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장로교단 총회(합동) 전 총무 황 목사의 소위‘칼부림 사건’이 교계와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면서, “교회(단) 정치,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줬다.황규철 목사는 지난 20여 년 동안 수려한 언변과 뛰어난 정치력을 바탕으로 교단과 교계 정치판에 영향력을 끼쳐온 인물이다. 황 목사는 장로교단 총회(합동) 총무 자리까지 올랐지만 합동 97차 총회 때 가스총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그는 최근에는 노회에서 퇴출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칼부림 사건 당시“석구야 우리 죽자!”라는 자조 섞인 말이 교계와 세상의 조롱거리로 회자되면서 이제 목회자로서의 삶도 순탄해 보이지 않고 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목회자들이 교단정치 때문에 서로 원수가 되고 폭력 및 칼부림까지 일어나는 일은 비단 장로교단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침례교회도 이 사건을 타산지석으로 삼지 않을 경우, 똑같은 일이 반복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교회마다 교단마다 “내 말이법이다”“내 편 네 편”가르기의 이면에는 돈과 명예 등에 푹 빠진 인간의 욕심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그래서 지금, 현재 진행 상황으로 벌어지고 있는 침례교단과 기관, 그리고 교회의
최근 우리교단과 개교회가 처한 여러 가지 직면한 문제 가운데에서 재정적인 문제가 교단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 여기에 총회와 기관, 그리고 개교회와의 소통이나 협력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답답함을 느낀다. 총회와 개교회, 기관과 개교회간 주요사업과 정책을 놓고 총회 대의원들끼리 의견대립과 충돌로 인해 교단이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다. ‘주님께서원하는것이무엇인가?’‘, 침례교회가 ‘소금과빛’으로 세상에 바로 세워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순위로 두고 얼마나 제대로 협동사업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정말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우리교단 및 총회 산하 주요 기관들은 현재 재정적인 어려움과 크고 작은 소송 사건 등으로 조용한 날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다보니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것도 자칫 협력이 아닌 분열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사업총회나 교단의 주요 정책을 집행하고자 할 때 협력이 아닌 내말이 더 옳고 상대는 무조건 틀리다며 비판의 칼날을 무참히 들이대고 있다. 이러한 영향을 받아서인지 개교회 목회자들 및 총회나 기관의 실무자들은 협력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걱정과 두려움이 앞선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돌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교단에 쌓인 산적한
지난 제105차 강릉 정기총회는 우리 교단으로서 수많은 의미를 담은 결의와 결정들이 이뤄졌다.무엇보다 3,150교회에서 3,248교회로 꾸준히 교단 산하 교회가 성장하고 있으며 182명의 목회자 인준자와 176명의 전도사 인준 1개 지방회(화평)의 가인준으로 조금씩 양적 성장을 이루고 있다. 또한 교단의 역사적 의미를 재평가하고 일제 강점기 한국교회를 신사참배로 핍박했던 부끄러운 역사 가운데 본 교단의 전신인 동아기독교만은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당당히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교단이 해체되고 교회가 몰수되는 치욕의 역사를 교단 기념일로 제정했다.이는 교단의 역사적 정통성을 바로 세우는 첫 시발점이자, 앞으로 한국교회 역사에서도 새롭게 평가될 부분이 될 것이다. 새로이 선출된 총회 의장단도 총회 규약과 정신을 지키겠다는 약속은 앞으로 이번 회기를 지나면서 지켜봐야 할 우리의 몫이 됐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게는 한국교회의 위기와 대사회적 목소리의 미비 속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시되고 있다.교단 산하 교회의 70%이상의 미자립교회에 대한 교단의 대책은 이번에도 어떠한 논의가 결의조차 없이 지나갔다. 지난 회기 활발하게 활동했던 총회 부흥협력단도
지난 제105차 정기총회에서 새 의장단을 선출하고 우리교단에 산적한 주요 안건 등을 처리했다. 그러나 지난 정기총회에서도 의장단 선출 열기에 비해 회무처리 때 보인 대의원들의 참여는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 대목이다.매년 정기총회 때마다 선거에만 관심을 두어 선거만 끝나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대의원들을 보며 우리교단의 암울한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지금 우리교단의 현실은 안타깝게도 오류동 총회 빌딩 매각 결의 논란 지속, 학교법인 한국침례신학원 문제, 총회 빌딩 건축헌금 운동, 개교회 협동비 확충 방안, 침례병원 살리기 문제 등이 얽히고설켜 있다.현재 우리교단은‘침례교회의 계절’을 맞이하기 위한 협력사역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를 위해 총회 규약을 준수하면서 총회와 교회, 기관과 교회, 총회와 기관, 교회와 교회 간 상호협력을 위한 관심과 지원이 그 어느 때 보다 절실한 시점에 서 있다. 따라서 총회와 총회 임원회, 지방회, 개교회가 우리교단의 정서와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 침례교회의 모든 대의원들과 공감대를 공유하기를 간절하게 기대하면서 교단발전을 위해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먼저, 총회에서 통과한 오류동 빌딩
제105차 침례교 정기총회가 폐회했다. 이제 총회의 결의를 집행하고 미비된 내용들을 임원회가 결정해서 처리해 나갈 것이다. 성총회(聖總會)를 추구하며 성공적인 총회를 위해 많은 이들이 노력했다. 강릉지역 침례교회 목회자를 비롯해, 대의원들을 섬겼던 봉사자들, 음향, 영상 스텝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함께 했던 수많은 이들이 교단의 축제인 총회의 성공적인 진행에 물심양면 애를 썼다. 이들이 진정 이번 총회에 박수를 받아야 할 이들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총회 일정에 무리가 없도록 협조한 이들이 우리 총회의 주인이다.총회 개회부터 제105차 총회장에게 의사봉을 전달한 의장에게도 수고했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다. 회순 때마다 오고가는 고성과 공격적인 발언에 대해서도 의장으로서 공적인 위치에서 최대한 감정을 자제하고 공의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 점을 인정하고 싶다.아쉬운 점이 있다면 상정안건 처리를 둘러싸고 대의원들의 참조 발언과 의사진행 발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총회에 상정된 안건대로 처리하지 않았던 점을 둘 수 있다. 사안의 중대성과 문제에 대해 대의원들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면 적어도 상정안건을 올렸을 때, 보다 심사숙고해서 올려야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바로
2015년 제105차 회기를 이끌어갈 지도자를 선출하는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이번 3,100여 교회를 대표하는 지도자에 대해서는 어떠한 덕목보다 으뜸이 되는 덕목이 있다면 바로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교단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이가 바로 세워질 수 있길 바란다. 그것은 작금의 교단의 여러 혼란과 분쟁들을 지혜롭게 마무리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라는 점에서 이번 지도자 선출에 무엇보다 관심을 가지고 신경을 쓰게 된다. 이를 위해 의장단 후보자들은 보다 공정하고 깨끗한 선거 문화 속에서 열심을 다해 선거 운동을 하고 있다.지난 제104차 총회부터 선거공영제가 도입된 이후 2년차를 맞이하고 있다. 과거 지역 연합회나 지방회 월례회, 동기 모임, 체육대회 등 교단의 크고 작은 일에 후보자들이 직접 찾아가 지지를 호소했던 방식에서 공개 토론회와 동영상 홍보, 문자 메시지를 통한 후보자 홍보로 바뀌면서 우리의 선거 풍토도 적잖은 변화가 일어났다. 물론 후보자가 직접 다니는 선거운동에서 후보자를 찾아야 하는 선거운동방식은 교단의 깨끗한 선거풍토를 마련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그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 사실
9월 정기총회가 다가오면 총회를 비롯한, 주요 기관 목회자 및 이사, 이해 당사자와 의장단 후보자까지 첨예한 긴장관계를 가지게 된다. 유독 지난 몇 년간 총회와 침례교 주요 기관과의 갈등은 여전히 풀지 않는 숙제로 나타나고 있다.이번 제104차 회기에도 국내선교회와 침례신학대학교에 대한 조사위 구성과 발표, 이로 인한 반박과 불복, 갈등은 우리가 지난 몇 년간 지켜본 정기총회의 얼룩진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교단의 발전과 미래를 위해 부득이한 결의와 결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긴 쉽지 않다. 하지만 그 결의와 결정이 특정한 이들을 위한 또한 어떠한 보이지 않는 세력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마땅히 제고해야 할 사안이 아닐 수 없다.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이들을 조사했고 그에 대한 대의원들의 판단을 존중했으며 무엇보다 의장단 선거를 통해 최종 결정을 내릴 적도 있다. 이것이 먼 미래 교단을 바라보는 후배들에게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기억되고 남게 될지 생각해 보게 된다. 그 논쟁의 중심에 또한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과 결정으로 인해 교단의 역사와 방향이 바뀐다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발언 하나, 우리의 결정 하나가 더욱 신중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이번 제104차회기도
오늘날에 그리스도인들의 대하여 비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부르고 인정하고 있는가?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불러주는 것이 좋겠는가? 사람들은 우리를 부를 때 교회에 다닌다 하여 “교인”이라 부르기도 하고, 기독교 신앙을 가졌다 하여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때로는 기독교의 신앙을 업신여기기 위하여 “예수쟁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그리고 인터넷에서는 기독교인들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없는 사람들이고, 사회적인 문제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아집이 심한 집단이라는 의미로 “개독” 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말을 볼 때면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그들의 눈에 비쳐진 기독교가 이토록 부정적이었나를 생각해 보면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기독교인답게 살지 못했으면 이런 표현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한다. 우리 자신들은 어떤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하고 있는가? 세상 사람들이 어떤 호칭으로 우리를 부르든, 그 안에는 그 이름이 담긴 의미가 있을 것이다. “교인”이라고 부를 때는 단순히 교회만 다닌다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교회 다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윤리적 기준을 갖고
한국의 기독교신학과 교회의 세속화로 인해 영적 침체가 가속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목회자를 양성하고 있는 신학교에서 조차 종교혼합주의가 팽창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경을 필요한 부분만 믿고 나머지는 믿지 않는 위험한 신학 사상이 지배되고 있다. 신앙고백과 판단의 근거는 무엇인가? 기독교는 계시된 말씀을 통해 모든 가치를 부여하며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고자 애쓴다. 개혁주의 신학과 성경적 신학을 지향하는 교회들은 이성과 경험에 의한 판단의 위험성을 인식하며 계시된 말씀을 통한 끊임없는 확인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이 로마에서 있었던 때의 일이다. 세계의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로마로 쏠려있었다. 같은 날 서울에서는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모임에서 한국교회의 원로 목사라는 몇 사람의 회개 발표가 있었다. 그 때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 곳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 두 사건을 보면 한국교회의 혼합주의 경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세속화되어 타락한 기독교의 특색은 시류의 쉽게 휩쓸려 반응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세계를 종교적으로 이념화한 채 세상의 분위기와 눈길을 인식하며 쉽사리 혼합주의에 편승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서 자신의
앞으로 20여일 뒤에는 교단의 새로운 지도자가 탄생한다. 현재까지 큰 변수가 없는 한 총회장 예비 후보로 등록한 이들이 대의원들의 현명한 판단이 이뤄질 것이다. 물론 일부 대의원 중에서는 ‘교단의 지도자가 이렇게 없냐?’ ‘뭔가 참신한 이가 출마하면 안 되나?’ 등의 의견을 내놓고 있지만 현재 총회 규약 상 제1부총회장을 지낸 이가 총회장 후보로 나설 수 있다는 점이 한계로 나타나는 상황이다. 교단 규약을 떠나서 3,100여 교회를 대표하는 총회 지도자는 무엇보다 교단 전체를 생각하고 교단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며 교단에 유익이 될 수 있는 정책과 사업, 교단의 문제를 객관적어로 판단하고 무엇보다 기도하는 지도자를 기대한다.그동안 우리는 수많은 교단 지도자들을 통해서 여러 공약들을 듣고 이를 지지하며 그렇게 교단을 이끌어 갈 것이라고 예상하고 기대했다. 하지만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협력보다는 갈등과 분쟁을 조장하고 내실을 기하는 총회 사업보다는 이벤트에 치중하며 자기만족을 주는 총회 업적을 치켜세우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무엇보다 협력 사역으로 상생해야 하는 총회와 기관들은 크고 작은 사안에 대해 이견차를 보이며 협력보다는 서로 간 반목하고 한쪽에서는 총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