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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지 못한 아버지

백동편지-18

김태용 목사
(백동교회)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람을 쓰실 때마다 하시는 말씀이시다. 미국에서 생활을 시작할 때, 근처에 있는 공원에 나가 공원마다 있는 연못에서 낚시를 즐길 때였다. 옆에서 할아버지나 아버지와 함께 나온 어린아이들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른들은 옆에서 지렁이를 낚시 바늘에 끼워 주고 아이들은 쉴 사이 없이 던지고 조금 있다 다시 올리면 또 지렁이를 끼워 줬다. 건 두 세시간이 지나도록 똑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다 상관없는 내가 화가 났다. “이제 그만하자.” “낚시도 안되니까 다음에 다시 하자.” 말을 하고 그만 둘 법도 한데 아무런 말없이, 혹시라도 작은 물고기라도 잡히면 “잘했다.” 칭찬하며 함께 하는 할아버지, 아버지. 그것이 함께 하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한국에서 목사로 부름 받아 목회를 하면서 교회에서 살다시피 하고, ‘목사는 놀아도 교회서 놀아야 된다’는 생각으로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별로 생각이 안 날 정도였다.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여겼고, 또 분명 하나님의 은혜였지만, 그렇게 열심히 노력한 결과였는지 어려움도 많았지만 개척 3년 만에 작은 교회를 건축하는 복(?)도 누렸다.


새벽기도회를 드리고 잠시 집에 들려 아침을 먹고 바로 교회로 출근해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두 딸이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 얼굴도 제대로 볼 시간도 없이 교회에서 생활하다 저녁에 산기도 한다고 산에 올라가 자정이 넘어 교회에 와서 잠시 눈을 붙이고 새벽 기도회를 드리는 것이 일상적 일과였다. 아마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 대부분의 모습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그렇게만 생활하다 미국에 가서 아이들도 일찍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고 부모들 또한 갈 곳이 마땅치 않으니 집에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느 날인가 딸이 말을 했다. “아빠가 함께 집에 있으니 이상해.”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머리를 망치로 맞은듯했다. 가족이 가정에서 함께 해야 하는데 그것이 이상한 분위기가 되었다. 단지 목회자만이 아니라 한국 부모들 특히 아버지의 모습일 게다.


오래 전 우리에게 알려진 “아버지”라는 소설에서처럼, 돈만 벌어다 주면 되는 존재, 같이 있으면 불편하고, 함께하면 서먹한 아버지.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겠지만, 어머니와 아버지의 역할을 누구도 대신 해 줄 수 없지 않은가. 한국 교회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 교회를 위해 가정도, 개인의 삶도 포기하고 열심을 다한 결과가 한국 교회의 성장을 이뤘다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이면에 적지 않은 목회자 자녀들이 방황하고 그 결과 교회가 세상에서 손가락질을 받게 됐다는 것은 목회자인 아버지의 한 사람으로 마음이 아프다.


그나마 요사이 유행하는 ‘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이란 말을 적용하려고 애를 쓰는 것 같아 다행이다. 앞에서 미국 공원에서의 모습을 소개한 것은 가족과 함께 하는 아버지의 역할을 체험하고 보고 배우고 습득한 아이들과 가족이 든든할 수밖에 없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노력해 보려고 텐트를 하나 준비하고 가족을 데리고 공원에 나갔지만 이미 훌쩍 커버린 딸들에게는 불편할 뿐이었다.


몇 일 전에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큰딸의 생일을 맞이해 같이 한끼 식사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 멀리 진도에서 기차표를 예매하고 준비해 가겠다고 연락을 했다. 그런데 바쁘다고 시간을 낼 수 없다고 미안하다는 소리를 들으니 이제는 함께 해 주실 수 있는 시간이 지났음에 되려 미안한 마음에 코끝이 찡하다.


아주 오래 전 세상을 떠나셨지만 지금도 아버지가 생각난다. 배움도 적으시고 유산하나 물려주신 것 없는 아버지시지만, 막내를 데리고 산과 골짜기를 다니시며 가제를 잡고, 메뚜기를 잡고 한 여름 수박 한 덩이 사 들고 마을 밖에 있는 시냇가로 멱감으러 데리고 다니셨던 아버지. 그 아버지는 함께 해주신 아버지였다. 그러나 목회한다는 핑계로 아버지의 자리를 잃어버린 것이다.


이것이 적지 않은 목회자와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 마음속을 들여다 볼 때, 가정을 계획하신 하나님 말씀에 맞는 가족의 행복을 위한 부모의 마음보다 자신의 꿈을 이루려는 욕심이요 성취욕이 앞서 있는 것은 아닐까? 언제나 함께 하시겠다는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반문해 본다.


종려 주일과 고난 주간을 지내며, 집을 나간 자식과 함께 하고 싶으셔서 독생자를 이 땅으로 보내 주시고 십자가까지 지셨던 아버지의 마음을 묵상해 본다. 그렇게까지 라도 함께 해주신 주님을 기억하며, 할 수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함께 하는 아버지를 보여주고 싶다.


언제나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닮고 싶다.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 순간에라도 예수님을 부른 강도에게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말씀이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그 아버지의 마음으로 자녀들과 가족들에게 끝까지 함께 하는 아버지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 23:43)
주님, 함께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는 아버지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