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신약성서 기독론 : 요한의 기독론

요한의 ‘독생자’ 기독론(1)

김광수 교수
전 침신대 신학과
(신약학)

지금까지 요한복음서 서두에 나오는 로고스 찬미가를 토대로 요한의 기독론적 교훈 중에서 로고스 기독론에 관해 살펴보았다. 이제부터는 요한의 기독론적 칭호 중에서 ‘아들’이란 단어가 사용된 칭호들 곧 “하나님의 아들,” “사람의 아들,” “그 아들” 및 ‘독생자’/“유일한 아들”이 나오는 구절들을 토대로 요한이 제시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사역의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요한이 사용한 독특한 기독론적 칭호인 ‘독생자’/“유일한 아들”(the only Son)/“유일하게 출생한 아들”(the only begotten Son)을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특별하고 유일한 존재성에 관하여 알아본다.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아들”(한글 성경에는 주로 ‘인자’로 표기) 칭호들은 공관복음서들에서도 익숙하게 사용됐다. 요한은 이 기독론적 칭호들을 사용하면서도 그가 강조하려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존재성 곧 신성과 인성의 연합이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한 존재성을 제시하는 것에 역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요한은 ‘누구의’ 아들이라는 기원의 수식어가 없이 ‘아들’을 관사와 함께 사용한 “그 아들”이란 칭호를 특징적으로 사용했다. 요한에게 있어서 “그 아들”은 ‘독생자’/“유일한 아들”로서 “하나님의 아들”이며 동시에 “사람의 아들”(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존재성을 나타내는 독특한 칭호이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를 나타내기 위해 신약성경 전체를 통해 일관되게 사용된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를 9회 사용했다(1:34, 49; 8:18; 5:25; 10:36; 11:4, 27; 19:7; 20:31). 요한복음서에서 그 칭호가 사용된 구절들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의 존재와 사역에 관한 요한의 이해를 살펴본다.
(1) “하나님의 아들” 칭호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믿는 자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일이 사실은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과 동일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 5:25). 예수께서는 전통적인 종말론적 메시지를 현재적 의미로 재해석하셨다. 죽은 자들이 종말에 듣게 될 하나님의 음성이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의 현재적인 음성으로 바뀌었는데, 그것은 아버지께서 생명과 심판의 권세를 다 하나님의 아들에게 위임한 결과를 반영한다.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는 말은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한 말과 동일한 표현으로서 하나님의 아들 안에서 참된 예배의 현재적 실현을 가리키는 말이다(4:23). ‘살아나리라’는 단어는 미래 시제이지만, “이 때”와 관련하여 종말론적 미래가 현재적 실재로 나타남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아들을 통한 구원의 역사에서 미래 시제는 미래에 실현될 것만을 말하지 않는다. 신비하게도, 그 미래에 실현될 역사가 현재의 역사 속으로 들어와서 역사적 현재가 되고 있는 신비한 시간적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렇게 그의 공생애를 통해 하늘에 준비된 영원한 생명이 현재의 실재가 되게 하기 위해 보냄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요17:3).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말씀)을 듣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 준비된 영원한 생명이 현재의 실재로 나타난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그를 믿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 영원한 생명을 얻고 그 생명을 지금 여기서부터 풍성하게 누리게 하려는 것이다(요10:11). 종말의 생명이 지금 여기서부터 주어지고 있다는 현재적 의미에서 “죽은 자들”은 지금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영적으로 죽어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요한복음서에서 죽음은 독생자를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생명의 빛을 받지 못한 인간의 삶의 모든 요소들을 포함한다. 죽음은 어두움과 죄와 연결되어 독생자를 통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고 죄와 어두움 가운데서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다(요3:18~19). 예수 그리스도는 죄와 어두움 아래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러한 죽음의 요소들을 벗어나 영원한 생명을 얻고 그것을 풍성하게 누리는 삶으로 초대한다.


(2) “하나님의 아들” 칭호는 다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에 관한 예수님 자신의 말씀의 의미를 오해하고 예수님을 신성을 사칭하는 ‘신성모독’의 죄인으로 정죄하는 유대인들을 향해 자기의 존재를 변호하는 구절에서 사용됐다: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 아들이라’ 말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요10:36). 이 말씀은 예수님과 그 유대인들 사이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논쟁의 맥락에서 제시됐다. 예수님은 자기가 행하는 일들이 근원적으로는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일들이며 그래서 그가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시는 일들이 예수님의 존재를 증언하는 것이라는 근거를 토대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10:30)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들은 그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예수님을 치려했다(요10:31). 예수님은 그들에게 그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들을 그들에게 보여줬는데도 어찌하여 돌로 치려하느냐고 반문하셨다(요10:32). 그 유대인들은 선한 일로 말미암아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신성모독 때문인데, 그것은 예수님이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주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요10:33). 그 유대인들의 이러한 대답은 그들이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는 말씀을 예수님이 사람이면서도 자칭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오해한 것을 보여준다. 그들의 오해는 예수님이 마치 “나(예수)는 하나님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이해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그들이 오해한 의미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일부 목회자들이 이 말씀을 근거로 “예수는 하나님이다” 혹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요즈음 침례신문에도 버젓이 그런 주장의 내용들이 실리고 있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이 말씀(요10:30)을 그 유대인들처럼 잘못 이해한 것이다. 그런 주장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존재를 오해하게 하며 나아가 삼위일체 신관을 부정하게 만드는 심각한 오류를 지닌 주장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헬라어 원문으로 직역하면 “나와 (내) 아버지 우리는 하나다”라고 번역할 수 있다. 예수님은 그 유대인들이 오해한 것과 같은 그런 의미로 이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기본적으로 이 구절이 포함된 문맥(요10:22~39)과 나아가 요한복음서 전체를 통해 제시된 요한의 기독론적 신학과 연결해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문맥적으로 볼 때, 전 문맥에서 예수님은 그가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그에 관해 증언하고 있음에도 유대인들이 믿지 않고 있다는 것과 그러나 그를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며 그들을 영원히 지켜주신다고 말씀하셨다(요10:25~29). 예수님은 그가 행하는 일들이 근원적으로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들이라는 것을 전달하는 문맥에서 “나와 (내) 아버지 우리는 하나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생명을 주시고 그들을 지켜주시는 일에 있어서 “아들과 아버지의 하나 됨”을 나타낸다. 아들은 그를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뿐 아니라 그들이 영원히 멸망하지 않도록 그들을 지켜주실 것인데, 그것은 그가 행하시는 일들이 근원적으로는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일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후 문맥에서 예수님은 이 말씀(요10:30)의 의미를 변증적으로 설명하신다. 그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내가 하나님이다”라는 의미로 말씀한 것으로 오해했지만, 예수님은 그런 의미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변증하신다. 예수님은 시편 82:6a에서 “내가 ‘너희는 신들이다’라고 말했다”라는 구절을 토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신들’로 부르셨는데, 예수님은 그것을 하나님이 그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들’로 불렀다고 해석하셨다(요10:34~35). 시편 82편에 담긴 신학은 인간의 신성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신적인 감동을 받은 사람들을 말하려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율법의 말씀을 토대로 “율법은 폐기될 수 없다”는 공리를 지적하고 그것을 통하여 자기의 입장을 변호하셨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거룩한 지식을 소유한 사람들을 ‘신들’로 불렀다면, 하나님 자신이 성별하고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마땅하다는 것이다(요10:36). 여기서 예수님은 자기의 존재를 명백하게 “하나님의 아들”로 제시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고 세상에 보내신 자”로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그가 행하시는 일들을 믿음으로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게 된다”라고 말씀하셨다(요10:38). 아버지께서 아들 안에 계시며 아들이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를 하나님과의 연합과 일치의 관계성에 기초하여 이해하려는 요한의 결론적 이해와 밀접하게 연결된다(14:10).



배너

총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