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도 아니고 나만도 아니다. 까닭 없는 핀잔, 성급한 충돌 그러다가 후회하는 일들, 더러는 드물게, 더러는 너무 자주 겪는 그러한 일들이 많이 있다.살아 있는 사람이니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 또는 감정의 동물이니 당연하지 않느냐는 등 변명해 버리는 것으로 끝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심지어 그것을 하나의 후회로 넘겨 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한 일이겠는가?그러나 그것이 어디 그런가? 핀잔이나 충돌은 예리한 감정의 자극적인 표현으로써, 이에 접한 사람은 심한 상처를 입는다. 감정의 불균형은 인격의 위험 신호다. 감정이 필요 이상으로 예민해지면 판단이 흐려진다. 그런 가운데서는 인간관계의 우정이 오해가 되고 선배의 충고가 지겨워진다. 주위가 살벌해지고 오던 사람도 돌아가고 아는 사람도 멀어진다. 그런 때의 접촉은 충돌이며 충돌은 인격을 깎아 버린다. 체면을 사정없이 할퀴어 버린다. 경제적인 적신호에 앞서 인격적인 적신호가 오고, 인격적인 적신호에 앞서 감정적인 불균형이 온다. 이것은 알고 만 지나갈 문제가 아니다. 해결하고 지나가야 할 일이다. 또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감정의 불균형은 여러 가지 피로와 스트레스에서 올 수 있다. 그것은 일종의 투정이
2013년 한해를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오게 하심을 감사드리며 목회를 하면서 목회자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늘 섬기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있기에 목회를 계획을 세우고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와 절기가 되면 긴장을 하게 되고 절기에 맞춰 기도하면서 많은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하게 됩니다. 목회자가 기도하며 영적으로도 준비해야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송구영신예배는 교회의 절기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초기 기독교가 들어올 시기부터 지켜오던 전통적인 예배의 신앙 유산 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1887년 12월 31일에 언더우드 선교사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사역하던 서울의 정동교회(새문안교회)와 베델교회(정동감리교회)가 연합하여 우리나라에서 드린 최초의 송구영신예배였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언약예배”라고 했고 또한 “언약 갱신 예배”라고 하다가 “야성회”라 불려지기도 했습니다. 지나간 1년을 되돌아다 보며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새로운 해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세우는 순서가 있었다고 전해 내려옵니다. 이 예배가 드려지던 역사를 볼 때 역사상 처음으로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던 그 현장은 은혜와 감격이 충만한 예배였을 것입니다. 그 예배는 오늘까지 약 130여년 동안
일본의 유명한 마쓰시타 전기 주식회사를 창립한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했지만 쌍갈래 전구 소켓을 발명해서 성공한 인물이다. 그가 처음으로 쌍갈래 전구소켓을 특허 냈을 때 주문이 쇄도해 종업원들은 밤샘 작업을 하며 일해야 했다. 하루는 생산에 쫓겨 마쓰시타가 거래처에 가야 할 일이 생겨 종업원들에게 간곡히 부탁을 했다. “내일 납품해야 할 물량은 오늘 밤을 새워서라도 끝내야 합니다. 여러분들 조금만 참고 이해 주십시오.” 그러나 마쓰시타가 총총히 사라지자 생산장의 기계 소리가 하나 둘씩 멈추기 시작했다. “사장님도 안 계신데 천천히 합시다. 일은 내일 해도 늦지 않는다구.” 모두들 사장의 간곡한 부탁은 언제였느냐는 듯 밖으로 나가 야구를 하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남아서 기계를 돌리던 한 종업원도 일을 단념하고 밖으로 나가려 할 때였다. 거래처에 나갔던 마쓰시타가 숨을 헐떡이며 공장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이내 안색이 변했다. “다들 어디 간 거야? 일은 다 끝났나?” 종업원은 재수 없이 걸렸다는 마음으로 시큰둥하게 사실을 말씀드렸다. “내가 그렇게 부탁했는데 내일 일을 하겠다고? 게다가 너마저 나가서 놀겠다는 거야?” 순간 종업원은
“엄마, 보고 싶어요. 그러나 미안해하지 마세요.그때는 몰랐어요. 왜 어머니는 없어지고 나만 거리에 남았는지.그때는 미처 몰랐어요. 왜 인천 고아원에서 혼자 별을 바라봐야 했는지.정말 몰랐어요 그때는. 왜 비행기를 타고 밤낮이 바뀐 세상에 왔는지.하지만 알게 됐죠. 내 눈빛이 양부모의 것과 다르다는 것을.살아가면서 알게 됐죠. 다른 아이들보다 머리속이 복잡했던 이유를.아이를 차디찬 길거리에 버린 어머니. 버려진 아이를 주체 못해 나라 밖으로 보낸 조국.그런 아이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어머니의 나라.허나 알다가도 모를 일, 어찌 된 조화일까요.내 입에서 날린 화살은, 머리에서 쏘아 댄 독한 화살은. 어머니의 나라에 꽂히기도 전에 꽃이 돼 떨어지고 말았습니다.어머니, 자식을 버렸다고 부끄러워 마세요.저도 딸 둘을 둔 어머니가 된 지금 미움은 사라지고 희망의 꽃만 활짝 피어 있습니다.여섯 살 때 고국을 떠났던 순이. 아무것도 모르고 비행기에 올랐던 순이.독화살을 날리면서 그리움에 사무치던 순이가 27년 만에 사회복지사가 되어 돌아왔어요.어머니, 꼭 뵙고 싶습니다”이 편지에서 입양아는 혼자 별을 바라봐야 했는지(외로움)라고 하고, 자신도 부모님을 충분히 원망했
영국에서는 넬슨제독의 기념탑보다 셰익스피어의 고가(古家)를 더 사랑한다. 독일에는 괴테와 뮐러의 동상 그리고 베토벤의 데스마스크가 신격화되었다. 파리의 중심은 루브르 박물관이며, 곳곳에 문화의 유적들이 있다.우리의 정서와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정치적인 애국자나 영웅들이다. 한 줄의 시를 쓰는 것보다 한 뼘의 땅을 지키기 위해 피 흘리는 투쟁을 한다. 한 가락의 노래를 창작하는 것보다 하루를 우환없이 지내야만 하는 것이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이다.시가(詩歌)에서 나타난 “임”은 애인이 아니라, “임금”이며 “나라”다. 연가(戀歌)는 천한 기생이나 읊는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 백번 고쳐 죽어....”의 그 애국 충정이 더 절박했고 귀중한 것으로 믿어왔다. 삶의 대한 충정보다는 죽음의 대한 찬가를 부르며 살아왔다. 같은 충신이라 할지라도 “생육신”보다는 “사육신” 쪽이 더 훌륭한 것으로 여기며 그렇게 믿어왔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산 사람은 모두가 죄인이며, 죽은 자 만이 영웅이라는 편견도 있다.이준 열사가 만약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병사하지 않고 살아 돌아 왔더라면 아무도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인의 애국은
2013년도 카렌다가 이제 달랑 한 장을 남기고 있다. 사상가 V.영은 “자연은 회전할 때 아름답고 인간은 전진할 때 아름답다”고 했고. 단테는 “자연은 신의 예술”. 임마누엘 칸트는 “우주의 질서는 신의 존재를 입증한다”고 했다. 창조주의 절대 주권적 섭리 앞에 유한한 인간이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싶지만 낙엽이 지고 깊어지는 겨울의 문턱에 서니 자꾸 어깨가 움츠러든다. 텔레비전 매체에서는 올 겨울은 무척 추울 것이라고 하는 기상청 예보를 들고 겨울 상품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는 홈쇼핑 방송이 한창이다. 아직 난방기를 가동하지 않는 내 서재에 들어와 컴퓨터를 여는 오늘 아침 따라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잔뜩 찌푸린 하늘에서는 금방이라도 큰 눈이라도 내릴 것 같은 기세이다. 수석채집이 취미이신 교우 한분이 멀리 가서 구해온 것이라면서 까맣게 생긴 돌덩이 하나를 받침대와 함께 가져오셨다. 너무 너무 아름다운 것이어서 담임목사인 나에게 선물하고 싶어서 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그저 조금 특이한 돌덩이로 보일 뿐인데 그분은 연신 감탄을 하면서 너무 너무 아름답지 않느냐는 것이다. 나는 수석에는 문외한이라서 별 느낌이 오지 않는다고 했더니 그분은 더욱 열심히
통랑한 햇볕 때문인지, 점점 끝자락을 보여 가는 달력 때문인지 늦가을의 햇볕은 많은 표정을 담고 있다.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벗이 있고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으나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벗이 있다. 이 두 부류의 벗에서 우정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사랑만큼이나 자주 쓰이는 말이 친구이다. 사실은 아는 사람에 불과한데 단지 오랜 세월이 붙어서 친구라는 말을 할 때도 많은데, 별것 아닌 차이로 보이지만 어떤 사건이 계기가 돼서 중대한 진실을 깨닫고 나면 금방 쓸쓸해지곤 한다. 親舊란 말의 사전적 정의는 ‘오래도록 친하게 사귀어 온 사람’으로 사실은 친구인줄 알았는데 그냥 오래 알고 지낸 사람에 불과하다는 불편한 진실을 깨달을 때가 있다. 조선 정조 시대에 선비 박제가(朴齊家)는 우정이 결코 오랜 세월에 있다고 하지 않았다. 장맛과 친구는 오래 묵을수록 좋다는 속담이 꼭 옳지만은 않다는 거다. 그가 생각했던 진정한 우정이란 어떤 모습이었을까? 벗을 사귐에 마음이 맞지 않으면 무슨 말을 나눠도 말을 꺼내지 않은 것과 똑같은 법이다. 벗을 사귐에 간격이 없다면 비록 서로가 묵묵히 있다하여도 좋은 것이다. 옛말에 머리가 새도
남자들이라면 한번쯤은 관심을 갖고 향수에 젖게 되는 오토바이의 명품 ‘할리 데이비슨’.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할리 데이비슨의 경우 단순히 기능적인 매력 말고도 가히 ‘오토바이의 신화’ 라고 부를 만큼 절대 다수의 매니아를 가졌다는 사실이다. 그뿐만 아니다. 실제 할리 데이비슨 동호인의 5%가 할리 데이비슨의 로고를 문신처럼 자기 몸에 새기고 다닌다는 보고가 있다. 아마도 고객이 자신의 몸에 문신까지 할 정도의 충성을 보이는 브랜드는 할리 데이비슨 밖에 없을 것이다.그러면 단순히 제품이 아닌 마음을 사게 만든 할리 데이비슨의 마케팅 비밀은 어디에 있었을까? 1980년대 초 할리 데이비슨은 사양길에 접어든 회사였다. 혼다, 스즈키 등 일제 오토바이에게 밀려나 실상 거의 빈사 상태가 되었다.과거의 명성과 인기를 뒤로하고 퇴역한 장성처럼 정리해고가 회사 분위기 전체를 암울하게 만들었던 어느 날, 이 회사의 경영을 새로운 CEO가 맡으면서부터 회사의 면모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파격적인 변신이었다.우리나라의 폭주족처럼 미국에도 팔에 문신을 하고 요란한 가죽옷을 입고 수십 수백 명이 몰려다니는 오토바이 클럽이 있다.이 오토바이 클럽이 모이는 날, 할리 데이비
침례교회 목회자여! 성도여! 당신에겐 어떤 소망이 있습니까? 주님의 재림이 임박한 때, 마지막 부흥을 꿈꾸며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이어지는 기도회에 당신을 초대합니다.마지막 사명자로, 부흥을 꿈꾸며 10시간 기도회를 허락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도합시다.하나님께서는 기도의 사람, 당신을 부르십니다.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요 14:14)믿음으로 당신의 일상을 내려놓고 10시간 기도의 자리로 오십시오.이 부르심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인도하시는 분도 하나님 이십니다.기도의 능선을 넘어 부흥을 함께 보고 부흥을 목놓아 외치고, 부흥을 꿈꾸고 우리 시대에 부흥을 함께 목도합시다.2014년을 부흥의 원년으로 만듭시다. 부흥을 꿈꾸며 기도하는 자리에 기도하시는 목사님, 사모님, 성도님을 초대합니다.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사 56:7) 일시 : 2013년 12월 16일(월) 오전 10시~오후 8시장소 : 침례신학대학교주최 : 기독교한국침례회 부흥사회협력 : 기독교한국침례회총회(전도부
한 가수의 인터뷰 때 사회자가 “솔직히 말해서” 그러자 ‘솔직히 말해서, 그런 말 쓰지 말자. 그럼 지금까지 가식이나 거짓말을 했단 말이냐?’고 반문하는 것을 보았다. 말이면 말이지 솔직히 말할 말이 따로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말하는 그 자체가 이미 솔직한 것을 전제하고 있는데 구분해서 말하면 대화의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화 속에서 “솔직히 말해서”라는 말을 너무 자주 쓴다. 그냥 하는 말과 솔직히 하는 말을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달리 사용한다는 것이다. 물론 관계의 친밀도에 따라 감정과 언어의 선호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냥 하는 말과 솔직히 하는 말의 분리와 간격은 언어신뢰성에 의혹이 된다. 안정된 신용사회 추구는 대부분 경제와 금융의 안정을 말한다. 하지만 더 중대하게 지켜져야 할 신용은 언어의 신용이다. 언어의 신용도가 불안정해져 갈수록 말에 수식어는 남발된다. “진짜, 사실은, 솔직히, 까놓고 말하면”하고 강조해야 진정성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 언어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장치를 마련하게 된다. 도대체 말을 믿을 수 없고, 말 그대로만 믿을 수 없어 의미를 다시 재해석해야 한다. 각서도 쓰고 말을 녹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