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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의 기독론 : 로고스 기독론(3)

신약성서에 나타난 신학 산책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근원적 존재성을 헬라어 ‘로고스’를 통해 표현했다. 요한은 그의 복음서 첫 구절(요 1:1)에 포함된 세 개의 소절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론적 영원성과 공동체성과 신성(신적인 존재성)을 선언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 이전부터 존재하시는 영원하신 존재이고, 하나님과 완전한 연합의 관계로 함께 계시는 존재이며, 또한 하나님과 동일한 존재성을 가진 신성의 존재이시다. 요한이 이 구절의 첫 단어인 “태초에”를 사용함에 있어서 창세기의 첫 구절을 염두에 둔 것은 분명하다. ‘태초’라는 단어는 우주론적인 국면에서는 물론 존재론적인 국면에서 만유와 존재의 시작과 관계된 중요한 단어이며 그래서 이 단어는 우주의 시작과 인간 존재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요한은 이 구절을 통해 만유의 시작과 기원에 대한 헬라 철학자들의 오래되고 끊임없는 질문에 대답한다.


요한은 이 구절을 통해 태초에 지혜가 있었다든지 혹은 토라가 있었다는 유대교적 인식을 교정한다. 천지가 존재하기 시작하던 때에 “그 로고스” 곧 하나님의 창조와 계시와 구원의 말씀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요한이 여기서 우주의 기원에 관한 어떤 이론을 전달하려는 것은 아니다.
요한에 따르면, 태초이전부터 존재하고 있는 그 로고스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로고스가 성육신하여 역사상의 한 인간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성을 염두에 두는 것이 필요하다(요 1:14, 17). 요한은 로고스 찬미가를 통해 우주론적 배경을 토대로 범우주적이며 초자연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론적이며 구원론적인 위치와 역할을 요약적으로 선언하고 있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근원적 존재성에 관한 감격스런 선언 후에,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역사에 있어서 그 로고스의 중심적인 역할에 관해 묘사한다(요 1:2~5). 그는 우선 하나님의 창조 역사에 있어서 로고스의 창조주로서의 역할을 제시한다(요 1:2~3). 요한은 로고스의 창조주로서의 역할을 제시하기 위해 그 로고스의 영원한 신적인 존재성을 다시 한 번 제시한다: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요 1:2). 이 구절은 첫 구절에 나오는 “태초에 그 로고스가 계셨다”(요 1:1a)와 “그 로고스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요 1:1b)를 결합한 형태로 제시되었다.

요한은 그 로고스가 태초 이전부터 존재하고 계셨으며 나아가 하나님과 함께 연합을 이루는 신비한 공동체적 존재로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결합해 다시 한 번 그 로고스의 영원한 존재성과 하나님과 연합된 신비한 공동체적 존재성을 나타낸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그 로고스로 표현된 예수 그리스도의 근원적 존재성을 하나님과의 관계성 속에서 찾으려는 요한의 신학적 의도를 반영한다.
요한은 왜 중복되게 보이는 이 구절을 말하는 것인지에 대하여 논란이 있어왔다. 어떤 학자는 요한복음 1:1-2이 ‘태초’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시작하고 끝나는 하나의 교차대구적 구조를 가진 찬송시의 가사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학자는 이 구절(1:2)의 목적을 앞 구절(1:1)과의 관계성 속에서 이해한다.
그에 따르면,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다”(요 1:1c)라는 소절이 헬라의 독자들에게 다신론의 견해로 받아들여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이 구절은 하나님과 그 말씀 사이의 독립적 관계를 강조한다고 생각한다.


한글번역에서 ‘그가’로 번역된 단어가 헬라어로는 “이 분”(그 로고스)이라는 지시대명사(this)가 사용됐다. 그것은 첫 구절에서 세 번이나 사용된 “그 로고스”의 반복을 피하면서도, 세 가지 국면의 존재성을 가진 로고스를 한 분의 존재로 나타내려는 요한의 삼위일체적인 신학적 의도에 따른 표현이다.
그 로고스는 다름 아닌 “이 분” 곧 요한복음서 전체를 통해 제시된 분으로서 성육신하신 로고스이면서 동시에 부활-승천하시어 아버지의 영광에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근원적 존재성을 강조하기 위한 반복된 표현이다.


요한은 반복적으로 보이는 이 구절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의 기원을 하나님을 중심으로 제시하려는 다른 구절들과 연결시킨다: “그(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요 17:5);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세상에 왔으며(요 8:42; 13:3; 16:27, 30; 17:8) 또한 하나님께로 돌아가셨다(요 17:24).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 사역의 실행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 이전부터 하나님 안에 존재하고 계셨으며 그것이 그의 존재의 본질과 위엄과 권위를 결정한다. 요한은 이와 같이 그의 복음서를 시작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론적 본질 곧 그는 태초이전부터 하나님과 연합된 신비로운 삼위일체의 존재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부각시키고 있다.


요한은 그 로고스가 하나님의 창조 역사의 실행자로서 이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지으신 창조주로 제시한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3). 이 구절에는 창조와 관련하여 ‘되다’(become)라는 동사가 세 번 나온다: “지은바 되었다,” “지음을 받은 것이,” 그리고 “지은바 되지 않았다.” 이 동사는 창조의 실행자로서 그 로고스의 행동을 나타내며 요한이 그것을 세 번 사용한 것은 로고스의 창조주로서의 권능의 행동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다.


요한은 로고스가 모든 창조된 존재의 기원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그(로고스)로 말미암아”와 “그(로고스)가 없이는”을 교대로 사용한다.  “지은 것이”라는 한글번역은 애매한 번역이다. 헬라어 원문을 직역하면 “지음을 받은 것이” 혹은 “존재하게 된 것이”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 헬라어 원문에서 “지음을 받은 것이”라는 어구가 요한복음 1:3에 이어지는 것인지 혹은 1:4의 시작에 해당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왜냐하면 헬라어 사본에서는 그 구절이 1:3과 1:4 사이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어구를 1:3에 포함되는 것으로 보는 견해와 1:4의 시작으로 보는 견해 사이에 논란이 있어왔다.


헬라어 동사의 사용에서 1:3에는 ‘되다’라는 동사가 세 번 사용된 반면, 1:4에는 ‘에이미’(영어의 be동사)가 두 번 사용된 것으로 보아, 그것을 1:3에 포함된 것으로 보는 것이 문장의 구성 면에서도 적절하다. 또한 신학적인 면에서 로고스의 역할이 1:3에는 창조 사역과 관계된 반면, 1:4에서는 사람들의 구원과 관계된 면에서도, 창조의 국면을 나타내는 그 어구가 1:3에 포함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게 여겨진다.


요한은 로고스가 인간의 구원을 위한 근원적인 생명인 것을 제시한다: “그(로고스)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5). 생명과 빛은 요한복음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된 단어들로서 그 구원에 포함된 풍부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단어들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존재를 표현하기 위할 뿐 아니라, 그를 통해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이며(요 8:12; 9:5; 12:36) 또 동시에 세상에 빛을 비추어주신다(요 1:5, 9). 예수 그리스도는 그 자신이 생명이며(요 11:25; 14:6) 또 동시에 죽은 자들에게 생명을 주신다(요 5:21). 두 단어들은 “생명의 빛”이라는 어구로 결합되어 사용되기도 한다(요 8:12). 빛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계시와 계몽의 행동을 가리키는 비유어인 반면, 생명은 그 빛의 활동의 결과인 구원을 나타내는 핵심적인 비유어이다.


생명과 빛은 구약의 창조 사상에서도 핵심적인 단어들이다.
하나님은 생명을 주시며(겔 37:1~10; 단 12:2) 또 빛과 지혜의 근원이시다(시 119:130). 구약에서 지혜는 생명의 근원이며(잠 8:35) 또 유대교 전승에서 토라(율법)는 빛의 근원이다(집회서 17:11). 빛과 생명은 헬레니즘 세계의 종교와 철학 사상에서도 풍부한 의미를 가진 단어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빛으로 표현한 공관복음서 전승들도 있다(막 4:21~22; 마 5:14; 눅 17:24). 예수 그리스도는 그 자신이 빛과 생명이시며 또 하나님은 그를 통해 세상에 빛과 생명을 주신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빛과 생명을 영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을 심판하는 역할을 한다(요 3:19~21; 9:39; 12:46).


김광수 교수 침신대 신학과 신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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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다시 사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벧전 1:3) 2024년 부활절을 맞이하여 3500침례교회와 목회 동역자. 성도들 위에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과 기쁨과 회복의 은총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가 죄인으로 영원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에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심으로 영원한 생명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이 부활의 기쁨과 감격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이 땅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직접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며 이제는 구원의 완성으로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몸소 가르치시고 보여주시기 위해 그의 아들을 보내주신 사실을 믿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 분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고 가르치셨으며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 고난 받는 자를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셨습니다. 그 회복을 통해 우리는 이 땅에 믿음의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그 공동체의 핵심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의 놀라운 소식입니다. 이 소식이 복음의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