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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코가 썩을 것이요!”

한명국 목사
예사랑교회

소아렌 선교사는 길거리에 다니면서 복음전도지를 나눠주며 뿌렸다. 하루는 매우 거들먹거리는 김익두란 청년에게도 전도지를 줬더니 그는 받자마자 전도지를 코를 풀어 던졌다. 이것을 본 서양선교사는 “청년, 그 코가 썩을 것이요!”라고 소리쳤다. 그런데 그 청년은 그때부터 코에 고약한 냄새가 나더니 계속 썩은 냄새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선교사를 찾아가니 마침 집회중이라 계속 참석하여 예수를 믿게 되었고 그 후 고약한 냄새도 사라졌다.


김익두 청년은 회개하고 간증문을 써서 지인들에게 보내고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됐으며 한국교회의 유명한 부흥사가 됐다. 김익두 목사는 법정에서 일본의 검사가 “영감님, 예수 천당, 소리를 그만하라는데 왜 계속해서 혼 구멍이 납네까?”라고 했더니, 눈을 번떡이며 검사를 쏘아보며 “검사 양반, 내래 온 천신에 예수 신이 꽉 차서 소리치지 않으면 안됩네다!”고 말하자 일본 검사는 혀를 차며 “저 영감을 저렇게 예수에게 미치게 하는 그 엄청난 힘은 무엇일까?”라고 중얼거렸다는 일화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일화이다.


1967년 사복군인으로 춘천군인 복지센터 관장으로 있으면서 춘천교회 부목사으로 봉사할 때에 유명한 복음전도자 오스왈드 스미스(Oswald Smith) 목사의 글을 읽었는데 “미국에서 선교에 쓰여지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이 껌을 씹는데 연간 사용된다”는 내용이었다. ‘세상에 천하보다 귀한 사람을 구원하는 선교비가 껌 값보다 적다니!’라고 생각한 나는 그날부터 남들이 가끔 주는 껌을 사양 못해 씹을 때가 있었지만, 치아에도 좋고 심심풀이로 내 돈으로 씹던 껌을 오늘까지 딱 끊고 대신 껌에 해당되는 돈 이상으로 전도비로 사용해 오고 있는데 혹시나 내 자랑이 될까 정말 송구스럽다.


“입 좀 빌려주세요! 당신은 왜 택시기사에게 전도를 하지 않느냐?”고 했다. 나는 “나의 통역하는 입은 당신이 언제나 사용하세요”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동래에서 남포동 부산교회 집회인도를 위해 택시를 탔는데 대니 매로우(Danny Marrow) 전도자가 앞좌석에 앉아 운전하는 택시기사에게 전도를 시작했다. 나는 뒷자석 중간에 앉아 앞좌석으로 얼굴을 내밀고 기사에게 사영리 내용을 통역했다. 마지막 결신단계에 가서 기사는 영접을 계속 거절했다. 나의 통역은 매우 곤란했다. 그때까지 기사는 잘 듣고 영접할 줄 알았는데, 대니 전도자는 의아해서 더욱 강권했다.


한국 사람들이 예의상 잘 들어주는 것을 좋은 반응으로 생각하고 택시에서 내리면서까지 계속 결신을 강권했다. 결국 우리는 기사와 헤어졌으나 나는 택시기사에게 전도하는 법을 처음으로 그에게 배웠고 오늘까지 실천해 오고 있다. 사실 택시 안에서는 듣기 싫어도 복음을 들을 수밖에 없으니 얼마나 좋은 전도의 기회인가! 그날 이후 언제나 택시비의 남은 잔돈은 받지 않고 수많은 택시기사에게 복음전도의 아름답고 보람된 파노라마를 갖게 됐다. 제재소와 주유소 일을 치우고 받은 은혜에 견딜 수 없어 무디처럼 길거리에 나가 데니도 복음을 전했다. 마약을 먹고 아무도 돌보지 않아 길거리에 버려져 나뒹굴던 폐인들을 집으로 데려와 2층에 수용하고 먹이며 기도하고 성경을 가르치며 예배했다.


1971년 당시 미국 켄터키 주와 또 다른 주에 마약환자 전용 수용소 병원이 둘 있었으나 중환자인 경우 고쳐지는 자는 거의 없었다고 간증했다. 하나님의 사랑과 주님의 은혜와 성령의 권능으로, 그를 통해 치유 받은 60여명이 그의 성경 앞뒤 책갈피에 사인한 것을 내게 보여줬다. 그는 나의 초청장을 받고 1년 후, 그들이 모아준 돈으로 한국에 복음을 전하러 나왔다고 했다. 나는 당시 섬기는 남문교회와 부산교회 및 이사벨 여중고에서, 서울은 장영출 군목이 시무한 공군본부교회, 연초제조장, 정이모 전도사의 말죽거리 교회 등 한 달간 전도 집회에서 놀랍게도 3000여 명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다.


지난 40여년간 한미전도대회와 기타 여러 통역사역 중에도 데니와의 기억되는 사연이 많지마는 영적 교제는 잊을 수 없다. 인천에서 올라오는 경인도로상에서 미군차가 고장 나서 고쳐달라고 손을 흔드는 것을 보고도 앞서간 차들은 모두 그냥 지나갔으나, 트럭 운전기사 제1호인 정주영씨는 자기도 갈길이 바쁘고 혼잡한 도로였지만 트럭을 세우고 이리 저리 고장 난 차를 뒤지며 살펴서 잘 고쳐줬다.


전해 듣기는 미군은 용산 미군부대 주방장 상사(Mess Hall Seargent)로서 너무 고맙다고 인사한 후 명함을 나누며 꼭 찾아오라고 했다. 그 후 만나서 교제하던 중 미군은 월남전으로 떠났고 계속 연락하던 중 전쟁에서 못 쓰는 고철을 값싸게 받아서 현대건설을 만들어 내는 시금석이 됐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나의 삶에도 좋은 교훈으로 기억됐다.


죄악으로 찌드른 인생들에게 복음의 치료약을 나누는 구령이랴! “정주영 회장 아니신가요?” 인사를 하면서 말을 건넸다. 그는 잘 모르는 사람이라서인지 별다른 표정이 없었으나 “회장님, 건강하시네요 금년에 연세가 어떠세요?” 했더니 그는 낮은 소리로 74세라고 했다. 복음전할 기회라고 생각한 나는 그의 옆에 앉으려고 하는데 롯데호텔 로비에서 좀 떨어져 지키고 있던 경호원들이 다가와 나를 물리치고 엘리베이터로 모시고 가셨다.


나는 그 짧은 기회에 “예수님 믿고 구원받으세요”라고 한마디 말씀도 전하지 못한 것을 늘 후회했다. 25여년이 지난 일로 그 때 잠깐 만난 사이에 본 거무스름한 얼굴에 사람들이 저승꽃이라고 하는 크고 작은 검버섯이 정회장의 얼굴에 10여개가 보였다. 그 뒤 아마 10여년 후인가 정회장은 별세했다고 들었을 때 나는 그 좋은 기회에 복음을 못 전한 것에 또 다시 심령이 아팠다.


언젠가 옆자리에 앉은 분과 건강에 대한 온갖 얘기를 나누던 중, 그는 건강의 비결은 우선 음식이라고 했다. 한번은 정주영 회장과 점심 식사를 같이 했는데 그 좋게 차린 음식 중에서 칼국수 한 그릇만 먹기에 나머지 음식을 그가 잘 먹으면서 음식을 절제할 수 있는 정회장이 장수하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는 계속 고기만 먹었더니 배가 한 아름이 되었고 체중이 73Kg에서 95kg으로 늘어나 깊은 당뇨가 생겨서 40년간 치료약 먹고 양파를 하루 2~3개씩 먹으면서 견디어 살고 있다고 했다. 나는 여기서 억만장자라고 하루에 쌀 10가마니의 밥과 황소 한 마리를 먹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말씀에 일용할 양식에 자족함과 영적 복음의 양식을 나누는 삶으로 살기를 다짐해 왔다.


언젠가 감명준 글은 그가 소천할 때까지 뿌린 전도지는 무려 14만4000장이었는데 전도지를 읽고 예수님을 믿겠다고 알려온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세월이 지난후 전도지를 받고 예수님을 믿어 목사가 된 분이 조사해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고, 목사가 된 사람이 수십명(35명?)에 그 목사를 통해 믿게 된 사람도 수천 명에 이른다고 했다.


지난 60여년간 여러 방법으로 지금까지 개인전도를 하면서 언제나 주님의 지상명령(마28:18~20)을 축복과 저주의 말씀으로 명심하면서, 목사안수 받을 때 답사로 서약한 말씀 곧 사도 바울의 간증 고백을 되새겨 명심하고 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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