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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자신을 주께

한명국 목사
예사랑교회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 6:13)


영국 스코틀랜드의 어느 작은 시골 장로교회의 목사님에 대한 일화를 읽은 일이 있다. 당시 공업화 현상으로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가는 작은 시골교회인지라, 목사님이 그곳에서 사역하는 동안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또 그 동리의 사람들은 까다로운 사람들로서, 저들의 마음은 차가웠고, 복음의 진리에 대해 도리어 매우 적대적이었다. 이러다 보니 그의 사역을 통해 아무런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장로들의 선동에 의해 목사님은 강제로 교회를 떠나게 될 판이었다. 하지만 이 시골교회를 고생하며 섬겨오던 목사님의 사역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사건이 있었다.


어느 주일 예배 중 헌금 쟁반이 돌려지고 있을 때 한 소년이 쟁반을 받아 바닥에 놓고는 일어나 그 위에 올라섰다. 이 이상하고 괴이한 일을 보고 책망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라고 하자. 그 소년은 “나는 어리지만 목사님의 삶과 사역에 깊은 감동을 받았어요. 오늘 나는 드릴 것이 없어 나 자신을 고스란히 하나님께 드리고 싶어 이렇게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사랑의 기적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기적의 씨앗이 되었다.


사도바울은 우리의 바라던 것 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고후8:5)라고 고린도 교회에게 말씀하셨는데, 이 쟁반 위에 올라서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그 소년이 1817년 아프리카 공화국으로 간 최초의 선교사 보비 모펫(Bobby Moffat)이었다. 그는 하나님께 크게 쓰임을 받아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구원시켰다. 이 모든 결실은 그 작은 교회에서 그리고 결실이 없어 인정을 못 받은 그 목사님의 인격과 충성스런 사역에서 시작되었다. 그 목사님의 신실한 인격과 삶에서 감동과 영향을 받은 한 소년의 열매로 아프리카의 수많은 영혼을 결실로 거둔 것이다. 이 사건은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슥4:10)라고 외친 스가랴 선지자를 떠올린다.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고후8:5)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20) 나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대가로 지불하신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에 예수께서 마지막으로 자기 몸을 인류의 속죄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을 바라볼 때,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호화주택을 산 다음에 친구들을 초대하여 집안에 아주 비싸고 귀한 외제 가구들을 쌓아 놓고, 자기의 친구들을 불러서 자기 저택을 자랑스럽게 구경을 시켰다. 친구들은 그 집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면서 감탄했다. 어떤 친구는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으스대면서 “자, 어떻습니까? 어떻게 생각들 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이 때 아낌없는 찬사를 기대하면서 물었던 이 사람은 생각지도 못했던 의외의 대답을 들었다. “여보게, 참 훌륭하네만 솔직히 자네에게 말하는데, 이런 것들을 가지고 살다가 죽을 때에는 정말 힘들겠네”


주 예수와 침례 요한은 한창 젊은 나이 30세에 자신을 드려 3년간 죽도록 충성하셨고, 여호수아는 70에 모세의 시종으로 40년간 충성하여 110에세, 아브라함은 75세에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창12:4) 100년 후 175세에, 모세는 80세에 헌신하여 40년 후 120세에 죽기까지 충성했는데, 저도 80이 넘으면서 지난 1964년 3월 8일 도안교회 첫 목회이후 55년을 뒤돌아보면서 이제야 철이 들어 모세 따라 가려니 아이구나 늦어도 너무 늦은 몸의 헌신이련가?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 인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 우리의 몸은 하나님께서 값 주고 사신 거룩한 성전이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3:17)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몸을 거룩하게 지켜야 하고 우리 몸에 대한, 우리의 내면적인 인격에 대한, 영과 혼과 몸에 대한 청지기 직분을 잘 감당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일이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5:23) 흠없이 우리의 영이 보존되고, 우리의 마음이 보존되고, 우리의 몸이 예수님 강림하실 때까지 잘 보존되기를 원하신 이 말씀에서 바울 사도는 사람을 몸과 영과 혼으로 나누어서 설명한다.


먼저는, 우리의 몸을 주님께 바쳐 헌신하고 우리는 우리 몸을 학대 말고 또 몸을 방종해서도 안 된다. 남용해서도 안 되며 휴식을 너무 안 가져도 안 된다. 우리의 몸을 잘 관리해서 피로가 쌓이지 않도록 잘 쉬면서 자신의 건강을 잘 유지해야 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우리 몸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는 것이 우리의 몸에 대한 청지기 직분을 잘 감당하는 것이다.


다음은 우리는 우리의 마음으로 더럽히지 말고 몸과 함께 우리의 마음도 하나님께 드려서 잘 관리해야 된다.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시84:2) 사실은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몸처럼 중요하다. 많은 병의 근원은 마음에서 온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잘 지켜서 자신에 대한 청지기 직분을 감당해야 한다. 마음의 뜻과 생각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더러운 마음, 비뚤어진 생각 및 악한 생각이 우리를 해롭게 하고 우리를 파멸시킨다.


끝으로, 우리의 영은 우리의 본체이다. 하나님과 더불어서 교제하고 성령과 더불어서 같이 역사하는 것이 우리의 영이므로 주의 지키심 안에 우리의 영을 잘 간수해야 된다. 영혼은 그 성질에 있어서 불멸이므로 영혼은 곧 사람 그 자체이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16:26) 여기서 목숨은 영혼인데, 무엇을 주고 우리의 영혼을 바꾸겠느냐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상에 일곱 마디의 말씀 중 맨 끝에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라고 자신의 영혼 관리를 기도하셨다.


그러므로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가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실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6:13) 우리는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하나님께 드려서,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이 되길 바란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바쳐서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리고 불행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해서, 그리고 국가와 민족을 돕기 위해서, 나아가 무엇보다 복음을 가르쳐서 전하는데 우리의 모든 시간을 사용하고, 우리의 모든 재능을 사용하고, 모든 물질을 사용하고,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서 죽도록 충성해야 한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