 장애, 등교 거부, 불안증, 음식 거부, 공포증 등의 증상들이 나타났다. 한국에서 심리 상담사와 아동 상담사들이 카톡
사랑하며 고마운 동역자 여러분! 최영선선교사는 4월 26일 아침 5시32분에 49년의 짧지만 아름다운 삶을 마감하고 평안하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습니다. 주님의 기쁨 되기 원했던 최영선선교사! 나의 사랑! 나의 천사! 눈물 없고 통증 없는 천국에서 우리 곧 만납시다! - 한대희 선교사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선교사 된 한 대희-최영선 선교사는 2003년 8월 17일 훈련을 마치고 송탄중앙교회(배국순 목사)에서 2004년 2월 9일,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파송을 받았습니다. 최영선 선교사는 한대희선교사의 아내로서, 동역자로서 캄보디아를 가슴에 품고 자립과 재생산이 가능한 현지인 교회 3개를 개척하고 제자훈련, 어린이, 청소년 사역 등으로 자신을 헌신했습니다. 2014년 11월 시아버지의 소천으로 한국에 방문해 머무는 동안 몸의 통증으로 정밀검진을 받은 결과 유방암이 뼈와 부신까지 전이되었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 수차례의 방사선 치료와 항암주사의 부작용으로 고생하다가 자연치료를 하던 중 뇌까지 암이 전이되어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다가 26일 화요일 49년의 삶을 마감했습니다. 투병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그저 감사할 뿐이라는 최
고난 중에 안식을 주시는 주를 높여 드립니다(신 12:9절). 이미 아시겠지만, 구마모토현 마시키마치를 중심으로 지난 4월 14일 밤 9:26분에 최대 진도 7의 전진에 이어 4월 16일 새벽 1:25분에는 최대 7.3의 본진이 발생했습니다. 저희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구마모토현 전체는 그야말로 “패닉상태”에 빠졌습니다. 2016년 구마모토지진으로 명명된 이번 지진으로 2주가 지난 4월 28일 현재 49명의 사망자, 1명의 실종자, 1000여 명 이상의 부상자를 내고 있습니다. 피해가 가장 큰 마시키마치를 중심으로 저희 가족이 거주하는 구마모토시, 미나미아소무라 그리고 오이타현 일부 지역까지 피해지역이 확대됐습니다. 아마 3500여 채 이상의 집들이 파손되고, 한때 10만 명 이상이 피난소나 자동차에서 생활하기도 했습니다. 크고 작은 여진이 1000회를 넘어선 상황이라 구마모토지진은 현재 진행중이며, 심각한 피해를 입은 지역과 주택의 복구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역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습니다만, 현 내 80여개 교회 중 적지 않은 교회 예배당이 크고 작은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저희 히쯔지노무레(양무리)교회의 예배 처소 역시
Ev. Internationale Gemeinde Chemnitz(다민족교회)는 베를린 근교에 있는 Gussow에서 지난 3월 3일부터 6일 까지 Church Community trip을 진행했다. 57명이 참석 했고, 요르단에서 모슬림 사역을 하는 윤바울 선교사가 주강사로 섬겼다. 예수꼴 만들기 집회 내력 사실 예수꼴 만들기 집회는 2001년 바이마르에서 시작됐다. 2000년 바이마르교회에 부임한 나는 현지인 전도와 영적각성을 위하여 김응석 집사(현 바이마르교회 담임목사)와 교인들과 함께 전독일 한인교회에 편지를 써서 저들이 이 집회에 참석 하도록 독려하며 이 사역을 무료집회로 시작했다. 당시 바이마르교인은 30여명의 유학생들로 재정이 거의 없는 교회였지만, 복음의 열정과 순수함으로 시작하여 벌써 16회를 맞이한다. 이 집회를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이 많다. 예로 김응석 집사가 자신의 학업을 주께 내려놓고 전임 사역자로 결단했으며, 지금은 바이마르교회 담임목사로 예수꼴 만들기를 더욱 풍성하게 이어가고 있다. 또한 박귀배 목사(큰기쁨교회) 등 그 외 여러 모양으로 주께 헌신된 자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다민족 예수꼴 만들기를 기다리며 바이마
얼마 전에는 내전이 지속되고 있는 동부지역 도네츠크에 큰아들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현지 사역자의 인도를 받아 10시간 이상을(약800㎞) 달리면서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개개인들의 아픔과 절망적인 상황에도 아랑하지 않고, 위대한 자연은 또 다시 새싹이 돋는 소망의 봄을 보내주었습니다. 기나긴 아픔 속에서 맞이하는 따스한 봄이라서인지 더욱 찬란하고 푸르게 느껴졌습니다. 주의 은혜로 여러분 모두도 평안하게 지내고 계신 줄 믿습니다. 그런 여러분의 기도와 사랑은 저희에게 이 땅에 머물 이유와 힘이 되고 있기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크라이나 상황 크림에 이어 동부지역인 도네츠크와 루간스크는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분리주의자들의 힘이 커지면서 긴 내전에 돌입한 상태에 있습니다. 여러 가지 혼란한 가운데서도 정치, 경제, 교육 등에 새로운 변화들을 시도하고 있지만 오랫동안 지속된 내전의 영향은 서민들의 삶을 움츠리게 했고, 사회적으로는 안정되지 못한 상황입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듣고, 좋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아픔가운데 주시는 은혜가 더욱 큰 것 같습니다. 이제 곧 회복되어 은혜를 선포하며 예배할 우크라
그 동안 평안하셨는지요?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리며 축복합니다!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와 2기 사역을 시작한지도 벌써 3개월이 지났습니다. 지금 한국은 완연한 봄 날씨로 그와 관련된 봄 꽃 소식을 연일 전해 듣고 있습니다. 반면에 미얀마는 건기 막바지로 매우 덥고 전기와 물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미얀마는 4월 11일에 새해가 시작되면서 신년 연휴(11~20일)와 물 축제 준비가 한창입니다. 이 때 엄청난 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물 부족상황이 더 심각해지기도 합니다. 이 시기에 ㅅㄱ사 또는 ㅅㄱ단체는 믿는 사람들을 세속문화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여러 가지 행사를 준비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랑빛 ㄱㅎ성도들과 에스더 공동체아이들도 수련회에 참석합니다. 수련회가 안전하게 진행되고 참석한 모든 자들이 ㅅㄹ충만하고 믿음이 견고해 질 수 있도록 중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1. 에스더 청소년 기*독교 공동체 1년 안식년을 보내고 오니 아이들은 주님의 은혜와 두 분 ㅅㄱ사님의 세심한 돌봄으로 인해 많이 성숙해져 있었습니다. 제가 하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3월에는 슬픈 일과 기쁜 일이 있었습니다. 먼저 슬픈 일은 에스더 공동체
6월 8일 선교사들을 디브리핑하고 상담하고자 네팔에 도착한 우리는 개인 상담을 시작으로 이튿날부터 3일간 오전엔 남자 집단 상담과 미술치료, 오후와 저녁엔 부부상담, 개인, 가족 상담을 진행했다. 많은 선교사들이 지진으로 인해 두려움과 무기력감, 탈진, 죄책감, 불면증 등으로 어려워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지진 후, 침대나 소파에만 누우면 흔들리는 느낌이 계속 있고 지진이 또 날 것 같은 두려움에 힘들어 했다. 어떤 분은 지진 후 50여 일간 밥을 전혀 먹지 못해 치료차 한국으로 들어간 분도 있었다. 하지만 이 선교사를 더 힘들게 한 것은 “지금 한국에 오면 어떻게 하냐? 그곳에 있어야 되는 거 아니냐?”라는 한국교회의 반응이어서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말에 매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선교사들은 모두 구호사업에 나서서 한국에서 보내온 돈으로 물품을 이곳저곳에서 사서 주민들에게 나누어주고 보살피는 일을 하느라 너무나 바빴다. 이들의 사역지는 대부분 차로 험한 길을 여러 시간 동안 가서 또 며칠 동안 산을 넘고 또 넘어서 가야만 되는 곳에 있다. 그래서 한국 선교사들은 많이 지쳐 있었고 탈진해 있었다. 이들을 위해 누군가 들어주고 쉬어야
2015년 4월 27일 아침 네팔 선교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지금 여진이 계속 오고 있어요! 지난 3일 동안 집안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공원에서 유숙했어요. 사모님들이 무서워하고, 지진 트라우마로 힘들어 하고 있어요. 국제단체에서는 어제부터 멤버케어 팀이 들어오고 있는 것 같아요. 저희들에게는 위로가 필요하고 특별히 사모들에게는 청심환도 많이 필요해요.” 청심환? 그것은 정말 위급할 때 사용하는 구급약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런 약이 필요한 상태라고? 그리고 그들에게 위로가 필요하다고? 나의 상식으로는 지진 가운데 있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먹을 것과 입을 것 그리고 지낼 곳이 필요할 것 같았는데, 선교사님들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라는 것이었다. 바로 항공권을 구입하였다. 5월 12일 오후 네팔 카투만두에 도착 후 마중 나올 선교사님을 기다리는 순간에 제2차 강진이 발생하였다. 지진을 처음 경험한 나는 지진으로 인해 우왕좌왕 하는 주변인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네팔 사람들은 흔들리는 공항 청사 앞에 서 있는 나에게 나무가 흔들리고, 건물이 흔들리는 것을 가리키면서 속히 대피하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선교사들을 위해 가져 온 반찬과 의약품, 그리고 한국위기관리재단의
지난 고난 주간에는 꽃샘추위에 조금은 쌀쌀한 새벽공기를 맞으며 새벽기도회에 다녔습니다. 부활주일이 지나니 벚꽃이 피어나면서 어느새 만개해 가고 있습니다. 고난 뒤에 있는 영광이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생각됩니다. 고난과 영광, 십자가와 부활이 우리 삶 속에서 동전의 양면처럼 매일 실현되어가고 있습니다. 매일 매일 주님의 은혜를 사모합니다. 호카야마 청년의 침례식 본래는 하카타교회에서 부활주일 예배를 드릴 예정이었지만, 호카야마 형제의 바람으로 와지로교회에서 부활주일 예배를 드리게 됐습니다. 이날 호카야마 형제의 침례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와지로교회에 출석한지 일 년정도 됐는데 이날 예수님을 주인과 구주로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이 됐습니다. 침례에 앞서 신앙간증을 했습니다. 뉴질랜드 유학시절 함께 공부하던 한국인 친구가 자신을 교회로 데리고 갔는데 교회의 한국인들이 따뜻하게 대해주고 자신을 잘 챙겨줬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학 중에 계속 교회를 다니다가 일본으로 귀국하게 됐는데 그 후 기독교 신앙에 관심을 갖게 됐고 마침 집 근처에 있는 와지로교회에 찾아오게 됐다는 것입니다. 일 년간 담임인 죠마에 목사님과 성경공부를 하면서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결심을 한 것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