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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과 소망

청년이 살아야 교회가 산다-15

석종준 목사
서울대 캠퍼스 선교사,
상대원교회 협동

많은 사람들이 한국교회의 절망을 이야기한다. 예배당 건물과 시설은 수십 전 전에 비하여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교인들의 성경 지식과 교양은 이 땅에 복음이 첫발을 내딛은 백 수십 년 만에 가장 충만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세상 속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점점 더 위축되고 고립되어 간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더 걱정한단다.


캠퍼스의 선교기관들은 과거에 비해 조직이 크게 방대해지고 전문화됐다. 그러나 최근 조사는 지난 십년 간 캠퍼스 기독교 동아리의 소속 학생 인원이 정확하게 반 토막이 된 것을 확인시켜 준다. 현장의 장기 사역자들일수록 동일한 수고를 해도 열매가 예전 같지 않음에 당황하면서도 그 이유를 설명하는데 능란하다. 현장 주변에는 냉혹한 현실을 설득력 있고 조리 있게 분석해주는 전문가들이 넘쳐난다. 다수의 종교사회학자들이 오늘날 한국 교회에 대해 암울한 전망과 예리한 분석으로 시한부 사망 선고를 내린 지는 이미 오래다. 그렇다면 이 시대 한국 교회의 절망은 필연인가?


이 시대 우리 현장 사역의 초점이 숫자 놀음에서 머무는 한 이러한 절망은 마땅하다. 그러나 이 절망의 시대 한복판에서도 꼭 함께 나누고 싶은 한 간증이 있다. 우리가 먼저 소유한 복음과 사랑을 꾸준히 나눌 수만 있다면, 반드시 그 나눔은 반드시 절망의 시대 한복판에서 조차 누군가에게 전해져 죽어가던 생명, 꺼져가던 불씨에 불을 다시 지필 수가 있다는 교훈이다.


2018년 한 해 동안 내가 캠퍼스에서 매주 정기적으로 만나 섬겼던 영혼은 대학원생 10~12명과 교수 3~4명에 불과했다. 억지로 만남을 도모하지 않았다. 그저 우연한 기회에 또는 누구를 통해서 맡겨주시는 영혼 하나하나에 대한 마땅한 나눔을 주어진 시간에 감당했을 뿐이다. 그런데 올 한 해도 복음 농사의 추수는 감사의 열매가 넘친다. 물론 이 평가는 이른바 나 홀로의 “소학행(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에 불과할지는 모른다. 이 중 그룹으로 만난 대상은 하나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1대1이었다. 주중 3~4일 캠퍼스를 미팅을 위해 하루에 두 번 이상 드나든 것이 일상인 시간들이었다.


저녁 미팅을 마치고 집에 오면 종종 밤 10시가 넘었다. 그런데 나는 매년 이 때쯤이면 받게 되는 선물로 마음이 풍족하고 가장 행복해진다. 그것은 바로 이들을 통해 자신들이 만나고 누린 복음 안에서의 승리와 신앙의 자람을 감사해하는 고백을 전해 받기 때문이다. 청년 영혼들을 복음으로 섬기면서 사는 소명받은 자의 에너지 충전 받음의 통로는 동일하지 않을지 싶다. 한국교회의 절망을 노래하고, 한국 기독교의 시한부 사망선고를 조리 있게 분석하고 전망해 내는 설명능력을 과시하는 전문가들은 날로 넘쳐난다. 그러나 절망을 이기는 소망의 역사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 또한 여전히 분명하다.


하나님이 반드시 복음을 들고 현장을 꾸준히 나가는 자에게는 복음의 달란트 농사를 지어갈 영혼의 밭을 맡겨주신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밭에서 자라고 있는 영혼들은 매년 이때 쯤 돌아다보면 부족한 종에 불과한 나를 통해서 전해진 복음과 기도의 자양분을 통해 많이 자라 있다. 특별히 이번 주 캠퍼스에서 섬기는 성경공부 그룹에서 누린 행복은 이 세상 무엇과도 비할 수가 없었다. 나눈 본문은 베드로전후서였다. 어둠의 권세가 관영한 바벨론의 한복판에서 베드로 사도를 통해 고난의 한복판에서 조차 산 소망의 복음이 감당할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을 깨닫고 배우는 시간을 통해서였다.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벧전 1:21). 우리는 베드로전후서를 통해서 누구보다고 베드로 사도 자신이 가장 힘겹고 절망적인 시대의 한복판에서 가장 우뚝 선 산 소망의 아이콘이라는 것을 나누며 큰 위로와 격려를 받았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올 한 해의 은혜를 서로 나누기 시작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벧후 3:18)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것이 거의 확실했고, 다혈질에 자기 통제가 안 되어서 주님마저 격하게 부인하며 배반했던 그 자신이 어느덧 완숙한 인격의 제자훈련 마스터가 되어 맡기신 양들의 자라감을 독려하고 있다. 그래서 산 소망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 어떻게 절망의 세상에서조차 하늘 소망을 붙들고 승리하는지를 몸소 보여줬다. 베드로의 자람과 성숙은 모든 죽어가는 불씨조차 다시 살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희망의 아이콘이다. 한국교회의 다음 세대를 세우는 달란트 농사는 베드로의 산 소망 안에 있다. 절망의 시대는 산 소망의 그 능력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의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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