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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살아야 교회가 산다 - 5

위기의 청년들을 향해

얼마 전 서울 명동의 유서 깊은 한 장로교회 청년부 특강을 갔다. 주제는 “기독교 세계관과 이성교제”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은 창조의 질서 안에서 우리에게 최고의 축복 통로로 결혼을 예비하셨다. 하나님은 처음에 아담만 먼저 창조하셨으나 독처하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갈비뼈 하나를 취해서 여자를 만드시고 이끌어 오시니 아담에게 이러한 감정이 일어났다.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 2:23). 이것이 바로 연애상대를 만났을 때 도파민, 옥시토신, 노르에피네프린 같은 호르몬이 활성화되는 현상이다.


인간에게 이성교제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짝을 만나서 “합하여 둘이 한 몸”(창 2:24)을 이루는 과정이다. 하나님은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우리가 가정을 세워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창 1:28)는 사명에 순종하게 하신다. 결혼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의 축복의 통로가 되는 가정과 가문을 세운다. 따라서 성경은 이성교제와 결혼이 구분된 것이 아니라 이어진 한 세트의 사건이며, 선택이 아니라 사명이라고 말씀하고 있다고 본다. 또한 이렇게 하나님의 창조 질서 안에서 세워진 가정은 그 자체가 하나님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 그 나라를 직접 맛보고 누릴 수 있는 최소 단위 공동체가 된다.


나는 청년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또 결혼 주례를 종종 설 때마다 이러한 메시지를 강조해 왔다. 성경적으로 이성교제와 결혼은 아담과 하와라는 반쪽이 서로 상대를 만나서 비로소 온전한 하나님의 작품으로 창조가 완성되는 과정이자 결정적 순간이라고 강조해 왔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 젊은 세대 사이에서 이성교제와 결혼에 대한 비성서적 가치관은 점차 가중되어 왔다.


많은 청년들에게 이성교제는 결혼과 무관한 일이고, 또 결혼은 선택이고, 심지어는 미친 짓이기까지 하다. 또 특별히 모든 것의 가치를 경제 원리로 환원시켜 평가하기를 길들여진 시대이기에, 경제적 이유를 들어서 결혼과 연애와 출산을 포기하는 세대들이 급증하고 있다. 이른바 삼포세대 이야기이다.

또 결혼 자체를 거부하거나 포기하는 비혼족(非婚族)들도 늘고 있다. 비혼족이란 동거는 하되 결혼은 거부하겠다는 가치관으로 무장하고 있는 청년들인데, 무섭게 그 수가 증가하고 있다. 물론 명분은 있다.


한국 고용정보원에 따르면 현재 18~35세의 청년층 실업률이 30.9%에 이른다. 취업포털사이트 ̔잡 코리아̓에 따르면 대학생과 청년직장인 10명중 9명은 “헬 조선”이라는 말에 공감한다고 나와 있다. 따라서 이 시대 많은 청춘들에게 하나님께서 창조의 질서 안에서 가정을 세워서 가족과 자녀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누리도록 한 달란트 농사의 사명을 거부하는 명분은 어느 정도 정당해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 안에서 누리는 축복의 가치를 어찌 경제적 차원으로만 평가할 수 있겠는가? 어느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 같은 중앙아시아 국가에서 결혼하는 나이는 보통 20대 초 중반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법적으로 성인이 만 19세부터 결혼 평균 나이까지 적어도 10년이 넘는 긴 시간의 공백이 있다. 2017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결혼 나이는 남자가 평균 32.6세, 여자가 30세였다. 우리나라 교회 청년들의 경우는 결혼하는 평균 나이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이보다 1~2년이 더 늦는다는 통계가 있다.


논점의 핵심은 물론 늦은 결혼이 아니다. 어떻게 우리는 기독 청년들을 이 음란한 세대에서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시 119:9) 하는 말씀을 잘 감당하도록 최선의 도움을 줄 수가 있을까? 다음 세대에 진정한 복음과 성경적 진리를 통한 축복이 다시 편만하게 회복되기를 바라는 이 땅의 모든 교회 성도들이 함께 이를 위해 애통해 하고 기도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