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여름 중앙극장 앞에서 만나기로 했지 여학생들이 지나갔어 그래서 나도 지나쳤지 파란색 베레모는 눈에 잘 띄어 비스듬히 눌러쓰고 오렌지색 목 폴라에 아버지의 감색 오버코트를 걸쳤지 멋이란 멋은 다 부린 거야 명동성당 쪽으로 걸음을 옮겼어 거리를 헤매다 다시 돌아왔어 표를 끊고 영화관으로 들어갔지 어둠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어 눈물이 흘러내렸어 팝콘을 씹는데 은밀한 것이 문제였지 눈물이 팝콘과 함께 씹혀 약속을 지워나갔어
온다 내린다 쏟아진다 젖는다 넘친다 무너진다 때론 빠르게 때론 늦게 빠른 날엔 한숨 늦은 날엔 고통 깊어 가는 농부의 그늘 야속하다 고맙다 감사하다.
보은에 산 지 어언 7년 속리산 둘레길 걸을 때 행복하고 벚꽃핀 보청천 강가 걸을 때 기쁘다네 천년 넘은 상당산성 육백 년 정이품 소나무 있으니 역사의 숨결 느낄 수 있어 좋아요 가을엔 대추나무마다 붉은 열매 열리고 사과나무 가지마다 풍성한 열매 익어가는데 멀리서 날아온 철새들 쉬어가는 보은이 아름다워라 대청댐 호숫가에 낚시꾼들 안식하며 문장대 바위산 오르며 등산객들 휴식하고 비둘기와 참새들 전깃줄에 앉아 평안하네 농부가 되어 사과농장에서 땀 흘리며 일하다가 쉴 때 살기 좋은 보은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와 찬송드린다네.
내 죽은 후에는 큰 은혜 노래한 시인으로 기억되고 싶은데 남길 만한 시 한 편이 없다 평생을 크나큰 사랑받으며 가인으로 살고서도 그 은혜 그려낸 시 한 편이 없다니… 이는 필경, 받은 사랑이 너무 커 큰 은혜 그려낼 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켰다 껐다 왜 이리 힘든가! 온 몸에 육수 흐르는 밤 선풍기도 없었는데 그저 잘 살았는데 어릴적 어찌 살았나! 오늘밤 열대야 에어컨 켜고 자면 냉방병! 이 밤 어찌 해야 할까요?
의복과 화장으로 외모가 가꾸어지고 돈과 권력으로 위상이 세워지는 세상에서 자존과 명예를 찾는 인생 그 안에서 늘 목마르고 방황한다 나의 근원이 나의 현재가 나의 미래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세상에서 만들어진 빛 덮어버리고 하늘로부터 내려온 강력한 빛 가운데 나타난 세상을 비추는 빛에 생명이 있다 그 빛 예수 그리스도 그 안에서 내가 창조되었고 그 안에서 내가 가는 지금의 길 있으며 그 안에서 나의 미래를 보았다 지금은 비록 철없이 사는 나이지만 하나님 아들로서 나타날 장래에는 예수 그리스도 그와 같을 약속 있다 예수 그리스도 나의 자존 일깨우고 내 인생 모습 되어 거듭나게 하며 나의 미래 영원한 하나님 아들 온전한 모습으로 일렁인다 나의 자존 예수 그리스도!
봄비가 내리는 날 송강그린공원을 걸었다 앙상했던 가지마다 녹색 순을 틔우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다 나무들은 어느 누가 거름을 주지 않아도 혼자서 비만 먹고 자라고 있었다 애타게 기다렸던 서러움의 비를 미친 듯이 먹으면서 자라고 있었다 나무에게도 봄비가 있듯 나에게도 봄비가 있다 내가 먹고 자라는 봄비는 눈물 오늘 송강그린공원에 봄비를 먹고 자라는 나무처럼 나도 자란다 나도 서러움의 봄비를 먹으며 공원을 돌고돌고 또 돌았다
아래로 아래로 물이 지나간다 돌짝 사이 바위 틈 어두운 굴속까지 흐르던 물은 내 손가락 사이로 빠지고 긴 세월 만큼 늘어난 이마의 주름 얼룩진 빰에는 어린 시절, 애써 분장했던 할머니 얼굴이 보인다 나이 들고 싶어 애쓰던 시절이 있었다 시간이 안 가 기다리던 명절, 그리고 크리스마스 축제의 밤 흐르는 강물처럼 지나간 시간 순간의 파편들이 날아오른다
이긴 것은 같은데 이긴 감은 없어요 침이 튀도록 쐈는데 내 혀만 뜨거워요 속 비도록 퍼부었는데 시원하질 않아요 물대포도 쐈는데 내가 더 젖었어요 그 가슴에 쐈는데 내 가슴이 더 아파요 진감으로 살려면 뭐하려고 이겨요 인생은 이긴 감이 아닌 진감으로 사는 거래요 그것이 모두를 이기게 하는 비결이래요 지는 것이 이기는 거란 말 그 말이 맞나 봐요.
서울 어떤 목사님 부부 아주 작은 집에서 살던 중 어느 날 교회에서 마련해 준 오십여 평의 널다란 아파트 이사를 하고는 잠 못 이루니 어둑한 지하 방 성도들 땜에 마음 편치가 않아 밤새 얼굴 맞대고는 이전 작은 집으로 돌아왔다 결국 교회 옆 터 위에 아담스런 집 목사 부부는 어쩔 줄 몰라 문패에 ‘송구의 집’ 들어가며 나오며 송구한 마음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