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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에 오른 승리자

한명국 목사의 회상록

한명국 목사
예사랑교회

나는 한국 순교사를 읽은 중 많은 위대하고 성스런 순교자들이 있었지만 목사가 아닌 김윤섭 전도사의 순교와 초대교회 사도 요한의 신복제자로 폴리갑의 순교직전 대담을 잊을 수 없다.
오늘의 한국교회의 현실과 세계선교를 다니며 종말을 맞는 수많은 교회들과 훌륭한 목회자들을 만났지만 으뜸으로 늘 떠오른 두 성자의 최후를 추모해 본다.


‘순교사화집’을 읽고 감명이 깊었던 십자가 신앙의 선진을 소개하고자 한다.
김 전도사는 평안도 선천 태생으로 20세에 예수님을 믿고 평북 성경학교를 졸업한 후 박천 덕인교회를 개척하고 의주 월하교회를 부흥시켰다.  또 장로교 총회에서 신사참배가 가결되자 그는 주기철 목사의 일사각오(一(死覺悟) 결단과 다니엘 선지자처럼 입지불변(立志不變)의 전도로 항일투쟁에 나섰다.


그는 열 번이나 체포되어 심한 고문을 받았다. 저들은 그를 의자에 묶어서 거꾸로 매달아 놓고, 코에 고춧가루 물을 붓고 억지로 머리를 숙이게 하여 신사 참배케 하고는 굴복했다고 시인을 강요했고, 갖가지 회유와 말할 수 없는 고문을 가했다. 결국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조건 하에 석방시켰다. 그러나 그는 나오자 또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는 8회에 걸쳐 일본 경찰에게 붙들려 극심한 고문을 당했다. 그는 그 고문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자살하려고 했으나 그것마저도 실패했다. 그 때에 4살짜리 어린 아들이 배고파 우는 광경이 참으로 처참하게 떠올랐고 불꽃이 피어오른 쇠담금질에 이기지 못해 신사참배를 인정하고 시말서를 쓰고 석방됐다. 그러나 다시 견딜 수 없어 의주 경찰서로 찾아서 시말서를 취소한다는 문서를 제출하고 담대히 복음을 전했다. 그의 심정은 마치 예레미야 선지자의 심정과 같았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렘20:9)
다시 붙잡혀 심한 고문을 받다가 하얼빈 유치장에서 영양실조와 이질병으로 죽을 수 있다는 판정을 받고 1940년 12월에 기아상태로 석방되어 가족의 품에 돌아갔다.


함부선 선교사가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작은 목소리로 “임마누엘”이라고 인사했다. 가족의 간호로 점점 회생되자 다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경찰은 다시 그를 잡아 하얼빈 형무소에 투옥시켰다. 이번이 열 번째였다. 그는 다시 안동으로 넘겨져 국가치안법과 황실 모독죄 및 이적행위로 15년 복역을 언도받았다.


재판장에서 판사는 “너의 신앙으로 본다면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면 지옥에 간다니, 천황 폐하도 다른 신을 섬기면 지옥에 가느냐?”고 물었다. 이에 그는 “예 그렇습니다!” “참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그는 세 번째도 역시 태연하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미결수로 2년간 심한 고생을 한 후 봉천 감옥으로 옮겨졌는데, 그는 주일을 지키기 위해 공장 직공으로 복역하면서 요셉같이 용천태생 강도범 두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인도했다. 그는 그의 기도, 찬송, 전도, 봉사와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이란 이름으로까지 불렀다. 1943년 5월 3일 15년 언도가 확정된 후 고작 15개월 옥고 끝에 영광의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로 옮겨졌다. 그의 마지막 기도의 찬송은 찬송가 289장 “고생과 수고가 다 지난 후”이다.


고생과 수고가 다 지난 후
광명한 천국에 편히 쉴 때
주님을 모시고 나 살리니
영원히 빛나는 영광일세
영광일세 영광일세
내가 누릴 영광일세
은혜로 주 얼굴 뵈옵나니
지극한 영광 내 영광일세 (찬송가 289장)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9) 사도 요한의 수제자 폴리갑은 로마 황제 안토니우스 피우스 치세, 곧 주후 156년 2월 2일은 은발을 날리며 에베소 교회로부터 로마인의 투기장으로 끌려나왔다. “네가 폴리갑이냐?” 당시 터키 땅을 다스리던 동방 총독 스타디우스 파도라토스는 고운 말로 회유하고 또 위협했다.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욕하고 살라!”라고 강요했지만 그러나 폴리갑은 이를 거절하였다.


드디어 그는 나무단 위에 화형으로 처형되기에 이르렀다. 불꽃이 원형을 그리며 폴리갑 주위를 맴돌자 검투사에게 명하여 창으로 그의 몸을 찌르게 하자, 곧 피가 솟구치면서 불이 꺼졌다.
“총독께서는 꺼질 불로 나를 위협하지만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지 않기를 기도합니다”고 말한 후 최후의 기도를 드렸다. 이처럼 그는 로마법대로 나무단 위에서 불에 타 장렬한 순교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제자 이레니우스 등이 유골을 모아 장례지냈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 이는 첫째 부활이라”(계20:4~5)