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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풀고 섬긴 예수

한명국 목사
예사랑교회

한번은 윤태준 목사의 초청으로 말씀을 전하면서 말씀 중에 가끔 던진 질문으로 “대접받는 것, 대접하는 것, 대접받고 대접하는 것 중에 좋아하는 것에 손을 드세요”라고 질문했다.
“셋 중에 대접받는 것이 좋은 사람 손 드세요”라고 했더니 1/3정도가 손을 들었다. “솔직히 대접받고 또 대접하는 것도 좋던데요”하면서 내가 손을 들자 2/3정도가 날 따라 더 손을 들었다. “그러면 대접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면 손 드세요”라고 했더니 성가대원 전부가 손을 들었다. 놀라 다시 손을 들어보라 했더니 역시 전부였다. 축복받은 성가대원들에게 큰 박수를 쳤다.


예수님은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마5:42),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마10:8)고 제자들에게 당부하셨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예수님은 비이기적이고 희생적으로 강도 만난 이웃에 대해 봉사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뜻이 무엇인지 우리는 잘 깨달아야 한다. “옷 두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눅3:11)라고 침례 요한도 말했다.


우리도 우리의 것으로 남을 도와야 한다. 남이 나에게 요청할 때 내가 그만큼 도울 수 있기 때문에 요청한 것으로 알고 거절하지 말고 도와야 마땅하다. 우리의 것을 필요로 하는 자에게 선한 청지기가 돼야 한다.
황금률에선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12)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세상에는 대접받기만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접도 하고 대접 받기도 하는 사람이 있고, 그저 주고 대접하고 베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구약성서에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눅12:33)고 예수님은 말씀했고,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딤전6:18)고 바울도 말했다. 우선 보기에는 단단한 땅에 물이 고인다고 하지만 우리가 좀 더 큰 눈으로 볼 때 무진장으로 내리는 하늘의 비를 땅이 흡수해서 생물이 자랄 뿐만 아니라 단단한 대지 속에 깊이 파고 흐르는 무진장의 지하수를 알아야만 한다.


하늘의 수증기 속의 물과 연못과 호수, 강과 바다에 물이 얼마나 많은가! 미국에 있는 나고야 삼목은 예수님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벌써 나이가 2000살이었는데 이제 2000년이 지났으니 나이 4000살이 된 나무로서 하루에 10톤의 물을 받아들인다니 그동안 1000만 톤이 훨씬 넘는 엄청난 물을 먹었는데 그 나무는 땅 속에 있는 무진장한 지하수를 먹고 4000년을 살았고,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창조한 자연은 무진장의 것을 우리에게 계속 주신다. 


성경에는 주는 대로 도로 받고 행한 대로 보상을 받는 법칙이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고 또 최상의 선물인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았으니 하나님께 드려 봉사하고 또 그의 몸 된 교회를 섬겨 봉사하고 드림이 마땅하다. 십자가를 지고 자기 생명을 주신 예수님의 고귀한 희생 아래 드리고 섬겨야 한다.
이렇게 주는 자는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 뜻은 반드시 상급이 있다는 말씀이다. 우리가 이웃을 돕는 것은 상급을 받을 수 있는 훌륭한 행위이다.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해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마25:26)며 예수님은 악하고 게으른 종을 책망하셨다. 무엇인가 심어야 거두고 헤쳐야 모으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성문에 앉아 지나가는 세 사람에게 대접을 잘 했는데 그들이 바로 천사였으며 이로 인해 조카 롯과 두 딸을 구원해 내었다. 마노아에게 나타난 여호와의 천사를 잘 대접한 결과 삼손을 선물로 받았다.


엘리야를 먼저 대접했던 사렙다 과부는 3년의 기근에서 아들과 잘 살아났고, 엘리사를 잘 대접했던 수넴 여인의 조밀한 대접은 기도로 아들을 낳게 했고 또 그 아들이 죽었을 때 엘리사의 기도로 되살아났다. 베드로와 성도들을 잘 구제한 다비다(도르가)의 선행이 그녀가 죽었을 때 베드로는 욥바로 내려가 그녀를 살려낸 기사가 사도행전에 있다.


남을 위해서 드린 재물의 손실은 아무도 모르는 구제와 같은 것이다. 어떤 때는 남에게 보증이나 저당 잡혔거나 분실한 물건, 사업의 실패와 파산 또는 돈을 받지 못하거나 남의 빚을 차용해 주고 중간에서 떼고 난 후 못 받게 될 때가 있다. 원치 않는 재물의 손해를 보면 하나님 앞에서 깨닫고 하나님께 드림을 회개하고 그런 다음 오히려 머리털까지 세시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더욱 잘 보상해 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


불행한 이웃을 돕는 일은 반드시 이 땅에서 보상을 받게 되고 무엇보다도 가장 놀라운 상급은 하나님 앞에서 받는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롬2:6)고 말씀하셨고, 또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40)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가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께 드린 것이나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한 것에는 하나님께서 영육 간에 현재가 아니면 미래에나 또 후손에게까지 갚아주신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마10:40-42)고 예수님은 말씀하셨고 십자가까지 섬김의 삶이셨다. 


아시시의 성자 프란시스와 하와이의 성자 다미엔(Damien)을 닮은 로렌스 성도의 성별된 삶을 소개한다.
니콜라스 헬만 로렌스(Lawrence, 1611~1691)는 프랑스의 성도로서 일찍이 보잘 것 없는 가정에서 태어났다.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한때 군대생활을 했다. 그러나 무의미한 삶에서 1666년 55세 때에 깊은 신앙생활에 들어간 후 파리의 깔멜 라이트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그 후 25년간 80세의 노인이 돼 죽을 때까지 수도원의 부엌데기 노릇을 했다. 그의 경건하고 검소한 사랑의 실천 생활은 빛이 됐다.


그는 항상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서 언제나 그와 함께 계신 것을 여실히 느껴서, 쓰레기 하나에서 지푸라기 하나에, 새끼 토막 하나에서 음식 쓰레기 하나에 이르기까지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의 단순한 매일 매일의 삶이 그를 거룩하게 했다. 그의 명성이 무언중 퍼져서 당대의 제왕까지도 몸소 그의 부엌으로 찾아가서 그의 가르침을 구했다.


“어떻게 그대는 하나님과 함께 생활하는지?”라는 질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부엌에서도 주의 만찬석에서와 마찬가지로 나에게 가까우십니다”라고 대답했다. 이것이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의 실천이며 십자가의 사랑을 짊어지고 빛과 소금의 직분을 감당하는 참 그리스도인의 헌신된 생활이라 깨닫고 지난 50년간 그림자를 따랐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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